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
‘히말라야의 신이시여! 제가 이 땅을 밟도록 허락하소서.
내 안의 울림을 스스로 들을 수 있도록, 당신의 맑은 기운을 느끼고 돌아갈 수 있도록.
나마스떼!’
간절한 마음으로 히말라야의 신께 기도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밟아보고 싶은 땅 히말라야를 걷기 위해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로 건너왔다.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사람보다 차가 우선인 도시. 이곳의 타멜 시장에서 달러를 현지 화폐 루피로 환전했다. 도시 풍경은 우리나라의 70년대 같았고, 전봇대에 엉켜 있는 전선은 이곳을 찾는 세계인들이 삶의 무게를 걸어놓은 듯 무질서하게 어지러웠다. 생활환경 역시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거리는 심한 매연으로 눈이 따갑고 목이 메케해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걸어야 했다.
최종 준비를 마친 다음날 이른 아침, ‘포카라’로 출발하기 위해 나간 공항에서 어이없는 말을 들었다. 기상 악화로 비행기가 이륙하지 못한단다. 30분이면 갈 수 있는 도시 간 이동을 장장 8시간에 걸쳐 버스로 갔다. 운전기사가 포장도 되지 않은 좁은 도로를 곡예하듯 운전해 조마조마했다.
히말라야는 첫걸음이라 긴장됐다. 트레킹은 ‘포카라’에서 다시 차로 여러 마을을 경유한 후 작은 마을 ‘힐레’에서 시작되었다.
안나푸르나 남봉(7,219m), 히운출리(6,441m)를 옆구리에 끼고 조망하며, ‘반단티’ (2,210m)를 지나 ‘고라파니’의 롯지에서 첫날을 머물렀다. 숙소 환경은 최악이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랜턴이 없다면 움직일 수 없었고, 나무 침대는 축축해 침낭에 방수커버를 씌워야 했다. 그러나 가장 큰 고통은 잠들지 못하는 것이었다. 방과 방의 구분을 베니어판으로 해 놓아 옆방 사람의 코 고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했다. 안나푸르나 유일의 예배당이라던 ‘나야풀’의 작디작은 예배당을 떠올리며,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하며 밤을 지새웠다.
장마철 히말라야 트레킹의 가장 큰 복병은 거머리이다. 이 녀석이 피를 빤 부위는 지혈이 안 돼 피가 쉽게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봄철 트레킹이라 신경도 안 썼던 거머리가 ‘지누단다’에서 ‘시와이’까지의 구간에 집중 포진해 있었다. 땅도 나무도 물기를 머금은 축축한 길이었다. 계곡이 뿜어내는 물소리는 하늘을 찔렀고, 발은 진창길을 빠져나오기 바쁘게 다시 빠져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뒤에서 걷던 사람이 악을 쓰듯 소리를 질러댔다. 바지로 배어 나온 핏빛은 모두가 놀라기에 충분한 선홍빛이었다. 사투를 벌이듯 거머리들과 벌인 전쟁은 두 시간이 지나 ‘시와이’에 도착해서야 끝이 났다.
첫새벽에 푼힐 전망대로 해맞이를 나갔으나 날씨가 흐려 조망이 아쉬웠다. 다울라기리, 안나푸르나, 마차푸차레, 히운출리가 장막에 싸인 듯 희미하게 보였다. 그러나 온 천지를 채운 새들의 지저귐은 압권이었다. 청아하고 맑은 소리에 밀려 마음속 찌든 찌꺼기가 빠져나가는 듯했다. 히말라야의 날씨는 예측할 수 없었다. 맑았다고 좋아하면 비구름이 몰려와 소나기를 뿌려댔고, 부랴부랴 판초우의를 입으면 손톱만 한 우박이 떨어져 걸음이 지체되곤 했다. 다행히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도착한 ‘츄일레’의 롯지는 쾌적했다. 롯지 마당 한쪽에 좌판을 펼친 여인에게서 히말라야 신의 눈이 들어간 팔찌를 샀다. 모조석이었으나 영묘한 히말라야 신의 눈이 축복을 내려주길 바라는 나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촘롱’에선 야크 모로 뜨개질 한 비니를 600루피에 샀다. 이곳 물가로는 꽤 비싼 축에 들지만 원화로 계산하면 6,000원 정도이다. 며칠째 감지 못한 머리에 비니를 쓰고 만족의 웃음을 날렸다. 포근했다. 산에 들어온 이후 샤워는커녕 물티슈로 얼굴과 손만 닦았다. 그러나 몸에서 냄새가 나거나 머리가 가렵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른 곳임은 분명했다.
‘촘롱’에서 ‘시누와’까지의 코스는 힘들었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 급경사가 이어졌고 3천 개의 계단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경사진 밭에서 일하는 구릉족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밭을 일구며 아이들을 키운다는 이 여인은 남편은 타지로 나가 돈벌이를 하고, 집안을 꾸려가는 건 대부분 자신의 몫이라고 했다. 강인한 생활력에 고개가 숙여졌다.
안나푸르나 남봉과 3봉, 마차푸차레를 눈꼬리에 달고 걸었다. 봄날을 즐기는 한갓진 트레커 눈에 비친 설산의 위용은 대단했다. 네팔의 국화인 랄리구라스가 만발한 꽃길을 걷는데 갑자기 날씨가 돌변해 온몸으로 우박이 쏟아졌다. 날카로움이 살을 에이는듯했다. 스틱을 잡은 양 손에 힘이 들어갔다. 붉은 팥을 던져 잡귀를 떨쳐내듯이 우박덩이들이 내 속의 나쁜 것을 떼어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몸은 추위로 떨었지만 정신은 더욱 맑아졌다. 그러나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를 지나자 머리가 아파왔다. 따뜻한 물을 계속 마셨다. 호흡 조절을 하며 속도를 최대한 늦춰 걸었다.
트레킹 7일째 오후 4시에 최종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에 도착했다. 숙소 배정을 받은 후 박영석 대장과 일행들의 추모비를 찾아갔다. 울컥했다. 목젖으로 뜨거운 것이 올라와 감정 조절이 힘들었다. 안나푸르나 남봉을 비롯한 히말라야의 파노라마를 보는 둥 마는 둥했다. 머리가 계속 아팠다. 타이레놀을 먹었지만 효과가 없는 듯 가슴까지 답답했다. 문명이 차단된 히말라야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잠자는 것인데 잠조차 오지 않았다.
이른 아침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일출을 맞이했다. 히말라야의 풍광이 햇빛에 반사되어 황금빛으로 변하자 가슴이 뛰었다. 이 현장에 서 있다는 게 꿈만 같았다. 또 다른 나를 만나기 위해 걸은 이 길이 앞으로 내게 어떤 영향을 줄지 자못 기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