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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던 그해 여름

by 샤론의 꽃


오후 해 그림자가 바닥에 길게 늘어졌다. 적도의 날씨가 이 정도로 더울까 하는 의심이 든다. 땡볕에 종일 햇볕아래 서있는 목마른 나무는 잎을 말아서 갈증을 호소한다. 한바탕 비라도 쏟아지면 대지위의 식물들도 해갈되어 한시름 놓을 것 같다. 한낮 더위를 피해서 공원나무 그늘에서 끼리끼리 놀고 있는 노인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한쪽에는 할아버지들의 장기 두는 풍경이 시골 마을 골목 같다. 놀이터를 점령한 꼬마들을 지키는 할머니들은 놀이기구를 갈아타는 곳마다 감시하듯 쫓아다닌다. 흥겹게 뛰노는 꼬마아이들과 노인들이 공원의 단골손님이다.


집에 들어온 남편은 기진맥진 힘 빠진 모습이다. 냉수를 벌컥거리며 마시고 샤워하러 욕실에 들어갔다. 속옷을 준비해서 두고 벗어놓은 속옷을 가져오는데 땀내가 진동한다. 러닝셔츠 등 쪽에 소금 알갱이 같은 염분에 절여있다. ‘아니 염전에서 일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땀을 이렇게 많이 쏟아서 속옷이 소금에 절였나?’ 물기를 털며 나오는 남편에게 무슨 일 하냐며 물었다. “사실 숯 만드는 곳에 가서 불가마 앞에서 일하느라 땀을 많이 흘려서 그래” 더위를 피해 공원에서 놀다 온 나는 황당한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아들은 대학 4학년 올라가면서 해외 어학연수를 원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데 아들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고민 고민 하다가 호주에 이민 가서 자리 잡고 살고 있는 작은아버지께 숙식만이라도 해결해 주면 좋겠다고 도움을 요청했다. 부탁한 쪽이나 부탁을 받은 쪽이나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해외 사는 친족신세 지고 살다가 서로 안 좋은 감정으로 마음의 상처만 남기고 갈라진 경우를 가끔 봤다. 절실한 마음으로 한 부탁이지만 작은아버지도 혼자 독단적으로 대답할 처지는 아니라서 생각해 보겠다며 통화를 끝냈다. 고민 끝에 작은아버지의 OK사인이 떨어졌다. 서로 좋은 감정을 공유하며 살다가 종손자 문제로 어떤 안 좋은 결과가 생길까를 고민하다가 훗날 오해보다는 조카의 경제적 어려움을 고려해 준 덕분이다.


남편은 쉬는 날은 아르바이트라도 하겠다며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도 그냥 기술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사람이 일을 하면 몸을 쉬어줘야 기본체력을 유지하는데 아무리 자기 몸이라고 그렇게 혹사시키면 어떡할 거냐며 말려도 일주일에 이틀 하는 거 큰돈은 아니어도 집에서 쉬는 것보다는 낫다며 고집을 부렸다. 겨울도 아니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 숯가마 굴에서 뿜어 나오는 열기를 뒤집어쓰고 구워진 숯을 삽으로 꺼내는 일을 하는 현장에서 막노동을 한다는 말을 했다. 내국인 노동자들은 없고 불법 이주노동자들 몇 명이 작업하는 곳에서 일하고 온 모양이다.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당장 그만두라고 말렸다. 남편은 못 할 일도 아니고 약속한 대로 일 끝날 때까지 하면 된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강인한 정신력이 아니면 도저히 버틸 수 없는 막노동 일을 그는 거뜬히 이겨냈다. 그해 여름은 그렇게 보내야 했다.


절대로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 것 같은 여름도 떠밀리듯이 살며시 사라졌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은 마음의 짐을 한결 가볍게 해 주었다. 남편은 가끔 머리가 아프다며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들쭉날쭉 아프다며 병원에 갔다. 담당의사는 혈압이 높다면서 좀 더 두고 보다가 계속 이런 상태라면 혈압약 처방을 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혈압약복용을 해도 마찬가지로 두통은 따라다닌다 했다. 담당 의사는 MRI검사를 해야 이상 유무를 안다면서 검사를 했다. MRI판독결과 미세한 말초 뇌혈관 제일 끝부분이 막혀 있다며 혈관문제 라고 했다. 간헐적 뇌졸중 판정을 받았다. 담당의사는 입원해서 며칠 치료받으면 괜찮다며 크게 염려할 정도는 아니니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조마조마했던 마음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내려놓은 느낌이다.


8인실 병실 안은 오가는 보호자들과 환자지인들이 무더기로 문병 와서 떠들고 가는 소란스러운 분위기였다. 안정을 취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식성 까다롭지 않은 남편이 식사를 거의 하지 못 했다. 호박죽을 사다 겨우 식사를 한 후 자리에 누워있던 남편은 어지럽다고 했다. 담당의시나 간호사가 몸 상태를 체크하고 퇴원날짜까지 잡아주었다. 어지럽다는 소리에 엄살 하지 마라고 나는 환자에게 윽박지르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남편은 얼굴이 하얗게 변해서 침대 위에 대각선으로 누워 있었다. 급히 간호사를 호출했더니 산소 줄을 코에 연결해 주었다. 얼굴색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옆 침대에 있던 환자가 걸어와서 남편얼굴을 들여다보더니 멀쩡한 사람이 코에 줄은 왜 연결했냐며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는 50대 젊은 환자였다. 뇌수술을 했는지 삭발한 머리를 감추려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심심하면 병실복도를 걸어 다니다 침대로 다시 돌아오곤 했다. 뇌수술 환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판단력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유리창 가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던 그도 집으로 돌아갈 퇴원 날을 기다리는 것 같다. 우여곡절을 겪은 후 집으로 돌아왔다. 여름 땡볕에 숯가마굴속에 들어가 숯을 굽던 아르바이트로 몸을 혹사시킨 후유증으로 건강에 이상이 온 것 같았다. 내 몸도 잘 다스리면서 적당히 부려야 한다.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부작용을 남겼던 그 여름의 뜨거웠던 열기만큼 마음 졸였던 한 해의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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