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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서 Aug 29. 2020

제나 입양일기 part 2.

아주 오래된 관계

I.


대영박물관에서 봤던 이집트의 개가 떠올랐다.


죽은 자들의 신, 아누비스가 진리의 저울로 죽은 자의 심장을 재고 있다.


런던 대영박물관의 이집트 갤러리에는 사람 미이라 뿐만 아니라 개의 미이라도 전시되어 있었다. 검고 기다란 이집트의 개는 벽화에도 등장했으며, 조각상으로도 남아 있었다. 벽화에 자주 보였던 죽은 자의 신 ‘아누비스’는 개의 얼굴과 인간의 몸통을 가진 신으로, 죽은 자들의 심장을 저울에 올려 놓고, 천국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 판단하는 심판 역할을 했다.


“저 때에도 개를 키웠나봐. 기원전인데.”


“이집트 개는 다 저렇게 길었나봐?”


엄마와 아빠가 그런 대화를 나눴었던 것 같다.


늠름하게 가슴을 떡하니 펴고 앉아 있던 조각상은 분명 귀족들의 집앞을 지키던 모습이었으리라.


출처: British Museum


그런데 참, 희한하다. 벌써 십여년 전에 보았던 첫 유럽 여행의 아득한 잔상이 갑자기 머릿속을 스친 건 왜일까.


하늘나라로 떠난 아리는 맵시 있는 이집트 개가 연상되기엔 몸통이 짧고, 납작한 얼굴에 털은 희고 보드라웠다. 같은 개라고 해도, 느긋하고 복슬복슬한 시츄인 아리로부터 날카로운 사냥견의 모습을 한 이집트의 개를 떠올릴 순 없었다. 하지만 제나는 달랐다. 제나는 닥스 훈트 믹스로 몸통이 길고, 몸통을 덮은 진갈색 털은 마치 바람이 빗어낸 듯 윤기를 띄며 차분히 가라앉았다. 아리를 떠올리면 나는 아직도 베란다 햇살 아래 발라당 누워서 오르락 내리락 하던 분홍색 배가 떠오른다. 따뜻하고 연한 동물의 속살. 창밖의 새소리에 덮여 나지막이 들리는 아리의 깊은 날숨. 하지만 제나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공중에 뜬 활처럼 달려나가는 검은 실루엣이다. 산책 중 거리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100미터, 200미터를 목줄을 하고 나와 나란히 신나게 달리는 긴 몸통. 힘차게 아스팔트를 내딛는 날렵한 발. 힘찬 붓글씨의 한 획과도 같은, 바람에 나부끼는 진갈색 털의잔상.

   

어디 겉모습 뿐인가. 오후 해가 길게 창가에 드리울 때 즘에나 기지개를 켜고 느릿느릿 움직이던 아리와 비교하면, 제나의 하루 일과는 롤러코스터급으로 파란만장하다. 아침에 일어나 동그란 검은 눈으로 꿈벅 꿈벅 나를 쳐다보는 것도 잠시, 창밖 수풀 사이로 길고양이가 지나가거나, 아파트 복도를 지나는 택배 기사 아저씨들의 발걸음이 들리면 귀를 쫑긋 세우고 쏜살같이 달려가 월월월!! 짖기 시작한다. 한참이나 짖고 으르렁댄 후에야 다시 아무일 없었다는 듯, 내 무릎에 올라와 손바닥을 낼름 낼름 핥아댄다. 마치, "나 잘했지?" 하며 적들에게서 주인을 지키기라도 한 듯한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낮잠 자다 깬 멍한 아리의 모습. 이 방석에서 하루 16시간은 족히 자곤 했다.


처음 제나와 만났던 날, S가 찍은 사진. 뛰는 모습은 너무 빨라 도무지 찍을 수가 없었다.

 

"사냥견종이었던 닥스 훈트의 피가 흐르긴 하나봐."


