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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람 Mar 01. 2024

내 발목에는 골칫덩이가 산다

- 걷기 31일 차 -

발목이 성치 않아 다른 이들보다 조금 일찍 출발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길에 출발까지 늦으면 도착 시간이 지체될까 염려됐기 때문이다. 얼마를 걸었나, 무심코 뒤돌아보니 해돋이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마치 동백꽃의 열정을 보는 듯 가슴이 울렁인다. 이런 일출을 만난 건 좋은 징조라며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순례길 위에서 만나는 해돋이는 항상 변화무쌍하다. 불타던 그것이 사그라질 때까지 변모하는 하늘의 색감이 신비롭고 아름다워 넋을 놓고 바라보다 발걸음을 옮긴다.  


기분이 좋아졌다. 발목은 천천히 걸으면 걸을 만하다. 빨리 걷겠다는 욕심은 벗어 놓은 지 오래이니 어떤 문제도 없다. 보기 좋은 해돋이에 맑은 날씨를 기대하며 전진한다.      

출발이 순조롭다. 자전거 순례자가 유쾌하게 나를 스쳐 지나간다. 얼른 손을 흔들며 호응하니 기분이 산뜻하다. 거기에 더해 함께 걷는 길동무가 둘이나 되니 이 또한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데 얼마를 걸었나, 일행들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자꾸 뒤처진다. 발목의 느낌이 심상치 않다. 포장도로가 많아 스틱을 사용하지 않은 탓인가 싶기도, 보호대를 너무 조였나 싶기도 하다. 불안감을 감추려고 심호흡을 하지만 소용이 없다. 마음이 심하게 동요한다. 안 되겠다 싶어 ‘빨라스 데 레이’가 7km 정도 남은 지점에서 내 다리 상태를 일행에게 알렸다.  커피 한 잔 마시며 쉬어가기로 했다. 야외 의자에 앉기 무섭게 발목 보호대부터 벗었다. 새로 산 것의 사이즈가 너무 딱 맞아 벗기 버거운 걸 보니 발목이 많이 부었나 보다. 


내 발목에는 골칫덩이가 산다. 어르고 달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 까칠한 녀석이다. 어떻게 하면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을까 궁리궁리하지만 영 말을 듣지 않는다. 꽉 막힌 고집불통이 세상살이의 어려움과 통해 있다. 시원한 바람을 쏘이며 골칫덩이를 어루만진다. 걷기를 마칠 때까지 이 녀석과 잘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빨라스 데 레이(Palas de Rei)’에 도착하는 순례자들은 대부분 긴장을 풀고 시간을 즐긴다고 한다. 목적지가 80km도 안 되게 남았기에 도착 직전의 여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나도 그들처럼 그렇게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골칫덩이를 달래 놓고 다시 걷는다. 개울을 끼고 걷는 사람은 나뿐이다. 평소라면 개울가를 걷는 낭만을 만끽했을 텐데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다. 

날씨의 변화가 극명하다. 비가 추적이며 내리더니 길의 질퍽함까지 더해져 이유 없이 감정에 기복이 생긴다. 마음이 가라앉으니 깊이를 모를 우울감이 스멀거리고 나는 자연스레 그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아주 조그만 성당을 지나면서 예전에는 그곳이 순례자를 치료하던 병원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작은 성당은 문이 잠긴 채 문고리를 흔들어도 반응이 없다. 한적한 길가의 소박한 성당들은 대부분 문을 잠근 채 지내다가 주일에만 개방하는가 보다. 지친 순례자에게는 이렇게 외진 곳의 작은 성당이 깊은 산속에 있는 옹달샘 같을 텐데.    

  

야곱이 걸었던 길 위에서 굳게 잠긴 성당을 지나자니 마음이 복잡하다. 순례자에게 개방해서 기도의 시간을 갖도록 할 수는 없는 걸까. 이 길을 걷는 모든 이들이 쉬었다 가도록 의자를 내주면 안 되는 걸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관리적인 측면에서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든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이 똑같을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기진맥진했다. 비까지 내리니 곤혹스럽기도 했다. 알베르게에 도착했을 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내 다리가 내 것이 아닌 듯 왼쪽 발목이 아팠다. 그래도 무사히 빨라스 데 레이까지 왔으니 다행이다. 길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다음에 다시 걸으면 될 텐데 뭘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내 이웃 중에 이런 류의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다시 와 걸으라고? 며느리, 아내, 엄마인 초로의 여자가 얼마나 큰 용기를 내고 떠난 길인데 이걸 중도에 포기하라고? 그건 나를 제대로 모르니까 하는 말이다. 나는 열악한 상황에서 더 강해지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 길 걷기의 마무리까지 나답게 할 것이다. 나는 ‘하람’이니까.

      

하람은 엄청난 마음고생으로 힘들어하던 시절에 스스로 만든 나의 닉네임이다. ‘하늘이 내린 사람’을 내 맘대로 줄여놓고 고뇌할 일이 생기면 스스로 자기 암시를 하며 이겨냈다. 그렇게 지나온 세월이 얼마인데 끝이 보이는 길 위에서 포기하겠는가. 아름다운 마무리로 내 삶의 한 페이지를 잘 넘길 것이다.      


배정받은 도미토리 침상의 1층에 짐을 놓기 바쁘게 연고 형태의 소염진통제로 발목을 마사지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김 대리가 자신이 해 주겠다며 다가왔다. 남자의 손아귀 힘은 실로 엄청났다. 통증이 고통스러워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 챙김이 고맙기도 했거니와 다시 부어오른 발목을 다스려 놓아야 내일 걷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내일은 걸을 거리가 좀 길어 마음이 무겁다. 목적지가 얼마 안 남았는데 제발 이 골칫덩이가 더 큰 심술을 안 부렸으면 좋겠다.    

    

* 걷기 31일 차(뽀르또마린~ 빨라스 데 레이(Palas de Rei)) 25.5km, 누적거리 729.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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