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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원 Nov 19. 2019

용기

01

2020, 겨울


일단 나는 에세이를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종이로 된 책을 펼치게 된 이런 역사적인 순간. 왜 하필 ‘얘’인가, 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큐티 우진이 선물해줘서. (애정 하는 친한 언니다. 두 살 차이 나는데 그냥 이름 부른다. 하극상.) 이 책을 보면 내가 떠오른다고 했다.


- 엥. 왜?

- 보면 알아.

- 책 읽을 시간 없는데.

- 핑계.

- 우진인 날 너무 잘 알아.


백세희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은 SNS를 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알 거라고 생각한다. (소문이 엄청났더라고.) 입소문에 의하면, '이때 나왔던 다른 에세이들과 다르다.'라는 평이 가장 많다. 솔직히 다르긴 다르다. 제목 보면 알겠지만, 죽고 싶은 순간에도 인간의 욕망이 떡볶이로 이끈다. 마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라는 느낌의 제목이랄까. 근데 공감한다. 솔직히 힘들어서 눈물이 줄줄 나는데 곱창은 먹고 싶더라. 곱돌이네 곱창이 그렇게 먹고 싶더라.



*


작가는 우울증을 앓고 있고,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약을 복용한다. 병원에서 상담을 하며 의사와 나누었던 대화를 책에 담았다고 한다. 사실 나도 꽤나 오래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약을 복용한다. 충격 고백. 누가 들으면 '그 병원 어디야? 당장 고소하게. 돌팔이 아냐?' 따위의 말을 뱉을 수도 있지만 부정하지 마라. 사실이다. 아주 친한 지인들만 알고 있었다. 굳이 숨기려고 한 건 아니고. 단지 물어보지 않아서 답을 하지 않았을 뿐.


책 읽어 보면 왜 유명해졌는지 알겠더라. 읽다 보면, ‘어, 이거 내 얘기 아냐? 헐. 그럼 나도 우울증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정하면 쉬운데. 아마 시선이 두려워서겠지? 우울증 환자라고 손가락질받을 이유도 없고, 동정의 눈빛을 받을 이유 전혀 없는데. 감기 걸린 사람한테 손가락질하고, 동정하고 그러지 않잖아. (내가 여기서 말하는 감기는 콧물 주르륵 그 감기. 열 펄펄 말고.) 우울증은 어쩌면 요즘의 우리 세대는 다 겪고 있을지 모르는 감기다. 우린 온전치 못한 사람들이니까.  


*


책에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도 그래!'라며 손뼉을 칠 만한 사건이 하나씩 적혀 있다. 전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는 우울증. 우울함. 솔직히 꺼림칙한 단어다. 내가 처음 우울증이란 아이를 겪을 때 그랬거든. 내가? 말도 안 돼. 돌팔이네. 욕을 뱉었다. (그땐 죄송했습니다.) 난 내가 곧 죽을병에 걸린 사람 같았다. 그래서 처음 병원에 발을 들일 때, 미술 치료를 처음 시작할 때, 처음 약을 복용할 때 창피했다. 주변 사람들이 몰랐으면 했다.  


병원에 처음 갔던 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그 순간 심장이 얼마나 쿵쿵거렸는지 모르겠다.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 정말 긴장했다.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리던 그때. 띵.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나는 허리를 퍽퍽 두들기며 옆에 있는 한의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반대편에 있는 신경정신과로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아뿔싸. 아무래도 길을 잘못 찾은 듯. 여긴 내가 올 곳이 아니다. 근데 제대로 걸어 들어온 거 맞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는 건데, 내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단 생각은 안 든다.


다들 그런 경험 있지 않나? 귀찮은 결과가 보이니까 이것저것 뭐든 대충. 그니까, 무슨 이야기냐면. 미술심리치료 말이다. 그걸 처음 시작할 때, 나 보고 다짜고짜 흰 스케치북에 크레파스인지, 색연필인지 따위를 쥐어 주고는 아무거나 그리랜다. 진짜 아무거나. 그런데 내가 만약 여기서 흰 종이를 검은색으로 덮어 버리고, 빨간색으로 뭔가를 써. (물론 극단적인 예시다. 난 초록색이 좋다.) 아니면 안 그려요. 하면서 스케치북을 날려. 그럼 난 어디 이상한 사람이 되겠지? 그럼 맨날 여기에 출석 도장 찍어야겠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 봤다. (미디어의 폐해.) 그래서 꼼수를 부렸다. 그래서 최대한 알록달록, 예쁘고 평범하게 그렸다. 내 열다섯의 처음은 그랬다. 그 나이에 심리 상담가를 속여 먹었다. 물론 들켰다. 열다섯이 그렇지 뭐. 난 처음이 아주 엉망이었다. 그것 때문인지 철이 드는 데에 아주 오래 걸렸다. 아-주 오래.


*


이야기는 차차 이어서 하기로 하고. 어쨌든 내가 우울증을 단순히 감기라고 생각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아마 여러분도 오래 걸릴 거다. 짧으면 좋은 거고. 이런 내가 있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항상 전부를 잘해왔다고는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분명 나도 겁이 났다. 등에 땀이 흐르고, 손에 땀이 맺혔다. 우울증이 쪽팔리다면서 난 환자니까 괜찮아, 라면서 도망치려고 한 모순적인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이 한 줄을 써 내려가는 쿨한 현대인이 되어간다는 게 아닐까. 어려운 게 전혀 아니다. 여러분도 언제든 이 시대의 쿨 펄슨(쿨한 사람이란 뜻.)이 될 수 있다. 사실 나도 아직은 한참 멀었지만 꾸준히 나아가려고 하는 게 스스로 대견. 오늘 하루를 열심히 달린 여러분도 대견. 우리가 울며 보냈던 그 무수한 밤들은 전혀 헛되지 않은 밤이다. 그런 날들이 있어 지금의 당신이 있으니까. 헛된 밤이라고 할 수 없다.


*


백세희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하루도 채 안 돼 가볍게 다 읽을 수 있다. 글이 대화 형식이라 그런지 잘 읽힌다. 한 번쯤은 읽어봤으면 좋겠다. 그대들의 생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이 책에서 가장 좋아했던 구절 하나를 말하고,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불완전함이 불완전함에게'


세상의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동경하는 그 사람도 실수를 하는 사람일 테고, 어떨 땐 자기 전 침대에 누워 눈물, 콧물 다 빼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의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그 자리에 있고, 지금도 완성해가고 있다. 불완전한 그들이 불완전한 나에게 자극을 주고, 불완전한 나 역시 누군가에게 자극을 준다. 그러니까 너무 자기 자신을 자책하지 말자. 조급해하지도 말자.






나는

불완전하더라도, 견고해 보이는 사람으로

하루를 살아가도록 오늘을 버텨본다.

여러분도 파이팅. 우리 모두 견고하고 단단하게.

휠지언정 부러지지 말자.



2019.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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