S는 제나가 불현듯 짖고 으르렁대면 예끼, 혼을 내다가도, 제나의 기민함과 날렵함이 짐짓 대견스러운 듯 했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16년동안 아리라는 한 마리 느긋하고 온순한 개에 맞춰진 나의 습관과 루틴은 제나가 오고난 후 송두리째 뒤엎어졌다. 아리와 함께 다녔던 뒷산을 오를 때에도, 아리의 보폭에 맞춰 쉬엄쉬엄 올랐던 뒷산을 제나의 걸음... 아니, 점프에 맞춰 오르다보니 20분 걸렸던 유유자적 산보가 7분의 짧고 굵은 유산소 트레이닝이 되었다.


아파트 단지내를 산책할 때에도 마음 놓을 틈이 없다. 지난 수년간 아파트 단지에서 아리와 산책할 때, 동네 다른 개가 아리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짖으면, 아리에게 "어머 아리야, 쟤 왜저런대?"라고 속삭이며 태평하게 가던 길을 가던 나였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제나는 지나가는 동네 개의 꼬리라도 발견하면 단지가 떠나가라 짖어댄다. 치와와처럼 작은 소형견부터 푸들, 불독, 리트리버까지 가리지 않고 짖어대니, 나는 이제 멀리 개의 목줄을 끌고 산책하는 견주의 머리카락만 보여도 숨기 바쁘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가끔 나보다 먼저 제나가 건너편에 걷는 개를 발견이라도 하면, 이미 한 발 늦은 것이다. 정면으로 마주치지도 않았는데 제나의 시야에 들어온 것만으로 우렁찬 샤우팅을 들으니, 상대편 견주들은 불쾌하단 눈빛으로 제나를 흘겨볼 수밖에. 불쾌한 견주들의 목줄 끝에는 부들 부들 떠는 강아지도 있고, 혹은 숨겨왔던 이빨을 보이며 더욱 거센 샤우팅으로 맞받아치는 강아지도 있다. 이윽고 5동에서, 10동에서, 더 먼 동에서도 "앙! 앙!" 하고 집에서 조용히 낮잠을 자던 강아지들이 깨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제나야... 이 동네 개들 다 집합시키게...?"


그렇게 제나와의 산책은 고도의 집중과 민첩함, 그리고 빠른 걸음을 요한다. 덕분에 매일마다, 제나와 집밖을 나가면 작은 모험(?)을 맞이할 심신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다.


아리와 제나는 개과(Canis lupus familiaris)라는 같은 생물학적 학명 아래 속해있을 뿐, 사실상 단 하나도 닮은 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저... 정말...
전혀 다른 생명체를 키우고 있는 것 같아요."



수화기 너머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유기견 사랑 베품이(유사베)' 입양관리매니저 G가 깔깔 웃으며 길게 설명 안 해도 안다는 듯, 맞장구를 친다.


"아리랑 너무 다르겠죠. 아리는 시츄였잖아요. 또 제나는 유난히 호기심 많고, 어리고, 똑똑하니까요."


부엌에서 전화를 받던 나는, 거실 한가운데 양지 바른 곳에 놓인 아리의 작은 납골함에 눈이 간다. 작고 흰 도자기 함에는 '아리' 라고 이름이 적힌 테이프가 붙어 있다. '밤하늘의 작은 별이 되었습니다' 라는 문구와 함께.


"아리도... 시츄 치곤 똑똑했는데..."


"아리맘님 이야기 들어보면, 아리는 시츄 중에서도 유난히 온순한 강아지 였던 것 같아요. 제나는 닥스 훈트 믹스이기도 하지만, 또 유기한 주인이 제나를 어떻게 키웠는가가 성격 형성에 영향을 많이 줬을 거에요. 다른 강아지와의 사회성이 많이 부족한 걸로 봤을 때, 아마 산책도 안 시키고 집에만 두고 키웠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밖에 나가서 다른 강아지만 보면 흥분하는 거죠."


