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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적을 추억하다

by 샤론의 꽃




광복절 아침 이었다.특집 방송으로 어린이 합창단이 나와서 동요‘반달’을 부른다. 하얀 블라우스에 빨간 스커트 차림의 단원들의 앳된 모습에서 몇십 년 전 나의 자화상이 나타난다. 해남예술제에서 1등을 했던 마산서교 어린이합창단! 그 속에 한 소녀가 있었다. 수업이 끝나갈 즈음 음악부 문*한 선생님은 음악에 소질 있는 학생을 추천해 달라고 3,4, 5학년 교실을 다니며 선생님들에게 공문을 돌렸다. 어린이 합창단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선생님의 추천으로 나는 합창단원의 일원이 되었고 우리는 날마다 연습에 들어갔다. 문 선생님은 학교 조회시간에 애국가가 울려 나오면 강단 위에 올라가서 지휘를 하던 음악부 선생님. 부부교사로 학교 사택에 살고 있었는데 서너 살 먹은 아이와 대여섯 살쯤 되는 두 아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항상 흙을 집어던지며 놀곤 했다. 수업이 끝나면 합창단은 음악교실에 모였다. 선생님의 지도가 시작됐다. 음정 잡는 법부터 시작해서 화음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소프라노, 알토, 메조소프라노 파트를 각각 따로 연습시킨 후 한 곳에 모여 코러스로 화음을 맞췄다. 처음에는 각자 자기 파트의 음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고음의 소프라노 음을 따라갔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지휘봉을 휘두르며 남의 파트 따라가지 말고 자기 목소리를 내라고 소리쳤다.


그 해 봄, 우리의 합창연습은 하루 두 세 시간씩 지속됐다. 한 달의 연습기간이 끝나면 5월 하순에 열리는 해남예술제에 참가해야 했다. 좋은 성과를 올려야 작은 학교의 체면이 제대로 선다는 선생님의 의욕이 남달랐다. 일요일에도 학교에 나와서 연습을 하는 고강도의 격한 훈련과정을 거쳐야 했다. 오합지졸이 모여서 이룬 합창단의 제멋대로 흩어지던 목소리는 차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지휘봉은 마술의 막대기로 변해갔다. 파트별로 다소곳이 두 손을 배꼽 위에 단정히 깍지를 끼고 반원모양으로 나열해서 TV에서나 봄직한 특별한 모습을 연출했다. 그럴 때면 서서히 울려 퍼지는 코러스의 화음에 놀란 선생님들이 교무실에서 나와 복도에서 합창단의 조화로운 화음을 경청하곤 했다.

대회를 앞두고 단체복을 주문했다. 주황색 블라우스에 초록색 주름치마로 통일했다. 출전하기 이틀 전 단체복을 입고 교장선생님과 여러 선생님 앞에서 연습했던 ‘반달’을 부르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생략)


반달은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어린이들에게 꿈을 실어주기 위해서 윤극영 선생이 지은 동요였다. 은은히 울려 퍼지는 고즈넉한 우리들의 화음에 선생님들의 칭찬이 쏟아졌고 교실밖에는 지도 선생님의 두 아들이 하의를 벗은 채 고추를 내놓고 두 팔을 휘두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아카시아 향기가 코 끝으로 다가올 무렵 드디어 예술제 참가일이 다가왔다. 단체복을 입고 집에서 찐 계란과 찰밥으로 싸준 도시락을 가지고 할머니와 함께 버스정류장으로 나갔다. 선생님이 일일이 호명을 하고 우리는 버스에 올랐다. 어머니나 할머니들이 보호자로 함께 동행했다. 버스 탈 기회가 없던 우리는 새로운 체험을 했다. 버스 안에서 내다보는 바깥풍경이 새롭다.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길가 가로수가 달리는 그런 기분이었다. 선생님의 처가는 해남읍에서 여관을 경영하는 꽤 잘 사는 집이었다. 우리는 여관에 짐을 맡기고 다시 한번 화음을 맞추어 예행연습을 했다. 어떤 단원은 목소리를 트이게 한다며 집에서 날계란을 가지고 와서 얼굴 찡그리며 간신이 목으로 넘기고 있었다. 선생님이 사이다를 가져와서 한 컵씩 따라주었다. 입 안으로 들어간 순간 톡 쏘는 맛은 어떻게 형용하기 어려웠다. 처음 먹어본 새로운 맛이다. 이렇게 신비한 물도 있구나 하고 감격스러워했다.

예술제를 진행하고 있는 어두컴컴한 극장 안은 많은 사람들이 꽉 차있었다. 무대 중앙에는 고전 옷을 입은 무용수가 칼춤을 추고 있었다. 손에 땀을 쥐고 바라보았다. 읍내 학교에서 참가한 한 악기부 단원은 자기 키 만한 사다리 모양의 악기를 큰 젓가락 같은 쇠막대에 둥근 봉이 달린 막대기로 두드렸다. 그럴 때마다 울려 퍼지는 맑은 소리가 은쟁반에 옥구슬 굴리는 소리 같았다. 실로폰 연주한 신기한 모습을 처음 보았다.


우리의 차례가 되자 긴장한 선생님은 무대중앙으로 우리를 인솔해서 지휘봉을 쥐고 앞에 선 다음 심호흡을 했다. 떨리기는 지휘하는 선생님이나 우리도 마찬가지다. 배에 힘을 주고 부드럽게 화음을 이끌어 낸 다음 선생님의 손에 힘이 들어가면 강하게, 가볍게 내려가면 부드럽게 화음을 맞췄다. 소프라노는 강하게, 알토는 부드럽게, 메조소프라노는 중간 톤으로 화음을 넣어서 노래를 불러 공연을 했다. ‘반달’이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게 끝나고 우레 같은 박수갈채를 받으며 무대 위에서 내려왔다.


며칠 지나자 음악선생님이 단원들을 불렀다. 20여 개의 학교가 참가했는데 처음 참가한 예술제에서 우리가 2등을 했다며 상품으로 노트와 연필을 나누어 주었다. 예술제는 해마다 열렸고 그다음 해 에는 1등의 영광을 차지했다. 작은 시골학교가 만들어낸 소리의 기적이었다. 이듬해 선생님부부는 읍에 있는 학교로 전근했다.

몇 년 전, 그때 함께 합창단 했던 동창생 성희가 서울에서 선생님을 우연히 봤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쯤 생존해 계신다면 90대 초반의 나이일 것이다. 지난해 여름휴가를 맞이하여 고향에 갔다가 학교가 떠나가라 연습했던 모교를 찾아가 보았다. 폐교 위기에 겨우 학생 몇 명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학교는 초라한 모습으로 학생들이 떠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 여름 포플러나무 위에서 매미가 울면 매미 잡겠다고 올라갔던 키 큰 나무는 없어지고 향나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때 천여 명의 학생을 품었던 학교였다. 2부 수업까지 했던 학교는 그렇게 작은 모습으로 도시에 사는 자식이 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도 음악교실에서 부르는 합창 ‘반달’이 어렴풋이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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