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양육 스타일
남편이 마마보이는 아닐까 의심했다. 내가 보기에 아주 사소한 일이었는데, 남편은 엄마와 상의해 보겠다고 했다. 당시엔 너무 충격이 컸다. 어떤 에피소드였는지조차 도무지 생각이 안 날 정도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머릿속이 하얘졌었다.
아이가 만 3살, 만 2살 무렵이었다. 시아버지는 혼자 집에 계시도록 하고, KTX로 2시간 반 거리를 시어머니가 매주 일요일에 올라오셨다가 금요일에 내려가는 일정을 소화하셨다. 매주 이렇게 하시다 보니, 평일에 일을 좀 보셔야 하는데 그러기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었다. 친정엄마에게 한 달에 1주만 부탁드렸다. 그래서 3주는 시어머니가, 1주는 친정엄마가 오셨다.
시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날과 친정엄마와 함께 지내는 날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시어머니는 일단 집에 오시면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자려고 눈을 감는 순간까지 온통 아이의 일에만 집중하셨다.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부엌에서 부지런히 아침을 준비하신다. 아이들에게 밥, 반찬 4-5가지, 과일 2-3종류, 미숫가루, 비타민까지 다 먹이고 등원을 시킨다. 잘 먹지 않으려 하면 어떻게든 설득을 해서 아이가 먹게끔 유도하신다. 어린이집 등원이 늦어지더라도 아침을 먹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셨다.
친정엄마는 아침 일찍 일어났더라도 부엌으로 바로 들어가시지 않는다. 밥 먹을 시간 30분 전에 부엌에 들어가서 오늘 아침에 먹을 거 한두 가지만 해서 주신다. 아이들이 특정 음식을 안 먹겠다고 하면 한두 번 얘기해 보고 안되면 포기하신다. 그래서인지 어린이집 등원이 늦을 일이 없다.
시어머니는 아이들 하원을 시키면서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고 싶다고 하면 원하는 만큼 놀 수 있게끔 하신다. 아이들이 다치지는 않을까 가까이서 밀착마크 하신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이들이 또 놀아달라 하더라도 귀찮은 내색 없이 즐겁게 놀아주신다.
저녁식사도 간단하게 차리는 법이 없다. 이미 낮 시간에 장도 보고 식재료 손질도 해두셨다. 수제비나 만두 같이 아이들도 음식 만들기에 참여할 수 있는 체험활동도 준비하셨다. 그러다 보니 뒷정리할 그릇, 냄비, 식재료들이 많았다. 모든 정리가 마치면 밤 10시가 넘기 일쑤였다. 정리를 마친다 하더라도 다음 날 필요한 음식의 재료를 다듬는 데 시간을 보내셨다.
친정엄마는 아이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1시간을 넘기는 일이 없다.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만드는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기에 뒷정리도 금방 마친다. 우리 부부가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얘들아, 이제 나 퇴근한다." 하며 본인 방으로 쏙 들어가 문을 닫으신다. 우리 부부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육아는 우리 몫이다.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방식에 관한 관점도 달랐다. 시어머니는 다른 엄마들이 아이에게 어떤 교육을 시키고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셨다. 집에서도 어떤 놀이들을 해주는지 등하원하며 만나는 엄마들에게 종종 물어보기도 하셨다. 그리고 우리 부부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친정엄마는 교육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아이들 먹이고, 제때 어린이집 등하원 시키면 그것으로 본인의 역할을 마쳤다고 보신 것 같았다.
아이들이 훌쩍 자라 초등학생이 되었다. 이제 시어머니도 친정엄마도 아이들 보육하러 집으로 오시지 않는다. 시어머니와 통화하면 궁금한 게 많으신지 여러 가지 물어보신다. 친정엄마는 '별일 없지?'라고만 물어보고 더 이상의 질문은 없다. 시어머니의 초점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가 있는 반면, 친정엄마의 초점은 본인의 관심사에 가 있다.
남편이 마마보이가 아닐까 의심했던 것은 우리 가족과의 문화가 달라서 생긴 일이었다. 각기 다른 아이들에 대한 양육방식을 바라보며 남편에 대해 더욱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집은 극단의 자율성을 부여했다. 상의를 하기보다는 혼자서 고민하고 결정하고 책임졌다. 좋게 말하면 독립적으로 지냈다는 얘기고, 나쁘게 말하면 모든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하는 맨 땅에 헤딩 스타일이었다.
남편의 가족문화는 딱 그 반대였다. 사소한 것까지도 함께 상의하고 협의하고 결정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많이 기울이는 스타일이었다. 그렇기에 큰 일은 물론이고 작은 일들도 얘기해보겠다고 한 것이었다.
아이에게는 주양육자가 자꾸 바뀌어 일관성 없이 양육하게 된 데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 긍정의 회로를 돌려본다. 오늘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나에게 적절한 거리를 찾아서 조율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