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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해후

by 샤론의 꽃


인생의 후반기를 살아가면서 무엇 때문에 사는지의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 젊음을 불사르며 치열하게 살아온 과거는 개인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자신의 책임을 거의 다 했다고 느끼는 순간 이미 이 사회의 비주류 층으로 밀려나 있다. 지방에 사는 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펜션을 하기 때문에 어디를 마음 놓고 다닐 수 없는데 볼일이 있어서 수원에 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언젠가 동생에게 바닷가 백사장위에서 밀려오는 푸른 파도를 바라보는 것으로도 힐링이 될 것 같다는 말에 손을 내저었다. 그것도 여행 온 사람들이 보는 시각이지 날마다 반복된 해변 가의 생활은 유배생활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우리들이 생활 속에서 휴식이 필요할 때는 휴양지를 찾아가듯 동생은 휴식이 필요할 때는 친지들을 만나거나 고향집을 다녀오는 정도였다. 각자 바쁘다 보니 얼굴보기도 쉽지는 않다.


동생에게 말했다. 시간에 쫓기며 살지 말고 시간을 활용하며 살자고, 집에 온 동생과 외출 준비를 했다. 고향옛집에 살던 엄마의 친구분이 건강이 안 좋아서 서울로 올라와서 노부부가 생활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어려서부터 이웃에서 살갑게 대하던 분들이라 한 번쯤 보고 싶었다. 부모님들끼리 친구였고, 동창친구 P의 부모님이었다. 부모님들끼리 친 하자 자연히 자녀들끼리도 좋은 친구가 된 것이다. 건강이 안 좋은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자기 집 주변에 부모님 이 기거할 집을 마련했다는 소식을 P에게 들었다. 아버지는 거동을 하지만 어머니가 심한 골다공증으로 휠체어를 탄다는 말을 들었다. 꼭 한 번쯤 보고 싶은 분이었는데 동생이 온다기에 같이 뵈러 가자고 약속을 했다.


친구 P에게 전화를 했다. 부모님 뵈러 갈 테니 부모님 집에서 만나자고, 아들만 넷을 둔 P의 부모님은 아들 넷이 다 자리 잡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지만 유난히 P가 부모님을 살뜰히 챙기는 것 같았다. 보통 아들 둘 둔 집에는 큰아들은 과묵한 반면 작은 아들은 딸처럼 싹싹하고 부모님을 살뜰히 챙기는 그런 면이 있는데 P도 그런 유형이었다. 자기가 사는 집 옆에 부모님을 두고 사소한 생활이나 건강을 체크해서 형과 동생들과 의논이 잘 맞는 것 같았다. 바쁜 P에게 사업장을 비우게 하는 것도 미안했지만 오랜만의 외출이라 이해할 것 같아서 오전에 바쁜 일 마치고 오후에 만나기로 했다.


동생을 데리고 남대문시장에 갔다. 쇼핑 끝나면 약속시간이 거의 맞을 것 같았다. 동생은 시장구경 하는 것도 여행이다. 패션타운 매장 안에는 여성복 의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많은 옷들이 걸려있지만 공급과 수요의 법칙이 있는 곳에는 제품도 사람도 몰리게 돼있다. 액세서리와 옷을 구매한 동생은 살고있는 가까운 곳에 대형시장이 있는 것도 생활에 좋은 조건이라며 가격대비 좋은 품질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약속시간에 맞도록 지하철을 타고 친구부모님 집 근처에 와서 전화를 하자 P의 형이 마중 나왔다. 어려서 같이 장난하고 놀던 세월이 까마득한데 부모님 모습을 꼭 닮은 그의 모습을 알아보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린 시절 냇가에서 같이 물고기 잡고 숨바꼭질하며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우리는 거의 반세기가까이 서로 잊고 살다가 노년의 흰머리에 삶의 이력처럼 붙은 눈가에 진 주름이 자연스러운 나이가 되어있었다. 흘러간 물은 되돌아오지 않듯 지나간 세월도 다시 오지 않는다. 우리가 방문할 거라는 소식을 듣고 두 동생들도 와 있다며 일부러 시간 맞추어 기다리고 있었다며 활짝 웃었다. 옷은 새 옷이 좋지만 사람은 역시 옛사람이 좋았다.


역에서 가까운 곳에 집이 있었다. 아파트나 빌라에서 사는 줄 알았는데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단독주택 1층이었다. 마당에는 큰 나무 두어 그루가 하늘을 향해 키 자랑을 하고 있었다. 되도록 시골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일부러 1층 나무 있는 집을 택했다며 밖에 나가지 못하는 부모님의 사정을 고려했다. 새들이 나무 위에서 재잘거리는 소리도 시골정취를 연상케 했다. 방안에 들어서자 노인 한 분이 앉아 계셨는데 젊어서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방에 앉아계신 어머니 옆에 백발의 남자분이 서 있는데 아버지의 옛 모습이었다. 어쩌면 총각같이 늙지도 않고 그대로라고 했더니 그는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했다. 어머니만 늙고 아버지는 옛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았다고 하자 아버지가 아니고 셋째 아들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은 모습이었다. 옆방에 계시던 아버지도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다. 젊은 시절 어머니는 무척 예의 바르고 점잖은 분이었다.


정갈하고 깔끔한 어머니의 부지런함과 큰소리 내지 않고 아들 넷을 바르게 양육한 어머니의 모습은 신사임당을 연상케 했다.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는 어머니는 옛 추억을 떠올리며 돌아가신 친정엄마를 회상했다. 자매처럼 친하게 지냈는데 그렇게 먼저 가실 줄 몰랐다며 울먹였다. 날마다 요양보호사가 와서 생활을 도와준다 했다. 워낙 깔끔한 분이라 정리정돈이 잘된 생활을 하다가 요양보호사가 해 주는 일이 본인의 성에 차지는 않은 것 같다. 친구 P가 대견했다. 요양원을 선택하지 않고 부모님의 생활을 최대한 배려해서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마음 씀씀이가 기특했다. 젊어서 고생하고 산 부모님이 어느 정도 보상받은 느낌이다. 자녀들에게 보상을 바라고 자녀들을 양육하지는 않지만 자기 살기 바빠서 부모님들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하는 현실인데 사업장과 부모님들을 돌보기가 쉽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젊음은 순간 스쳐 지나가는 화살 같다. 우리가 부모님들의 나이가 되니 부모님들은 세상을 뜨거나 거동이 불편한 몸이 되었다. 언젠가는 우리가 가야 할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 쓸쓸한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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