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부터 12년을 같이 살던 말티즈가 떠났다. 팔뚝보다 작은 게 없어졌는데 온 집이 텅 빈 느낌이 소름 돋게 싫었다. 나는 자꾸만 밖으로 나돌았다. 길 걷는 동안 비슷한 개라도 마주칠까 봐 땅만 보고 걸었다. 겨우 겨우 시간을 보내다 집에 돌아오면 현관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문을 열어도 그 개가 나를 반기러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주하기 싫었다. 현관에 서서 엉엉 우는 청승도 그만하고 싶었다.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나가 살려고."
엄마는 나를 잡지 않았다. 나는 그 길로 집 멀찍한 곳에 투베이 자취방을 구했다. 다이소 같은 데서 인테리어 제품을 잔뜩 사 좁은 자취방을 더 좁게 만들었다. 빈 구석을 모조리 채우고 나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자주 눈물이 떨어졌고, 무심히 닦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싫어 여전히 길을 걸었다. 동네를 빙 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반짝이는 애견샵을 지나쳤다. 여러 작은 개가 유리창 너머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 고만고만 작은 와중에, 똑같이 어린 눈을 가졌는데 덩치가 큰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레트리버였다. 나를 보곤 꼬리를 마구 흔들며 자기를 안아달라고 낑낑 울었다. 간절한 눈빛이 마음에 담길까 싶어 그 후로 애견샵이 있는 골목으로는안 걸었다.
작은 회사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그 애견샵을 지나치게 되었다. 열흘 만에도 눈에 띌 정도로 레트리버가 훌쩍 커있었다. 케이지가 작아 보였다. 최대한 작은 개를 입양하려는 마음들 틈에서 조금 크다고 아무도 안 데려갈 것 같았다. 스펙이 떨어진다고 아무 회사도 안 데려가는 나 같았다. 버스에서 내려 애견샵 유리문을 밀었다.
"어서 오세요."
애견삽 주인이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물었다.
"이 레트리버, 주인 안 나타나면 어디로 가나요?"
"아, 레트리버 입양하시게요?"
"입양이 안되면 어떻게 되는데요?"
"지금 좀 크긴 했는데 애는 되게 순해요. 30만 원에 드릴게요. 원래 레트리버 100만 원 넘는 건 아시죠?"
30만 원을 내고 그 아이를 데려왔다. 지금 그 아이는 4살이 되었고, 여전히 내 곁에 있다. 혼자 사는 데다 직장도 다니기 때문에 이 아이는 큰 한숨을 내쉬며 하루종일 나를 기다린다. 나는 겨우 출근 전에 30분, 퇴근하고 1시간 아이와 산책을 한다. 10시간 넘게 근무하는 입장에선 최선이라고 변명하면서.
나와 함께 하는 이 아이의 삶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돈 많은 주인도 많고, 하루종일 같이 있어주는 주인도 있고, 마당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하는 집들도 많다. 나와 함께 하는 삶은 이 아이에겐 차선도 아니고, 차악쯤이다. 나는 매일 최선을 다하지만, 여전히 미안하다. 이 세상에 나뿐인 애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에 대해. 의도치 않게 퇴근이 늦어지는 날에는 버스에서 엉엉 운다.
'이 아이가 나로 인해 입양되지 못했을 때의 최악의 삶만큼은 피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 하나를 붙잡고 오늘도 미안한 마음을 가득 안은 채 힘차게 산책을 나서본다. 최선의 주인이 아님을 미안해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사랑을 주는 너에게 고마운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