가슴이 철렁했다. 전화기너머 막내고모의 떨린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린다. “영호 아들이 세상 떠났다. 이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단순히 안부전화를 했는데 고모는 조카손자의 부음을 전했다. 전날 조카한테 울면서 전화가 왔다며 넋이 거의 나간 상태로 이모한테만 전한다며 아들의 죽음을 전해 왔다 했다. 미혼인 아들의 죽음을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폭염에 움직이기도 힘들고 외출을 할 만큼 체력이 따라 주지 않는다며 말끝을 흐렸다. 고인이 아직 미혼이라 나이 많은 외삼촌들에게는 알리지 않았고 주변에도 연락을 안 한 것 같다고 한다. 젊은 자식의 장례를 치러야 하는 기막힌 현실 앞에 아비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나는 형제들에게 연락했다. 영호와는 고종사촌 형제인 만큼 기쁨도 슬픔도 함께 해야 하는 처지다. 남동생이 가겠다기에 동생을 통해 위로의 마음을 전하기로 했다. 어머니를 여의고 20개월 만에 자식을 떠나보내야 하는 현실 앞에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말이 나오지 않는다.
부모를 선택해서 세상에 나올 수는 없다. 그는 세상에 태어난 지 네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온갖 고생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온 지난날은 어머니의 희생이 오늘날 자신을 있게 해 준 은혜라고 생각했다. 어머니 주변을 맴돌듯이 어머니를 챙겼었다. 일용직 일을 하면서도 노모가 계신 곳에서 멀리 떨어져서 있으면 불안하다며 고향집에서 가까운 곳을 택해서 일을 하곤 했다.
고모는 초혼에 실패하고 나이 많은 고모부와 재혼했다. 줄줄이 팔 남매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한 결혼이었다. 그 틈새에서 야생초처럼 살아온 동생은 외가에 자주 놀러 왔지만 나는 그 동생들의 존재를 큰 의미 없이 생각했던 것 같다. 고모는 친자나 의붓자식이나 편애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양육했다. 고모는 외롭고 힘들 때마다 남매를 데리고 친정으로 피난 오듯 와서 쉬어가곤 했다. 철없이 말썽 부리는 고종사촌 동생들이 오면 어수선한 분위기가 싫었었다. 가끔 동생들을 못살게 굴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력에 백열등이 켜졌다.
고모의 친자 두 남매도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고모도 한숨을 돌렸다. 아들은 틈틈이 어머니를 찾는 효자였다. 아들인 자신이라도 어머니의 희생에 보답해야 마음의 빚을 갚는 것 같다며 여자로서 너무 불행한 삶을 살아온 어머니에게 최선을 다 하려고 한다는 말에 타고난 효자라고 생각했다. 동생의 삶도 원만 치는 못 한 것 같았다. 아내는 어느 날 집을 나갔다 한다. 주식투자로 있는 돈을 다 날리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위해 시력 교정 수술을 하려고 모아둔 돈과 가족의 건강을 위해 들어놓은 실손보험까지 해약해서 집을 나갔다며 넋두리했다. 그 아들이 장성해서 집에서 직장에 다니고 동생은 고향집 근처에서 일자리를 구해서 일한다고 했다. 아들은 몸이 너무 비대해서 건강관리를 잘해야 될 텐데 마음에 걸린다고 걱정했다. 살던 집과 멀리 떨어진 고향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아들을 챙기지 못한다는 미안한 마음이 있다며 거의 매일 전화로 통화하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곤 했다.
태양은 지구를 향해 불덩이를 던져놓은 것 같다. 불볕더위는 연일 물러날 줄 모르고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작업도중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는 일도 있었다. 아들과 통화하는 것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던 동생은 아무리 통화버튼을 눌러도 연결되지 않은 아들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마지막 통화 후 삼일이 지나자 불안하고 초조했다. 아들 친구에게 전화해서 집에 가서 확인해 보라고 부탁했다. 아들친구는 집에 불은 켜져 있는데 아무런 기척은 없고 문이 잠겨 있다고 전했다. 문을 따고 들어갔다. 아들은 거대한 몸집으로 방 안에서 혼자 쓰러져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자살을 해야 할 이유도 없다며 다만 수면무호흡 증세가 있었다고 했다. 동생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을 잃고 아연실색했다. 아흔 넘은 노모가 돌아가실 때 잡고 있던 끈이 떨어진 것 같다며 허탈해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듯이 비록 고생하며 살았어도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슬픔을 참으며 기대고 있던 벽이 무너진 느낌이라고 했다. 연세도 있고 아들의 효도를 받고 가실 때를 알고 가셨으니 크게 아쉬울 것이 없을 것 같아도 노모를 보내는 동생은 술김에 전화해서 그렇게 가신 어머니가 불쌍하다며 울먹이며 말끝을 흐렸다. 길가에 서 있는 나무들은 목마르듯이 이파리를 말듯이 느려뜨린다.
어머니를 보낸 후 가장 소중한 아들을 황망하게 떠나보내고 방황할 목마른 영혼의 동생에게 전화했다. “누나 저 그래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어려서 외가에 가면 외사촌 막내 동생이 그렇게 부러웠어요. 큰외삼촌 사랑을 듬뿍 받고 사는 동생이 한없이 부러웠어요.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고 이제는 저 혼자 남았습니다. 이겨내기 위해서 일터로 돌아가겠습니다. 일이라도 해야지 내 주변에서 일어난 괴로움은 그냥 잊히지 않을 것 같아서 일터로 돌아가려고요. 인생 참 허무하네요.” 동생의 입에서 진한 술 냄새가 전화기를 통해서 전해진 것 같았다. 울부짖듯이 독백처럼 쏟아내는 말을 들으며 통화를 마쳤다. 존재의 가치가 흔들리는 그는 삶의 안식처이자 행복의 근원지인 집에 가족 구성원이 없어졌다. 홀로 괴로움을 이겨내야 할 운명이라면 잊기 위해서 취한다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고 씨앗을 뿌릴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다. 허지만 노인들에게 적용해야 할 속담을 젊은 청년이 세상을 떠나가기에는 너무 가혹한 운명이다. 자식을 떠나보내고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는 동생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처럼 들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