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즐성 Nov 24. 2023

아이와 거리두기

친정엄마의 육아 방식에서 종종 서운함을 느꼈다.


학교에 다녀와서도 숙제는 했는지, 공부가 어렵지는 않은지 묻지 않으셨다. 공부를 하라는 말씀도 안 하셨다. 공부는 알아서 자기가 하는 거라고, 과일도 먹고 싶으면 네가 알아서 깎아 먹으라고 하셨다. 


사실 좀 서운했다. 다른 엄마들은 공부가 어렵다고 하면 학원도 알아봐 주고 여기저기 정보를 끌어다가 제시하는데, 엄마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방에서 공부하고 있으면 엄마가 과일 깎아서 건네주는 장면은 TV 속에서나 나오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자란 내가 시어머니의 양육방식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우리 집 스타일과 정 반대로 시어머니는 '헌신'의 아이콘이셨다. 한 끼 식사도 대충 차리는 법이 없다. 식사 시간에도 뭔가를 또 준비하시느라 식탁에 앉지 않으시기에 동시간대에 식사를 함께 한 적이 거의 없다. 길을 나서더라도 한결같이 현관문 앞에 나와 우리가 안 보일 때까지 서서 배웅하셨다.




내가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했을 때 대부분 시어머니가 오셔서 아이들을 돌봐주셨다. 남편의 아침 도시락을 싸주고, 며느리의 아침 상을 차려주셨다. 아이들 식판에는 아침상이라 하기에 많은 종류의 음식을 담으셨고 잘 안 먹으면 온갖 방법을 동원해 가며 먹이셨다. 누가 봐도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케어해 주셨다.


그 모습에 절로 존경심이 일었다. 한편으로는 되게 신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어머니처럼 나도 아이들에게 다정다감한 헌신적인 엄마가 되고 싶었을까? 아이들이 요구하는 사항을 잘 들어주고 웬만한 건 다 맞춰주었다. 


첫째가 만 3세일 때부터 만 8세일 때까지는 회사에 다니다 2번째 육아휴직을 하게 된다. 오랜만에 아이와 오랜 시간 함께 생활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학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과 달리 12시 30분이면 하교를 하기에 함께 있는 시간이 길었다.


그래도 많이 컸으니까 육아를 거뜬하게 해 낼 줄 알았다. 엄마의 시간도 가지며, 엄마의 공간도 누릴 수 있을 줄 알았다. 회사 다니느라 바빠서 못했던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엄마!! 이리 좀 와 봐!"

"엄마!! 나 물 좀 줘"

"엄마!! 나 똥 닦아줘"

"엄마!! 사과 먹고 싶어"

"엄마?? 엄마!!"


그놈의 '엄마'는 완전 동네 북이 되어 있었다. 혼자서 거뜬히 잘할 수 있는 일도 습관적으로 엄마에게 요청했다. 


내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음에도 궁금한 게 있으면 거침없이 물어본다. 그리고 당장 답변하길 바란다. 바로 대응을 안 해주면 짜증을 내기도 한다.


줌으로 독서모임을 하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유튜브 보고 있으라고 하면 좀 잠잠하다. 하지만 영상을 그만보고 둘이서 놀라고 말하고 줌을 하고 있으면, 급하지 않은 일인데도 지금 물어봐야 직성에 풀린다. 엄마의 시간에 대한 배려가 없다. 




모든 일정이 아이 위주로 돌아간다. 엄마나 아빠의 일정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주말에도 아이들이 필요한 옷을 사러 가거나, 액세서리 전문점에 가서 구경하는 등 아이들 위주로 모든 외출 일정을 잡는다.


엄마나 아빠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보다는 아이들에게 먹일 음식을 그냥 같이 먹는다. 배달음식을 시킬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메뉴를 정하고 음식 타입에 맞춰 메뉴를 추가한다.




육아의 목적은 자녀를 독립시키는 것이다. 20여 년 자녀를 키우면서 자녀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 수 있도록, 아이를 독립시키는 과정에서 필요한 힘을 길러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다.
- 오은영 교수


모든 것을 다 해주는 헌신적인 엄마가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엄마가 되기를 연습해야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처럼 아이와 거리두기가 필요했다.


물이든 우유든 마시고 싶다면 직접 떠먹으라고 얘기해 주었다. 대변 처리도 직접 하라고 했다. 밥을 먹고 나서는 자기 밥그릇은 직접 싱크볼에 넣을 수 있도록 했다. 학교 준비물도 내가 챙기기보다는 직접 준비할 수 있게 했다. 학교 과제는 필요한 소스를 모두 찾아주기보다는 혼자 할 수 있도록 조금 더 지켜보고자 했다. 


아이는 아이의 일이 있고, 부모는 부모의 일이 있다. 그리고 서로에게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엄마는 엄마의 인생, 아이는 아이의 인생이 별개라는 사실을 점차 연습해 간다.


아직도 연습 중이다. 이 연습과 훈련의 끝은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스스로 살아가는 힘이 바르게 길러지길 바란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 나름대로, 친정엄마는 친정엄마 나름의 방식으로 육아를 했다. 나도 나 나름의 육아방식을 선택한다. 아이가 서운함을 느낄까 봐 두려워하기보다는 마음이 단단한 아이로 자라리라 믿고 기대하며 양육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소파와 거실테이블 사이에서 몰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