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었다. 남편은 자고, 큰개는 자는 듯했다. 이른 저녁 침대에 누워 일간 이슬아를 읽다 잠든 뒤 여러 시간 후였다. 어스름한 불빛에 이른 아침인가 기대했으나, 겨우 2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남편이 큰개 밤산책을 시켰는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큰개에게 "오줌 마렵니?" 물어볼 수 있다면 좋을 일이다.
몸을 일으켰다. 온통 나뿐인 큰개가 고개를 들고 꼬리 끝을 살랑인다. 나는 현관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토끼모양 고무공과 목줄을 집어 들었다. 큰개가 두 눈을 크게 뜨고 응시한다. 잠깐의 대치 후 현관문을 열었다. 큰개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현관으로 걸어온다. 씩 웃으며 큰개 목에 줄을 걸었다.
털이 수북한 꼬리를 추켜세우고 길을 걷는다. 고관절 수술로 유독 씰룩이는 엉덩이마저 위풍당당함을 거든다. 주인과 함께 걷는 게 좋다는 듯, 주인도 좋지 않냐며 묻는 듯 헥헥 웃으며 자꾸만 나를 올려다본다.
깊은 새벽이지만 두렵지 않게 걷는다. 최후의 순간까지 지켜주리라 예상되는 큰개가 옆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 걱정 없이 밤공기를 맡고, 새벽 소리를 듣고, 몇 개의 불빛을 본다.
큰개가 똥을 싼다. 기대했던 건 오줌이었으나, 큰개는 만족스러운 배변활동 후 뒷발질을 하며 '개들아, 내 똥냄새 맡아.' 당당히 선포한다(인간이 산 정상에 올라 "아호"를 외치는 것과 비슷한 행위라 한다). 속을 비우고 가뿐해진 큰개가 폴짝폴짝 뛴다. 뭐라도 쌌으니 집으로 돌아간다.
새벽의 고요함 속에 일간 이슬아를 펼친다. '이 새벽에 독서라니.' 낮에 봤던 효리네 민박 속 책을 읽는 아이유가 떠오른다. 운치와 감성에 젖을락 말락 한다. 그런데 큰개슥희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왜?"
묻는다. 큰개가 수건을 물고 폴짝 뛴다. 터그놀이를 해달라는 요구다. 신랑은 자고 밤은 깊었는데, 큰개는 흥분했다. 이건 감당이 되지 않는 일이라 다시 길을 나선다. 어쩌면 이 모든 게 큰개의 계획일지 모르겠다. 주인 놈이 이러면 나가겠지 별 수 있겠나.
큰개가 또다시 꼬리를 추켜세우고, 동네 개들의 오줌 냄새를 구석구석 맡는다. 2시보다 3시가 가까웠다. 집에 가면 다시 아이유처럼 고요히 독서를 하겠노라 계획한다. 큰개는 꽤나 뛰었고, 기다리던 오줌은 나오지 않았으나 흥분은 해소한 듯 보였다.
다시 집에 왔다. 큰개가 물을 벌컥벌컥 먹고 남편 옆 이부자리에 누웠다. 나는 따뜻한 물에 티백 하나를 올렸고, 일간 이슬아를 읽으며 상념에 잠겼다.
'우리는 자신이 한 이야기에 영향을 받는 존재'
문장이 좋아 다이어리에 옮겨 적는다. 큰개가 다시 거실로 나와 나를 응시한다. 그러곤 따라오라는 듯 터벅터벅 현관 앞에 걸어가 선다.
"개슥희."
사실이지만 욕 같은 말을 내뱉고, 다시 큰개와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이 새벽에 엘리베이터를 세 번이나 타는 건 낭비라고 훈계를 두고, 흥분도, 오줌도, 똥도 한 번에 해결하면 얼마나 합리적이냐고 묻는다. 큰개의 위풍당당한 꼬리는 여전히 하늘 높은 줄 모른다.
큰개는 오줌까지 시원하게 싸고 들어와 이제야 얌전히 눕는다. 편한 잠자리 놔두고, 내가 앉은 식탁 옆 구석자리에 억지로 몸을 맞춘다. 안방에 가서 눕고 싶지만, 주인이 안방에 가기 전까진 불편해도 참는다. 온통 나뿐인 큰개여서 나는 언제나 큰개 옆이다.
이건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한 일이다. 너에겐 온통 나뿐이지만, 내 인생엔 너무 많은 것들이 있어 나는 자주 집을 비우고 떠난다. 큰개는 한 시간을 여덟 시간처럼 주인을 기다리고, 나는 그걸 알면서도 놀러 가고, 배우러 가고, 사람을 찾으러 간다. 큰개가 온통 나와 함께 해주는 덕에, 한 순간도 외롭지 않게 살면서 나는 여전히 많은 것을 원하며 종종 거린다.
큰개는 주먹만 한 앞발을 턱 내밀며 나를 안는다. 나는 큰개를 한껏 끌어안는다. 큰개는 내가 안고 싶을 만큼 한없이 품을 내어준다. 원하는 만큼 큰개의 구순 내를 맡고, 촉촉한 코를 만지고, 볼을 비빈다. 그러고 나면 큰개를 두고 책을 읽고, 게임을 하고, 유튜브를 본다. 큰 개는 내 옆에 엎드려 나를 기다린다. 바라봐주는 순간, 안아주는 순간, 길을 나서는 순간, 그때까지 하염없이 시간을 흘린다.
가끔 이 관계에 대해 생각할 때면 눈물이 찔끔 난다. 개는 주인에게 온 영혼을 다 주기 위해 태어났다는 댓글을 보고는 엉엉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