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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성 Dec 05. 2023

슈퍼우먼 얘기는 걸러서 들을게요.

'슈퍼우먼'이란 집안일과 직장 일을 모두 잘하는 여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나는 슈퍼우먼이 되고 싶었다. 직장 일도 집안일도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다. 회사에 가면 직장 스위치를 탁 켜고, 집에 가면 집안일 스위치를 잽싸게 켜고 싶었다.


시어머니와 친정엄마가 번갈아 아이들을 돌봐주신 지 3년이 훌쩍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오랜 기간을 힘들게 잡아두는 것 같아 죄송했다. 아이들에게도 이제는 부모인 우리가 주된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모두 나이 들어가시며 진정한 할머니가 되어가고 계셨기에 더 이상은 부탁드리지 말기로 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내가 사는 동네에 오실 수 있는 돌봄선생님이 계셔서 얼른 모셨다. 하원하는 시간 오후 5시부터 저녁 8시까지 매일 3시간을 돌봐주기로 하셨다. 하원해서 집에 와서 좀 놀다가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사용한 그릇 설거지까지 하셨다.


시스템이 달라지다 보니, 내가 해야 하는 일도 더불어 급격히 늘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씻고 옷 입고 밥 먹는 등 나만 출근준비 하면 됐었다. 하지만 달라졌다. 아이를 깨우고, 아침을 먹이고, 양치와 세수를 하고, 옷을 입히고, 머리 묶여야 어린이집 등원 준비가 마친다. 돌봄선생님이 평일에는 매일 오시기에, 아침에 사용한 그릇 설거지를 하고, 로봇 청소기가 돌아갈 수 있도록 집안을 정리해야 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돌봄선생님은 밥을 차려주는 것까지만 가능한 역할이었기에 아이들 저녁 식사 반찬이 냉장고에 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아침을 정신없이 보내고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선다. 등원을 시키고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걸어간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공지나 행사일정을 확인한다. 내일 저녁은 무슨 반찬을 해둬야 할지 걱정하면서.


아침만 하더라도 이렇게 일이 많은데, 저녁도 만만치가 않다. 회사 동료들은 도대체 어떻게 회사일과 집안일을 병행하지? 그리고 왜 이렇게 둘 다 놓치지 않고 잘하는 거 같지?




맞벌이 중인 여자 직장 동료에게 물어보며 노하우를 얻어보려 했다.


동료 A는 아버지가 집 근처로 이사 오게 되셨고, 아버지는 아이들의 등하교를 도우셨다. 아침에 하는 모든 준비와 퇴근 후 저녁에 하는 일 모두 홀로 도맡아 직접 하셨다. 회사 일도 책임감 있게 해 나갈 뿐 아니라 재테크에도 늘 관심을 가지고 실행하며 성과를 올리고 계셨다.


동료 B는 친이모에게 부탁해서 하원과 그 이후시간을 돌볼 수 있도록 했다. 똑 부러지는 스타일로 회사에서도 온 열정을 다해 일할 뿐 아니라 성과도 좋아서 인정받는 동료다. 아이를 보육하고 교육함에 있어서도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주관이 뚜렷하며, 일관성 있게 자신이 계획했던 바를 성취해 나간다.


동료 C는 친정엄마를 모시고 산다. 친정엄마가 아이의 보육을 온전히 담당하셨다. 회사에서 오랜 시간 업무를 하거나 회식 등을 하더라도 빠지지 않고 늘 자리를 지키셨다. 여유시간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준비물을 챙길 때 보면 집안일에 있어서도 놓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쓰시는 것 같았다.




단지 노하우를 얻으려고 물어보기 시작했는데 나는 정작 위축이 되었다. 다들 자신들의 형편에 맞게 균형 있게 모든 일을 잘해 나가는 슈퍼우먼이었다. 일, 양육, 가사까지 모두 아주 잘 해내고 있었다. 완벽함과 행복함만이 가득한 인스타그램의 사진들 같았다.


빠지는 영양소가 없을 것 같은 오색찬란한 반찬으로 아이들을 먹이고, 아이들과 온갖 체험활동을 준비하여 함께 놀고, 그러면서도 깨끗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는 집, 회사에서는 퇴근해서도 돌볼 아이가 없는 것처럼 열과 성을 다해 일을 하는 모습.


그에 반해 나는 그중 어느 것도 잘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주변에서 힘을 내라고 하는 응원조차도 살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힘을 이미 쥐어 짤만큼 짜내고 있었다. 더 이상 힘을 낼 에너지가 나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나와 타협했다. 슈퍼우먼 얘기는 걸러서 듣기로!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을 새기며, 나만의 속도로 가보겠다고 속으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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