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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성 Nov 27. 2023

남편에 거는 기대가 컸다.

남편과 연애시절, 내겐 너무 과분한 남자친구라고 생각했다. 모범생 이미지에 공부도 잘하고, 바이올린 연주도 잘하고, 그림도 꽤 잘 그렸다. 정이 많고 감정이 풍부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인지 남을 배려해 주는 섬세함과 센스를 가졌다. 


그에 반해, 나는 일반상식도 별로 없고, 음악과 미술에는 전혀 소질이 없는 데다가, 애교도 없다. 그냥 좀 밝고, 친절할 뿐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퇴근하고 남자친구를 만나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만나는데도 다이어리를 하나 마련해서 서로에게 편지글을 써서 주고받았다. 편지글의 마지막엔 늘 '사랑한다'는 표현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2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신혼 때도 밤에 헤어지지만 않을 뿐 비슷한 생활이었다.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기에 밤 12시에 집 앞 푸드트럭에서 떡볶이를 먹는 것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일등 신랑감을 만났냐고 물어보았다. 그렇게 물어볼 때마다 내 어깨는 으쓱거렸다.


늘 자기 자신보다 나를 더 배려했고, 자신이 하고 싶고 먹고 싶은 것보다 나의 선호를 늘 먼저 물어봤다. 내 표정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렇게 나를 아끼고 귀중하게 여겨주는 마음이 고맙고 과분했다. 내가 받은 만큼의 관심과 사랑을 얼마나, 잘 되돌려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첫 아이를 맞이했고 우리 부부의 온 신경은 아이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지극 정성으로 잘 키우고 싶어 했고,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아이를 위해 동동거렸다.


아이가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남편은 집에서 차로 2시간 정도 걸리는 현장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평일에 현장 주변 숙소에서 잠을 잘 수 있도록 숙박비를 제공했다. 하지만 갓난아이가 있는 상황이라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아침에도 일찍 출근하고 저녁에도 아무리 빨리 집에 와도 저녁 8시가 넘었다. 직원들과 저녁 식사를 먹고 들어오는 날은 저녁 10시도 넘어서 들어왔다.


현장으로 가라고 지시를 내린 회사 관계자들에게 화가 났다. 아니, 뻔히 사정을 알면서 굳이 그렇게까지 멀리 출근을 시켜야 했나? 그렇게 많은 직원들을 두고 왜 우리 남편이지?


남편에게도 서운했다. 집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는 안중에도 없나? 굳이 저녁 식사를 하고 들어와야 하는 거야? 왜 그렇게 자주 저녁 식사 자리에 불려 나가는 거지? 거절할 수는 없었던 건가?




'육아'에 있어서 남편에 거는 기대가 컸다. 아이들에게 누구보다도 다정한 아빠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게 했던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흠뻑 줄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신생아' 육아는 다른 세계였다.


평일에 남편이 늦게 오는 날이면 난 늘 혼자서 아이를 씻겼다. 하지만 남편은 아이를 혼자 씻기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같이 해주기를 바랐다.


아이가 울면 기저귀를 확인하고서는 아이가 배고파서 그런 거 아니냐며 자꾸 아이를 나에게 넘겨줬다. 모유 수유를 하느라 방 안에 들어가면 자유시간을 얻은 양 편안해 보였다. 수유를 하다 보면 목이 너무 마른데 크게 불러댈 수도 없고 휴대폰도 가까이 없다. 방에서 안 나온다 싶으면 잠깐 방에 들어올 법도 한데 들여다보지 않았다.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나도 육아 초보라서 잘 모르겠으면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책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남편은 잘 모르는 내게 자꾸 물어보았고 어찌할 줄 몰라했다. 잘 놀아주는 듯하다가도 금세 지친 기색을 내비쳤다. 온종일 돌봤던 내가 보기에는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가 살짝 콜록거려도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원래 이랬던 사람이 아닌데 왜 저러지? 몸이 피곤해서 마음도 피곤 해진 건가? 잠을 많이 못 자서 그런가? 그렇다고 내가 잘 자고 있는 것도 아닌데... 원망스러웠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결과에서 기대치를 뺀 것이 행복이다.
- 돈의 심리학, 모건 하우절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나의 기대치가 컸다는 것을. 


나는 남편에게서 완벽한 아빠를 기대했다. 아내인 내게 해 왔던 것처럼 아빠의 역할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짐작했다. 


남편은 그냥 왕초보 아빠였을 뿐이다. 잘하고 싶었지만 잘 몰랐을 뿐이다. 잘하고 싶었지만 몸이 잘 따라주지 않았고, 잘 몰라서 당황했을 뿐이다.


작게 연습해 보며 오늘보다 내일 한 뼘 더 성장해 가면 되는 거였다. 그땐 몰랐다. 앞에 닥친 일에만 매몰되어 상황을 좀 더 객관화시키지 못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남편의 작은 애씀에도 인정과 칭찬을 해주리라. 

아니, 오늘부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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