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드려요

우리동네 나의손주

by 김Genie

미자가 아픈 날, 우리는 모여 앉아 일종의 작당을 했다.


'아픈 미자를 위해 무엇을 사다 주면 좋을 것인가.'


서희는 미자가 요리하기 쉽지 않을 것이니 반찬을 사자고 했다. 태리는 감기에 좋은 비타민 가득한 과일을 사자고 했다. 감기약도 사자고 했고, 다이소에 들러 핫팩 같은 것도 사자고 했다.


우리는 길을 나서기 전 편지부터 썼다. 아픈 미자를 위로하며 얼른 나아 만나자는 내용이 주였다.


'할머니께! 안녕하세요. 할머니! 할머니께서 아프단 소리 듣고 너무 걱정됐어요. 쌍화탕이랑 반찬 드시고 힘내세요. -동네손주 서희-'

'할머니께. 안녕하세요. 할머니께서 아프시다길래 걱정이 이만 저만 했어요. 할머니 많이 못 만났지만 감기약과 반찬을 준비했어요. 잘 드세요. -태리가-'


우리 반 3명을 차에 태우고 일종의 읍내 같은 곳을 갔다. 그곳은 태리의 나와바리였기 때문에 태리의 가이드를 따랐다. 태리가 처음으로 우리를 데려간 곳은 반찬가게였다. 아이들은 해맑았지만 사장님 눈에서 의심의 레이저가 나왔다.

'이 시간에 애들이 여기를 왜 오는겨. 학교도 안 다니는 애들인가? 근데 이 어른은 뭐여?'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했다.

"얘네는 00 초등학교 6학년이고요, 저는 얘네 담임이에요.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아프셔서 반찬 사다 드리려고 왔어요."


사장님의 눈에서 의심이 걷히고 기특함과 감동의 감정이 떠올랐다. 사장님은 아이들과 무슨 반찬을 사야 합당한 지 심도 있게 논의했다. 기력을 차릴 땐 뭐니 뭐니 해도 미역국이었고, 씹지 않아도 녹아버리는 장조림과 비타민 가득 삼색 나물 반찬까지 샀다.


우리가 고른 건 총 만 원이었는데 사장님이 무려 오천 원짜리 오징어젓갈을 서비스로 주시겠다고 했다. 이것은 상도덕에 어긋나는 것 같아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사장님은 기필코 서비스를 주겠노라 선언하셨고, 결국 오천 원짜리 젓갈을 이천 원에 사는 것으로 서비스 실랑이는 마무리되었다. 사장님은 우리처럼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일에 함께 하고 있으니 우리 아이들도, 나도, 사장님도 좋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약국도 가고, 다이소도 갔다. 아이들은 다이소에서 예쁜 쇼핑백과 파란색 머플러를 골랐다. 우리 아이들은 무척 신이 나있었다. 그리고 서른세 살을 먹었으나 열세 살 같은 내가 제일 신이 났다. 기분도 좋은 데 눈앞에 인생 네 컷 가게가 있었다.


"얘들아, 인생 네 컷 찍을래?"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인생 네 컷 가게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골라준 흉측한 선글라스도 쓰고 요상하게 생긴 칼도 들었다. 우리는 우습게 서로를 꾸미고 딱 붙어서 사진을 찍었다. 십 년 뒤, 이십 년 뒤에 봐도 웃음이 새어 나올 사진이었다.


쇼핑백에 반찬, 머플러, 약, 편지를 예쁘게 담아 미자 집 앞에 내려놓았다. 쇼핑백에 담긴 건, 미자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었다. 미자가 얼른 나아 우리와 함께 놀기를 바라는 마음, 미자가 아픈데 먹을 게 없어 막막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상큼한 과일을 먹으며 기분까지 상쾌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우리는 그런 마음을 미자에게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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