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즐성 Dec 01. 2023

침묵하는 며느리는 이제 그만


시어머니의 주된 관심사는 '건강'이다. 건강한 음식을 만들고 먹이는 일에 진심이시다. 또한, 각종 질병과 바이러스로부터 예방할 수 있는 건강보조식품들을 챙겨드시고 챙겨주는 일에 진심이시다.




둘째가 태어난 지 3개월 되었을 무렵, 시부모님 댁에서 두 아이와 함께 6개월간 살았다. 시아버지, 며느리, 아이의 삼시 세 끼를 담당하셨고, 아이들 비타민도 열심히 챙기셨다. 함께 지내며 내가 지켜본 어머님은 건강하게 먹이는 것과 아프지 않게 지내는 것에 크게 신경 쓰셨다.


첫째 아이가 만 2세였을 때 일이다. 아이가 두어 번 살짝 기침을 했다. 엄마인 나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시어머니는 아이의 감기를 바로 걱정하셨다.


"어머, 아기가 기침을 하네? 기침에는 프로폴리스가 좋아. 

프로폴리스 물에 살짝만 타서 먹여보자~"


아이가 심하게 기침을 한 것도 아니라서 굳이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프로폴리스가 냄새도 심할 텐데 굳이 억지로 그걸 먹일 필요가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거절하지 못했다. 어머님은 프로폴리스에 대한 깊은 신뢰와 확신이 있으셨다. 특히 '건강'에 관련해서는 한 발짝 물러서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하셨기 때문이다. 그냥 아무 말 말고 먹이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어머님은 재빠르게 작은 플라스틱 약통에 프로폴리스를 물에 타서 내게 건네주셨다.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집이 아닌 이곳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이상은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겨우 먹였다.


문제는 그 이후에 일어났다. 아이의 온몸에서 벌겋게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너무 화가 나서 머리가 폭발할 것 같았다. 주변에 사람이 없다면 소리라도 꽥 지르고 싶었다. 도저히 내 화가 감당이 되지 않았다. 


'왜 내가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했을까? 왜 거절하지 않고 바보같이 그냥 받아들였을까? 부작용이 어떤 것이 있는지 인터넷으로라도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벌겋게 된 아이의 몸을 보며 끊임없이 자책했다.




둘째 아이가 만 6세였을 때 일이다. 아이가 점점 살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통통해지면서 가슴이 나왔다. 본인도 신경이 쓰이는지 티셔츠를 자꾸 앞으로 당겼다.


차로 5시간 걸리는 거리에서 살고 있기에 시어머니가 손녀들 얼굴을 보고 싶으실 때는 종종 영상통화를 했다. 통화를 할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늘 물어보셨다. 

"우리 아기, 살 좀 빠졌나?"

"얼마나 살이 빠졌나 함 보자~~"


안 그래도 부끄러워서 휴대폰 화면 안으로 잘 안 들어오는 아이는 더 도망쳤다. 아이들 건강을 위해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건 맞다. 걱정돼서 말씀하시는 것은 알지만 이번만큼은 말씀드려야겠다 싶었다.


드릴 말씀이 있다고 카톡을 보냈다. 


"아이에게 살이 빠졌는지 체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외모지적이나 칭찬을 들은 아이는 본인이 날씬해져야 가치 있는 사람인 줄 알게 된다고 합니다. 뚱뚱하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걱정돼서 하신 말씀이신 건 알지만 앞으로는 아이에게 자꾸 살 빠졌는지 물어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어머니도 길게 답변을 남겨주셨다. 소아과에서 말하길, 체중이 좀 과해서 운동도 시키고 먹는 걸 조절해야 한다고, 나중에 손 쓰기 힘들게 된다고. 어린이비만은 어른이 되어도 항상 잠복해 있어서 늘 발현될 수 있다고 주의가 필요해서 걱정이 됐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이 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고 답변해 주셨다.




윗사람의 말을 잘 듣고 순종하는 것이 착한 삶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프로폴리스 사건으로 침묵을 하는 것만이 착한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내 의견을 말하지 않은 것이 솔직하지 못한 일이었다.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 들었어. 하지만 때로는 좀 버릇없게 굴 필요가 있어.
매번 묵묵히 참아내고 받아들이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 뮤지컬 <마틸다>의 '노티'라는 노래 가사 중 일부


시어머니가 며느리로부터 '살 빼란 얘기는 하지 말아 달라'라고 메시지를 받을 때는 버릇없다 느끼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의견을 말씀드리고 상황을 바꾸고 싶었다.


예전이었으면 말도 못 하고 끙끙 앓거나 이 상황에서 도망가려고 했을 것이다. 말씀드리고 나니 굉장히 후련했다. 더불어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시어머니가 어떤 의도로 말씀하셨는지 알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말을 아끼기보다는 할 말은 할 줄 알고, 버릇없게 말하기보다는 지혜롭게 말하는 며느리를 꿈꿔본다.

작가의 이전글 우린 좀 친해질 필요가 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