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 들어서자 한약 냄새가 진하게 풍겨난다. 진료를 예약한 환자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 대부분 근골계 질환을 앓는 나이 지긋한 여자들이다. 어떤 이는 다리를 끌며 들어온다. 또 다른 이는 연신 팔을 주무르며 진료접수창구 앞을 서성인다. 한의원을 찾는다는 것이 단순히 치료를 받기 위함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오래된 통증을 달래러 오고, 사람들은 각자의 아픔을 안고 오지만, 아픈 사람이 자신만이 아니라 나이 드신 분들 같은 질병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이 되는 듯 보인다. 이곳의 시간은 병원 특유의 분주함과는 다르다. 조금 느릿하고, 조용하고, 기다림에 익숙한 분위기다.
“아플 텐데 잘 참으십니다.” 한의사는 체침을 손과 발에 꽂은 후에 무심코 말을 던진다. 침을 찌르는 통증에도 변하지 않는 내 표정에 독하다는 듯 내 얼굴을 살핀다. 앉아서 맞는 사암침은 환자 환부가 아닌 손과 발에 침을 꽂는다. 말초신경이 발달한 손과 발은 한의사가 침을 꽂으면 몸이 움츠러들 만큼 통증이 동반된다. 얇고 가느다란 침이 손끝으로 들어오는 순간, 마치 전류가 흐르듯 몸이 움찔하고 경련하듯 몸이 수축된다. 눈을 지그시 감고 침을 맞던 환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고통스러운 소리가 어지럽게 들린다.
허리가 아프다는 남편에게 한의원 한방치료를 권했다. 남편은 혼자는 한의원에 가지 않을 것 같아 할 수 없이 내가 같이 동반치료를 해야 했다. 진맥을 한 한의사는 몸의 상태와 남편의 성격까지 꿰뚫어 보는 듯하다. 수십 년간 쉼 없이 달려온 직장생활을 마치고, 이제야 몸도 마음도 휴식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했다. 건강은 당연히 따라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여기저기서 반란이라도 일어난 듯 아픈 곳이 하나둘 생겨났다. 평소엔 느끼지 못했던 통증이 고개를 들고, 몸은 마치 그동안의 무리를 하나씩 고백하는 듯했다. 한의원 원장님은 환자마다 다른 체질과 증상을 세심하게 살펴 맞춤처방을 내린다.
침 맞는 공포심이 있는 남편은 여자환자들 틈에 끼어서 치료받는 게 마음 내키지 않은 듯하다. 원장님은 남편에게 침 치료는 기본이고 체력에 맞는 가벼운 운동을 하고 영양에 맞춰 식생활에 힘쓰라는 원론적인 처방을 내놓았다. 유독 침 맞기를 두려워하는 남편은 그래도 잘 참고 침을 맞는다. 한의사는 침을 꽂기 전에는 꼭 진맥을 한다.
“맥이 느리고 좀 불안정합니다.”
“네, 내가 맥을 짚어도 맥이 불안정해요.”
남편은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남편은 한의사의 말 한마디에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평소에도 건강에 예민하던 터라, 이번엔 마치 자신이 중환자라도 된 듯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당신이 한의사야? 무슨 맥이 불안정하다고 단정해?”
나는 어이없다는 듯 한마디 툭 던졌다. 그 순간, 병실은 잠시 웃음바다가 되었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공기가 풀리며, 환자들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자기 맥을 스스로 짚을 수는 있잖아요. 맥이 뛰는 건 맞잖아요.” 웃음을 참고 있던 옆 환자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던진다.
“살아있는 사람은 다 맥이 뛰어요. 맥이 좀 느리다고 다 병든 건 아니잖아요.”
내 말에 옆에 앉은 환자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하긴 남편이 한의원에 따라온 것만으로도 자기 건강에 조급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집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에 속이 더부룩하다고 할 때가 있다, 내가 수지침을 가져와서 침을 놔준다고 손을 잡으면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선다. 침을 맞으면 아프기도 하지만 한의사가 아닌 아내가 침을 놓는다니 뭘 믿고 몸을 맡기냐는 속셈이다. “나 안 아파. 전혀 불편하지 않아”
손에 놓는 수지침이 아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유난히 침에 대한 공포심이 많다. 침 맞는 공포심 보다는 불편하게 밤을 보내는게 나을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 그가 건강이 염려되어 침을 맞는 것은 건강에 대한 지나친 염려증이 때문이다. 아내에게 붙들리다시피 한의원에 온 이상 치료에 전념해서 건강 염려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