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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 꽃 Dec 21. 2024

잔소리

4년전의 이야기



  먼 길을 가는데 혼자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갈 길을 못 찾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들핀에서 길을찾고 있었다. 주변에 도움을 청할만한 사람은 없고 길을 못 찾은 나는 혼자 끙끙대고 팔을들어 휘젓고 있었다.

  요란한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꿈이어서 다행이다. 기력이 소진된 내 몸은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비틀거리며 일어났지만 다리에 힘이 빠져 휘청거리며 가누지 못한 몸을 남편이 붙들었다. 입안은 바짝 타올라 입천정이 쩍쩍 갈라진 것 같다. 체온기를 이마에 댄 남편이 열이 39도까지 올랐다며 해열제와 물을 가져왔다. 고열에 시달리니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지인 세 명이 우리 집을 방문해서 같이 커피 마시고 이야기하며 놀다간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되었다. 혹시나 내가 잘못해서 방문자까지 감염시킨 게 아닌가 싶어 전화를 해봤더니 그들은 멀쩡한 것 같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려면 코로나 검사받고 미증상이라는 확인증을 가지고 가야 진료가 가능하다. 일요일에도 검사가 가능하여 남편과 함께 진료소를 찾았다. 바깥바람이 겨울 날씨임을 입증한다. 회색하늘은 심술궂은 얼굴로 태양은 모습을 감추고 있다. 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다. 열이 나니 턱이 덜덜 떨리고 오한이 온다. 검사받으러 온 사람들이 긴 줄로 서 있다. 온몸을 방호복으로 감싸고 투명방독면모자와 마스크로 무장한 보건요원들이 곳곳에서 안내를 한다. 무슨 일로 왔냐며 묻는다. 고열이 계속돼서 왔다고 하자  콧속과 목 안에 긴 면봉을 넣어서 검취한다. 결과는 다음날 아홉 시쯤 문자로 온다고 한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입안이 타들어 가는데 누룽지물만 끓여서 마셨다.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다.  


  오전 아홉 시가 되자 보건소에서 문자가 왔다. ‘코로나검사 결과 미증상입니다.’. 한편 마음이 놓였다.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병원에 갈 수 없었다. 코로나검사를 마치고 검사확인서를 가지고 가야 진료가 가능하다. 평소 다니는 병원에 갔다. 의사는 증상을 물었다. 며칠 전부터 소변을 배설하고 나면 방광염 증상 같은 느낌이 있었다. 평소 소변색도 맑았는데 약간 혼탁한 느낌이다. 병원에 가야지 하면서도 미루다가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안심하고 있던 차에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 검사 결과 신우신염 증상이라고 했다. 주치의는 이 병 자체가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야 되는데 용케 잘 참았다며 안정과 휴식을 권했다.

  약을 복용해도 고열은 계속되었다. 몸은 불덩이인데 오한은 계속된다. 자다가 일어나서 추가로 약을 먹어야 몸은 겨우 진정되었다. 약을 먹고 좀 편안해지면 꿈속에서 헤매기 일쑤였다. 알길 없는 낭떠러지 근방을 서성이는 나는 손을 휘저어 몸부림치며 끙끙 앓았다. 남편이 몸을 흔들며 체온기를 이마에 댄 것을 알고는 꿈이라는 게 안심되곤 했었다.


  아직까지는 건강하게 살아왔는데 어쩌면 죽음의 문턱에 와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마음에 걸린 것도  없을 것 같다. 어차피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이라는 운명을 같이 타고나는 인생인데 조금 더 오래 살자고 추하게 늙어가면서 주변사람들에게 짐이 되는 삶보다는 조금 먼저 간다고 억울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양시설에 근무하면서 노인들의 삶의 끝을 지켜본 나로서는 병든 몸으로 오래 사는 것만큼 불행한 인생은 없다고 생각해 왔다. 건강하게 활동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축복의 하나다. 하지만 죽음이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밤이 되면 열이 더 났다. 약봉지를 입에 털어 넣고 보니 저녁 약이 아니라 점심 약을 잘못 입 안에 넣었다. 그렇다고 입안에 넣은 약을 뱉을 수도 없고 저녁 약은 취침시간이 길기 때문에 약 성분이 좀 더 추가됐을지라도 큰 영향은 없을 것 같았다. 잘못 먹었다고 저녁 약을 또 먹을 수도 없었다. 약을 제대로 먹었는지 약봉지를 검사하던 남편은 저녁 약 안 먹었다고 핀잔을 준다. 점심 약과 바꿔먹었다고 사실대로 말했다. 남편은 약을 제대로 먹지 않고 맘대로 바꿔먹으니 몸이 빨리 낫겠냐면서 지청구를 끝없이 쏟아냈다.

  화가 났다. 몸은 납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겁고 말대꾸할 힘도 없는 사람에게 너무한다 싶어 왜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했더니 아픈 내가 걱정되어서 그랬단다. 걱정되면 신경 쓰지 말고 편히 쉬게 하려는 게 아니라 반복되는 듣기 싫은 말로 대체하는 그 속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몸만 불타오르는 느낌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주체하기 어렵다. 망할 놈의 잔소리가 화근이었다. 4년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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