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람 Mar 04. 2024

이우넛의 '나도 걷고 싶다'

- 걷기 33일 차 -

어제 제니퍼가 ‘아르수아’에는 특별한 쎄요를 찍어주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뻬드로우소(Pedrouzo)로 출발할 때 잊지 말고 바에 들러서 낙인 쎄요를 찍고 가라 했다. 그러나 난 남들과 달리 특별한 발목을 갖고 있지 않는가. 빨리 걷지 못하는 내가 낙인 쎄요를 찍겠다고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다. 배려가 고마워 잠시 흔들렸지만 마음을 다잡는다. 쎄요를 찍기 위해 이 길에 선 것이 아니기에 망설일 까닭도 없으니 말이다. 여느 때처럼 동트기 직전인 7시를 확인하며 알베르게를 나선다.      


거북이처럼 걸으며 남들과 똑같길 바랄 수는 없다. 남들보다 한 걸음 더 빨리 출발해도 언제나 그들보다 두 걸음 늦게 목적지에 도착하니 말이다.      

   

중간 마을 ‘살세다’에 도착했을 때 제니퍼를 또 만났다. 처음 보는 남성과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낯선 이는 루마니아 사람 ‘이우넛’이라 했다. 그들은 아픈 다리로 걷는 나를 응원하겠다며 아르수아에서 살세다까지 건너와 기다리고 있었다. 특별한 낙인 쎄요를 찍어준다는 사람은 바로 이 사람, 이우넛이었다.  

속울음의 끝을 잡고 다니던 내가 무장 해제되었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 꺽꺽거리며 엄청 울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나에게 쎄요는 흥미의 대상일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크레덴시알을 두세 장 구입할 때 초연했던 것도 이런 까닭이다. 나는 그저 까미노길의 완주를 증명할 한 장의 크레덴시알만 있으면 충분하다. 진실로 나를 위한, 남에게 보이기 위한 걸음이 아니기에 야곱의 순례길 위에서 법정 스님 법문집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고, 중간에 점프를 하며 즐길 수 있던 것도 모두 이런 까닭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크기가 보이지 않는 이우넛의 마음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제니퍼의 배려가 몰고 온 울림으로 마음이 아렸다.


“나도 걷고 싶어. 그런데 걸을 수가 없어. 넌 다리가 모두 있으니 걷는데 문제가 없잖아. 꼭 완주하길 바랄게”     


이우넛이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려 자신의 다리를 보여주었다. 깜짝 놀랐다. 의족이었다. 걷고 싶으나 걸을 수 없는 길이기에 그는 이 길 위에서 바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순례자에게 어디서도 보지 못한 음각의 낙인 쎄요를 찍어주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생업을 접은 채 나를 응원하기 위해 자동차로 도시 간 이동을 한 것이다. 감동스러웠다. 눈동자가 새빨개지도록 뜨거운 눈물이 대책 없이 쏟아졌다. 지금까지의 내 삶에서 이보다 더 큰 울림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이며 심리학자인 ‘프랑수와 를로르’의 실화 소설 『꾸뻬 씨의 행복여행』이 떠올랐다. 책 속 주인공인 꾸뻬 씨는 정신과 의사이다. 그의 진료실에는 많은 것을 갖고 있으나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늘 넘쳐난다. 꾸뻬 씨도 어느 날 자신 역시 행복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알고 싶어 세계 여행을 떠났다. 그는 여행 중에 많은 사람을 만났으며 깨닫는 무언가가 있을 때마다 수첩에 기록을 했다. 그 과정 중에 알게 된 가장 큰 행복의 비밀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었다. 그러니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에 이룰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임을 자각해야 한다.

     

이우넛은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금의 행복’을 만끽하는 사람이었다. 직접 걷지를 못하니 걷고 있는 순례자들과 소통하며 대리만족하는 삶, 그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장애가 생기기 전의 세월을 아쉬워하거나 오지 않은 시간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서 친절을 베풀 수 있음에 행복해했다.     

 

감사하다. 인간이라서 느끼는 고마움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인생의 가을 어느 날, 스페인의 한적한 길 위에서 맞닥뜨린 가슴 떨리는 행복감. 이것이 몰고 올 미래의 행복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종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은 아르수아 주변은 온통 초원 지대로 목가적인 풍경이 이어진다. 소와 양이 노닐며 한가로이 풀을 뜯는 길을 걷는데 행복이 넘실댄다. 그러나 이곳의 날씨는 예측을 못하겠다. 걸을만하면 비가 쏟아지고, 흐렸다고 툴툴거릴라치면 맑아진다. 지금도 맑았던 하늘에서 한 차례 비를 뿌렸다. 질퍽이는 길 위를 축축한 기분으로 걷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이 벅차오른다.      


하늘에 쌍무지개가 선명하게 떴다. 이우넛과 헤어진 직후였다. 까미노길 위에서 자주 비를 만났으나 무지개는 처음이다. 먹먹했던 가슴이 감동으로 급변했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이런 풍경이 별빛의 들판 산티아고 데 꼼포스텔라까지 이어진다면 누구나 행복에 빠질 것만 같다.  

     

“나도 걷고 싶다”는 이우넛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잊을 수 없는 큰 선물이 되었다.     

 

* 걷기 33일 차 (아르수아~ 뻬드로우소(Pedrouzo) 20km / 누적거리 779.5km)     

작가의 이전글 나의 수호자, 라푼젤 언니와 제니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