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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성 Nov 30. 2023

우린 좀 친해질 필요가 있어

엄마와의 거리

'모녀의 세계'

관계전문가 김지윤 작가님의 책 제목이다. 이 책은 엄마와 딸 사이의 관계와 갈등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그래서 얼핏 평화로워 보이는 엄마와 딸 사이. 하지만 이 두 여자의 세계는 사랑하면서도 상처 주고, 애틋하면서도 답답하고, 고마우면서도 원망스러운, 한마디로 애증으로 점철된 복잡 미묘한 세계이기도 하다.
- '모녀의 세계'(김지윤 저) 책 소개 글 중


자칫 너무 가까운 모녀관계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해결책으로 적정한 거리 두기를 제시한다. 하지만 가깝지 않은 엄마와 딸 사이도 있다. 그게 바로 나다.




할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으셨다. 아빠는 집으로 모시려고 했지만 할머니는 강하게 거부하셨다. 본인의 집이 아닌 다른 집에서 지내는 건 매우 갑갑해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할머니의 상태는 혼자 지내시기 힘든 상황으로 치달았다. 할머니는 부모님 댁으로 옮겨서 생활을 시작하셨다. 그렇게 엄마는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게 되었다.


아이는 점차 자기가 스스로 하는 법을 터득하며 성장해나가지만 치매는 퇴행하는 것이기에 상황이 더 나빠지면 나빠지지 절대 좋아지지 않았다. 엄마는 '창살 없는 감옥'이 따로 없다고 표현하셨다.


할머니가 노인주간보호센터에 다니기 시작하셨을 때는 엄마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것처럼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이전보다 훨씬 낫다고 좋아하셨다.


일 년 여의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이 더 악화되었다. 할머니는 잠을 잘 못 주무시고 계속 엄마와 아빠를 불러댔다. 엄마는 드디어 입을 뗐다. 요양원을 알아보자고 했다. 아빠는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신생아를 키우는 엄마처럼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상황이 계속되고, 이 상황에서 더 이상 좋아질 게 없는 형편이었다. 버티다 버티다 며칠을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나서야 아빠는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는 결정을 수긍했다.


그렇게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나서 엄마에게 필요한 게 뭘까 생각했다. 내가 신생아를 키울 때 뭘 가장 하고 싶었는지 되돌아보았다.


떠나 있고 싶었다. 현재의 모든 것을 잊고 훌훌 떠나고 싶었다.


엄마에게도 시어머니로부터, 그리고 아빠로부터의 거리가 필요한 게 아닐까? 엄마랑 며칠간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건 어떨까? 


4박 5일간의 괌 여행을 가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나도 숟가락을 얹어서 아이로부터 잠시 떨어져 지낼 수 있겠다 싶었다.




엄마와 나, 단둘이 괌으로 여행을 떠났다. 엄마와 나름대로 일정을 협의해서 짰고 모든 일정에 대한 예약이 마쳐있었다. 첫날밤에는 마술쇼를 보러 가고, 그다음 날에는 괌 택시투어를 했다. 유명한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기사님께 설명을 들었다. 차에서 내려서 관광지를 둘러볼 때마다 기사님은 우리 모녀에게 갖가지 포즈를 요구하시며 부지런하게 사진을 찍어주셨다.


그다음 날 오전, 날씨는 흐렸지만 제트스키, 바나나보트 등을 타며 해변가에서 놀았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우리가 계획한 모든 일정의 끝이었다. 그날 오후부터는 태풍이 와서 숙소 밖을 나가지 못했다. 로비 층과 연결되어 있는 자그마한 몰에 가서 둘러보는 것 외에는 딱히 할 게 없었다.


세찬 비가 내리는 광경을 창문 너머로 바라볼 뿐이었다. 어쩌면 이 상황도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엄마에게 물어보지 못한 질문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살짝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어보지 못했다. 뭐부터 물어야 할지 몰랐다. 무엇보다도 질문을 하는 거 자체가 너무 어색했다. 우린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눈앞에 주어진 각자의 퀘스트들을 깨느라 집중한 나머지 서로에게 관여하지 않았다. 이번 여행 덕분에 엄마에 대해 새로 알게 된 점이 있다.


엄마는 고기를 싫어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라 돈이 없어서 고기를 못 먹은 줄 알았다. 사실 엄마는 그냥 고기를 좋아하지 않은 것이었다. 게다가 굉장히 한식파였다. 괌은 스테이크나 햄버거 등 서양음식이 주를 이룬다. 알아본 거의 모든 식당들은 안 가고, 그냥 마음 편히 한식당을 갔다.


엄마는 스릴을 즐겼다. 제트스키를 타는데, 직접 타지 않고 직원분이 앞에서 운전을 해주셨다. 빠른 속도로 뱅그르르 돌기도 하고, 점프를 하기도 한다. 바닷물이 자꾸 얼굴로 덤벼들어서 눈도 제대로 못 뜰 지경이었다. 엄마는 재밌었다며 밝은 미소를 지으셨다. 60대 중반인 엄마가 제트스키를 즐기는 모습이 새로웠다.


엄마와 수다 떠는 게 쉽지 않았다. 둘이서 숙소에 남겨졌을 때 무엇을 질문해야 할지 몰랐다. 





스무 살 이후로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서일까? 엄마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어색했다. 엄마와 나와의 거리는 조금은 먼 듯했기에 우린 좀 더 친해질 필요가 있다.


내년 계획을 짜는 연말이 왔다. 엄마에 대해 좀 더 알아가는 시간을 배정하겠다고 계획해 본다. 평소에 잘 몰랐던 엄마에 대해 차근차근 질문할 테다. 그리고 엄마라는 거울에 비춰 나를 들여다보며 나에 대해서도 더 알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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