“그런거겠죠? 원래부터 다른 강아지를 싫어하는 성격은 아니겠죠?”


“오히려 다른 강아지를 싫어하기 보다는 궁금하고 다가가고 싶은데 겁이 나서 짖는 걸거에요. 강아지만의 인사법을 어렸을 때 터득하지 못한 거겠죠.”


"아리는... 다른 강아지들이 아릴 보고 짖으면 짖었지, 단 한 번도 산책하다 먼저 짖은 적이 없었어요."


필름으로 찍은 제나. 집에서는 이렇게 다소곳이 누워 있지만, 바깥만 나가면 사고뭉치가 따로 없다.




II.




정식 입양을 앞두고 매니저 G와 전화 상담을 거듭해 오던 나는, 그녀에게 제나의 습관에 대해 묘사하며 나도 모르게 제나의 모든 행동을 아리와 비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리는 안 짖었는데, 아리는 잘 잤는데, 아리는 내가 나가도 낑낑대지 않았는데... 


“비교될 수 밖에 없죠. 아리맘님은 지난 16년동안 아리만 키웠고 아리처럼 차분한 강아지가 익숙한거죠.


사람도 사람마다 다르듯, 개도 개마다 달라요.


개체마다 달라요.”


지금 돌이켜보면, 제나를 정식 입양하기 전, 석달동안 입양전제 임시보호를 했던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입양관리매니저 G가 애초에 이 "적응기"를 먼저 권유했을 때, 이 석달의 시간은 제나가 우리집에 적응을 하기 위해 우리가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그 석달을 겪어 보니, 과연 그 시간은 제나만을 위한 시간이었던가. 아니, 지난 3개월은 제나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도 더,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내 삶에 들어온 새로운 생명에 내가 적응하는 시간. 관찰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


나아가, 이 새로운 생명을 통해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난 아리를 더욱 잘 알게 되었던 시간.


제나의 행동들과 식습관, 배변 습관을 살펴보며 아리는 어땠더라? 라고 돌이켜보는 시간들은, 처음에는 아팠지만 나중엔 도리어 즐겁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제나처럼, 아리도 어렸을 때 오이를 좋아했던가? 아니, 아리는 상추를 좋아했어. 뻥튀기 과자랑... 아리도 우리가 밖에 나갈 때 짖었던가? 아니, 아리는 항상 분홍색 방석에서 우리가 나가는 뒷모습을 쳐다봤지. 아리는 어렸을 때에도 먼저 안아달라고 하는 법이 없었어. 껌딱지 제나와 달리, 아리는 우리가 안기 전에는 무릎 위에 올라오지도 않았지. 분리 불안이 없는 쿨한 녀석이었어.


나는 안개속처럼 흐릿해진 기억을 더듬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본다.  


그곳엔 오후 햇살을 맞으며 낮잠을 자던 아리가 있다.


털이 뽀얀 어린 아리가,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잠에서 깨어, 총총 걸음으로 나를 맞이한다.


그리고 그 곳엔, 책가방을 내려놓고 아리를 향해 팔을 벌리는, 교복 차림의 내가 있다.


기억의 저편에는, 발간 혀를 내밀고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어린 아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피크닉을 좋아했던 아리. 하지만 돗자리를 깔면 바로 누워버린다.


아리가 떠난 후에야 그 작고 아팠던 생명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나에게 무엇을 주고 갔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보다 작고 힘없는 동물을 보살피며 느끼는 기쁨.

나의 관심과 베품이 선사할 수 있는 작은 변화들.

성장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내 손으로 고칠 수 없는 질병이 닥치기도 한다. 언젠가는 수의사도 해결할 수 없는 이별의 시간이 찾아온다. 그 이별은 많이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왜 개를 키우나?


