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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성 Nov 22. 2023

새로운 집을 원한다면?


우리 가족은 아파트 1층에 산다. 


아이가 만 2살 무렵, 잘 걷고 잘 뛰어다니기 시작할 때 이사를 가야 했다. 아무리 매트를 깔아도 뛸 때마다 불안했고 계속 주의를 주어야만 했다. 그래서 이사 갈 집은 층간소음으로부터 자유로웠으면 했다. 아래층이 없는 2층이거나 1층 매물을 찾았고 현재의 아파트 1층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1층은 큰 단점이 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블라인드로 가려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해가 길게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단점을 상쇄하는 장점이 있다. 아이들이 걷든 뛰든 마음 졸일 필요 없고 잔소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집 안에서 줄넘기를 해도 된다.


그렇게 아이들은 1층 생활에 익숙해져 버렸다. 1층에 익숙한 아이들은 다른 집에 가서도 우리 집에서처럼 걷고 뛴다. 특히 조부모님 댁에 가는 날이면 신경이 쓰였다. 미리 얘기를 해두지만 조용히 걷는 게 연습이 전혀 안된 아이들의 발걸음은 매우 거슬렸다. 지속적으로 주의를 주는 상황이 펼쳐졌다.


지금 집이 좀 지겨워질 무렵, 우리도 이사를 한 번 가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1층이 아닌 곳에서 살게 되면 적응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았다. 이사를 가는데 큰 제약사항이 생겨버렸다. 




새로운 집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큰돈을 들여서 인테리어를 바꾸는 건 좋지만 부담스러웠다. 화장실이나 방의 구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가구는 마음대로 바꿀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가구의 위치를 바꿔보자고 결론지었다.


거실 한쪽 벽에 놓여있는 소파를 거실과 부엌 사이에 길게 두었다. 거실 방향으로 둔 소파는 벽을 만든 건 아니지만 또 다른 방이 된 것 같은 효과가 있었다. 거실 들어갈 때 소파가 가로막고 있어서 소파의 양 끝으로 지나다녀야 했지만 꽤 재밌는 시도였다. 보통 벽과 소파 사이는 먼지가 많은 법인데 이 구조는 청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단점이 하나 있었다. 소파의 위치가 이리저리 바뀌었다. 자꾸 뒤로 밀리기도 하고 소파 옆 길이 좁아지기도 했다. 아이들은 이 마저도 재미있는 놀이라고 생각하고 소파를 밀었다 당겼다 하며 놀았다.




이번에는 낮은 책장을 거실 한가운데 배치해 보기로 했다. 양쪽에서 책을 꺼낼 수 있게 책장의 등을 맞대어 두었다. 거실이 두 개로 쪼개지는 듯한 구조였다.

 

기존처럼 벽에 붙어있는 책장은 책장 바로 위에 전등이 없었기에 어두웠다. 거실 한가운데는 전등이 있다 보니 어디에서든 책을 꺼내고 환한 불빛 아래서 책을 펼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이 공간에서 잘 뛰어놀았다. 책장을 가운데 두고 빙빙 돌며 술래잡기도 했다. 같은 면적이지만 공간이 더 많아지는 착각을 일으켰다.




게으른 우리 부부는 캠핑은 포기했지만, 캠핑장 감성은 좋아했다. 큰 마음먹고 짐으로 가득 찼던 베란다를 모조리 비웠다. 베란다를 캠핑장 느낌이 나게 만들기로 했다.


인조잔디를 깔고, 캠핑 테이블과 의자를 두었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빨래 건조대에는 캠핑전구를 휘감아 달았다. 집에서 제 자리를 못 찾고 있는 아기 텐트도 옆에 두었다.


비록 베란다지만 그럴싸한 캠핑장 느낌이 났다. 아이들도 새롭게 생긴 공간을 환영했다. 캠핑 의자에 앉아 밥도 먹고 간식도 즐겼다. 주말 아침, 아이들보다 먼저 일어나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며 멍 때리기 더없이 좋았다.




어느 날은 부엌에 있던 식탁을 거실로 옮겨보았다. 비어 있는 테이블을 사랑하는 아이들은 식탁이 옮겨지자마자 선점해서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슬라임도 하고, 클레이로 만들기도 하고, 종이도 접었다. 빈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색칠하고, 가위로 오려댔다. 순식간에 난장판을 만들어 놓았지만 아이들은 식탁에서 활동하는 걸 즐겼다.


식탁이 없어진 부엌 자리에는 베란다에 있던 캠핑 테이블과 의자가 자리했다. 식탁에서만 먹다가 캠핑 의자에 앉아서 먹는 식사는 또 다른 분위기를 냈다. 의자를 접었다 펼 수 있어서 바닥에 흘린 음식물을 닦기에도 편했다.




귀차니즘이 발동되어 새롭게 구상한 가구배치를 현실화하는데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가구의 위치가 바뀔 때마다 아이들은 그 환경에 즐겁게 적응했다. 우리 부부도 덩달아 위치 바꾸는 걸 즐겼다.


그렇게 우리는 위대한 일상을 보냈다,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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