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없이 어린아이 둘과 시댁에서 6개월간 살았다.
갓 연년생 엄마가 되어 아이 둘을 케어한다는 게 너무 두려웠다. 18개월 예민한 첫째와 이제 막 태어난 둘째를 동시에 케어할 그릇이 되지 못했다.
친정엄마는 암수술을 한 상황이라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돌봄 선생님은 집과 가까운 가정으로 옮기기로 했다며 떠나셨다. 시어머니가 잠시 올라오셔서 봐주셨지만 한계가 있었다. 남편은 시댁에 들어가 사는 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솔깃했다.
주변에서는 의아해하며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나는 물러설 곳이 없다고 느꼈다. 이 방법 밖에 없다. 이것이 최선이리라.
그렇게 경기도에서 경상남도로 1톤 트럭에 아이들 짐을 가득 싣고 이사 아닌 이사를 했다. 집에서 시댁까지는 최소 4시간이 걸린다. 남편은 금요일 저녁에 왔다가 일요일 늦은 오후에 갔다. 그렇게 주말부부로 지냈다.
방 3개 중에서 한 방을 내어주셨다. 현관에서 들어서자마자 왼쪽에 화장실이 있고 바로 앞쪽에 방이 하나 있었다. 오른쪽으로 꺾으면 왼편에는 거실, 오른편은 부엌이었다. 안쪽 좌측은 안방, 우측은 또 다른 방이 있었다.
우리 방은 화장실과 가까운 방으로 정해주셨다. 왼편에는 아기 범퍼침대 2개를 가로로 두고, 오른편에는 바닥에 까는 두꺼운 싱글 이불을 세로로 두었다. 딱 맞았다.
하루 일과는 굉장히 단순했다. 아이 돌보는 것과 하루 세끼 먹는 것, 딱 두 가지뿐이었다. 시어머니가 요리, 설거지, 빨래, 청소 등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셨다.
한 두 달은 그냥저냥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며 지냈다. 하지만 집안일조차 하지 않고 밥만 먹고 하는 일이라고는 아이들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며 뒤치다꺼리하는 것이었다. 그것만 하는데도 잠은 부족했고 이리저리 바빴다.
시부모님 댁이기에 내가 마음대로 할 수도 없었다. 시부모님께 내 주장을 펼치는 것은 조심스러웠다. 이러지로 저러지도 못한다 생각했다. 점점 무기력해져 갔다. 어두운 터널은 언제 끝이 나는 것인지? 과연 끝은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남편에게 힘들다고 구시렁대었지만 멀리 떨어져 있기에 남편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반대의 입장이 되고 싶었다. 내가 회사 다니고, 남편은 여기서 아이 돌보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모유 수유 중이라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증발하고 싶었다. 주변 상담센터를 부지런히 찾았다. 하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다. 시부모님께 뭐라 설명드려야 할지도 몰랐다. 괜히 시부모님이 부담스러워하실 것 같아서 표현을 하기가 힘들었다. 얹혀사는 주제에 집안일도 안 하고 애만 보면서 투덜거리는 며느리가 되기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폰을 보다가 우연히 어떤 드라마 첫 화를 보게 되었다. 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드라마의 줄거리가 신선한 데다 긴박감도 있고 다음 화가 너무 기대가 되었다. 작가님이 천재라고 생각하며 감탄을 연발했다.
본 방송이었기 때문에 다음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 날, 기대를 한껏 품고 아이들이 자기만을 기다렸다가 바로 플레이를 눌렀다. 아이들을 범퍼침대에 눕히고 옆의 두꺼운 이불 위에서 엎드려서 보려고 했다. 공유기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인터넷이 자꾸 끊겼다.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로 바꿀까 했지만, 외벌이라서 돈을 아껴 써야 한다는 강박증 같은 게 있었다. 아까웠다. 조금이라도 공유기와 가까워지기 위해 불 꺼진 거실로 나왔다. 시부모님은 안방에 계셨지만 물을 마시러 주방으로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영상을 보고 있다는 사실은 숨기고 싶었다. 핸드폰 화면만 바로 끄면 거실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는 줄 착각할 수 있을만한 공간을 찾았다. 그렇게 찾게 된 공간은 바로, 소파와 거실 테이블 사이였다. 내 한 몸 겨우 들어가는 그곳에 들어가 숨을 죽이고 몰래 드라마를 봤다.
그곳이 나만의 비밀공간이 된 것 같았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시부모님의 눈을 피해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 얼른 폰의 화면을 끄고 몸을 숨겼다. 드라마의 전개와 같이 내 상황도 한껏 긴장감과 짜릿함이 있었다.
다음 날이 기다려졌다.
다음 주가 기다려졌다.
그렇게 하루를 기다리고 일주일을 기다렸다. 다음 화가 나오기를.
기분 좋은 기다림이었다. 내일의 해가 떠오른다는 것은 드라마 보는 날이 다가온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날이 지나가는 게 좋았다.
1평도 안 되는 그곳, 움직일 수 있는 범위라고는 바닥에서부터 낮은 거실 테이블까지 50cm 정도 되는 높이뿐이었다. 그 좁은 곳에서야 말로 숨을 쉴 수 있었다.
일주일에 두 시간이지만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충분히 즐거워하는 놀이를 즐겼다. 비좁은 공간이지만 휴대폰으로 드라마를 즐기기에는 충분히 넉넉했다.
그렇게 내게 있던 우울감과 무기력함은 점차 사그라지고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어두운 터널에서 터널의 끝이 오기만을 바라보며 지냈었다. 하지만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내가 그 터널에 있을 수도, 다른 새로운 공간에도 있을 수도 있었다.
혹 예전의 나처럼 우울감으로 힘이 든다면 색다른 공간에서 드라마 한 편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