 

이 질문까지 도달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개는 평생동안 사람 아이 세 살의 지능으로 살아간다. G의 말마따나 개는 목이 말라도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지 못하고, 덥다고 스스로 에어컨을 켤 수도 없다. 모든 개의 선택과 운명은 주인에게 달려 있다. 개에게 주인은 이 세상의 전부이고, 살 수 있는 이유이자 수단, 목적이다. 개를 키운다는 건, 한 생명을 온전히 관찰하고 이해하고 보살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수용하고 수행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책임을 온전히 수행했을 때, 개들에게는 그것이 사랑이 된다. 주인의 행동은 감정을 낳고, 그 감정은 개의 다음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과 개의 관계는 수직관계가 아니라, 상호 교류 관계, 즉 연대이자 동맹인 것이다.


어떤이들은 말한다.

인간이 개를 좋아하는 이유는 개가 주인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반대를 생각한다. 인간이 개를 좋아하는 이유는, 개에게 주고 싶은 만큼의 사랑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플 땐 보살피고 건강할 땐 함께 뛰놀며, 말이 아닌 눈짓과 손짓으로 10년, 20년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반려 동물이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축복일 수밖에 없다.


보살필 수 있는 생명이 있다는 것이 인간을 얼마나 인간답게 만드는가.


나는 아직도 "아리를 왜 키우셨나요?" 라는 입양관리 매니저 G의 질문에 정확히 답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나와 우리 가족은 아리를 보살피고, 아리와 함께 살아가며, 조금 더 사랑의 표현에 익숙해지고, 조금 더 사랑을 주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고. 말 못하는 동물에게 따뜻한 밥을 주고, 잠 잘 자리를 마련하고, 그것이 철이 들고 나이를 먹고 병들어 죽을 때까지 함께했던 것은 평범한 우리 가족이 겪었던 그 어떤 날들보다도 경이로운 시간이었다고.  


2018년, 아리와 함께 갔던 애견 펜션에서.



제나와 함께한 지도 어느덧 5개월이 되었다.


제나는 여전히 산책 중 다른 강아지들을 보면 짖지만, 예전만큼 으르렁 거리며 목줄이 끊어져라 달려나가지 않는다. (주말마다 방문하는 제나의 훈련사 선생님은 오늘,  

“갈 길이 멀지만 좋아지고 있어요” 라며 희비가 섞인 위로를 살며시 건넸다.)

똑순이 제나는 이제 뒷산을 포함한 동네 산책길은 이미 다 외웠고, 횡단보도 앞에서는 아스팔트에 철푸덕 앉아 느긋하게 신호가 바뀔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안다. 밤엔 S의 배 위에 누워 꿈벅 꿈벅 조는 것을 좋아하고, 아침밥을 먹은 후엔 앞뜰에 지나다니는 고양이를 늑대의 눈으로 좇으며 창가를 지키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일주일 전, 산책중 나를 올려다 보는 제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앞으로도 많은 일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 터.

비록 그것이 어떤 모험이 될지라도, 제나와 S와 함께라면 즐겁게 나이를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 되었다.







개와 인간의 관계의 시초는 무려 만 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간다. 어떤 학자들은 이만 년, 길게는 사만 년 전까지로 추정한다고 한다. 농경사회도 전인 채렵시대, 아니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개와 인간의 동맹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어떤 학자들은 사냥을 위해 인간들이 늑대 새끼를 길들이기 시작했던 것이 시초라고 하고, 또 다른 학자들은 늑대들이 먼저 인간들의 거주지에 찾아와, 먹다 남은 고기나 뼈를 뜯어먹기 시작하며 동거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시작이 어느쪽이든, 지금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2020년, 우리와 함께 사는 강아지는 늑대과 ‘Canis lupus’ 중에서도 애견을 뜻하는 길들여진 개, ‘Canis lupus familiaris ‘라는 학명으로 분류되고 있다. 여기에서 라틴어 ‘familiaris’가 말해 주듯, 개는 인간의 ‘가족’이 된 지 오래다.



참고문헌:

<당신의 몸짓은 개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The Other End of The Leash> 페티앙 북스. 패트리샤 맥코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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