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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든 8할은 산속 오솔길이다

by 하람

나는 인간다운 인간을 지향한다. 잘 웃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 냄새 나는 사람과 어울리길 소망한다. 이런 사람은 삶의 지향점이 나와 비슷할 것만 같아 시간을 공유하고 싶어진다. 주관적인 사람냄새는 무어라 정의하기 어렵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고 잡을 수 없는 공기이다. 그런 까닭에 산속에서 우연히 이런 사람을 만나면 행복하다. 말이 통하는 이와의 소통은 마음 근육을 탄탄하게 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예전에 믿었던 사람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커서 계속 덧나던 때가 있었다. 일상 유지가 안 될 만큼 괴로워 히말라야로 들어갔다. 히말라야는 눈이란 뚯의 ‘히마’와 거처를 뜻하는 ‘알라야’가 합쳐진 이름이다. ‘눈의 거처’라서 히말라야를 ‘세계의 지붕’이라 칭하나 보다. 나는 그 지붕을 보호막 삼아 내 상처를 보듬고 싶었다. 히말라야의 신에게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위로해 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산 속에서 한국인 트레커 두 명을 만났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을 통해 치유하라고 히말라야의 신이 보낸 선물 같았다. 그들과 소통하며 내 마음이 한 뼘 더 성장했음이 느껴졌다. 상처로 파인 자리에 새로운 사람 둘을 채워 넣고 돌아왔다.

둘 중 한 사람은 ‘삼천포’에 살고 있다. 지금의 ‘사천시’이다. 나의 길동무인 이 친구는 곰삭은 홍어처럼 맵싸하다. 그러나 속을 알고 나면 이같이 순수하고 진실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또 한 명은 ‘부산’ 사나이로 경찰특공대 출신답게 체격 좋은 운동 마니아이다. ‘삼천포’ 친구가 막걸리라면 ‘부산’ 사나이는 증류식 소주 같다. 외적인 모습부터 전체적인 분위기가 판이하게 다르다. 그러나 이 둘은 쌍둥이처럼 서로 말이 잘 통한다. 거기에 숟가락 하나 얹은 사람이 바로 누이이며 누님인 ‘나’다.


‘부산’ 사나이와 함께 ‘삼천포’ 친구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 지방의 매력에 빠졌었다. 현지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30 가구의 작은 섬 ‘마도’로 건너가 멋지게 순간을 즐겼다. 내 삶의 주인공으로서 잘 살고 있다는 인증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때문일까, 이들과 함께 길 위에 서면 나도 꽤 괜찮은 사람 같아 우쭐거리게 된다.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들과의 어울림은 사람 냄새 나는 사람으로 영글게 하는 햇살인 것 같다.


산길을 걷게 된 이후 삶이 달라졌다. 산속 오솔길은 이기심을 버리라고 가르쳤고, 마음을 다스리라 조언했다. 나의 변화는 확연했다. 얼굴 표정이 달라졌고, 가족을 대하는 태도 역시 예전과 달랐다. 하루하루가 즐거워 가끔은 딸과 함께 카페 탐방을 다니며 스몰 럭셔리를 즐기기도 했다. 명성만큼 규모가 엄청난 곳, 커피보다 디저트가 더 매력적인 곳, 풍광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 등 참 다양한 곳을 다녔다. 그런 와중에 집에서 엎드리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작은 카페를 발견했다. 이곳은 오래된 기와집을 리모델링해 만들었기에 소박하지만 정다웠다. 운영자가 꽤 높은 등급의 커피 바리스타라고 했다. 그러나 꼭 그 때문은 아니었다. 아지트로 접수할 수밖에 없도록 커피 맛이 내 입에 착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카페에서 여유롭게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힐링이다. 입에 맞는 커피를 앞에 놓고 이 정도 호사는 누릴 자격이 있다며 스스로 작은 사치를 부릴 때 나는 행복하다. 슬리퍼를 끌고 가도 흉잡힐 것 같지 않은 공간에서 다시 길 떠날 궁리를 하며 화려한 비상을 꿈꿀 때는 살아 숨 쉬고 있음이 감사하다.


언젠가 친구와 산행을 다녀온 남편이 말했다.

“좋은 길을 하나 발견했는데 언제 같이 걸으러 갑시다.”

그 길을 남편과 걸었다. 피톤치드로 꽉 찬 소나무 길은 많이 알려진 곳이 아니라 고요했다. 이런 산길을 걸으면 마음이 온유해진다. 평정심을 유지하며 여유롭게 걷는 길이 더할 수 없이 좋다. 나는 마음껏 걷고 돌아온 날이면 ‘최고의 안식처는 역시 집이야.’를 되뇐다. 집은 나를 보듬는 울타리이자 힘이고, 가족은 힘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참 신비롭다. 어떤 사람을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에 따라 삶의 자세가 달라진다. 평소의 생활습관에도 영향을 끼친다. 함께 걷는 이들을 통해 얻는 마음의 평화는 생각을 나누기에 가능한 일이다. 묵묵히 걷는 걸음걸이에서 그들의 마음 내공이 보이면 안정이 찾아든다.


세월은 거저 흐르지 않았다. 희로애락이 켜켜이 쌓이며 삶의 지표를 제시했다. 그 안에는 걸으며 깨우친 세상을 향한 열린 마음도 들어 있었다. 그래서 고맙다. 산속 오솔길이 나에게 삶을 맘껏 누리라며 소소한 행복을 얘기하는데 어찌 멈출 수 있겠는가. 느린 삶을 지향하며 보기 좋은 모습으로 걸어가는 내가 정말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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