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즐성 Dec 15. 2023

시어머니의 삶엔 개인주의가 없다.

친정엄마와 너무 다른 시어머니가 신기했다. 친정엄마는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만 주로 연락한다. 시어머니는 자녀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지 수시로 연락하셨다.


친정엄마는 안아달라고 하는 손녀들에게 우리 딸 힘들게 하지 말라고 장난 섞인 호통을 치신다. 시어머니는 본인의 아픈 무릎은 생각도 하지 않으시고 손녀들을 곧잘 안고 자주 업어주셨다.


친정엄마는 어렸을 때 나에 대한 기억들을 물어보면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고 자주 답변하신다. 시어머니는 아이가 똥이 초콜릿인 줄 알고 먹으려고 했던 일, 동생한테 잘 걷는다고 칭찬하니까 그게 뭐 별거냐며 이렇게 난 잘 걷는다고 자랑했던 일까지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잘 기억하고 계셨다.




남편을 통해 시어머니가 얼마나 아이들의 교육에 정성을 쏟으셨는지 듣게 되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태교에 좋다는 것은 모두 찾아 하셨다. 아이가 태어나서는 월령별로 아이에게 필요한 학습도구로 체계적으로 아이를 가르치셨다.


교육열 있는 엄마였다. 초등학생 때는 바이올린도 배우고, 논술학원에서 글쓰기 수업도 배웠다. 학원 스케줄링도 하시고, 숙제도 봐주셨다. 본인의 취미생활은 없이 아이와 남편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셨다.


무엇보다도 내게 충격적이었던 에피소드가 있다. 남편이 대학생 시절, 기회가 되어 필리핀으로 몇 개월간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함께 비행기를 타고 필리핀에 데려다주고 관광 한번 하지 않으시고 바로 그다음 날 한국으로 돌아오셨다고 했다. 해외로 떠나는 아들이 불안해서 같이 따라오셨지만 공부에 방해가 될까 봐 바로 오셨다. 남겨진 둘째 아들과 남편이 걱정되어 그러셨겠지만 내겐 나름 충격으로 다가왔다.




시어머니의 친정엄마가 치매 진단을 받으셨다. 어느 날 갑자기 집에서 쓰러지셔서 뇌졸중 증세로 통원치료받는 중이다. 장녀이기도 한 시어머니는 본인 밖에 현재 간호해 줄 사람이 없기에 본인이 모든 걸 떠안으셨다. 아들인 남편에게 삶이 힘들다고 살짝 고백을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녀가 어릴 적엔 자녀의 성장을 위해 온 시간을 쏟으셨고, 자녀가 어른이 되어서도 걱정을 놓지 않으셨다. 이제 아픈 엄마를 간병하느라 온 에너지와 시간을 쏟고 계신다.


시어머니의 삶엔 개인주의가 없다. 


안 그래도 없는 개인의 삶에서 우리 부부가 아이를 맡김으로 인해 그 부담을 오롯이 지셨을 것을 생각하니 지금도 죄송하다. 본인의 삶을 누리지 못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셨던 시어머니, 그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기는커녕 불만을 품고 함께 지냈던 나다. 


감사를 넘치게 해도 모자란데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죄송함은 있지만 시어머니가 걸어오신 길을 따라가기는 싫다. 문유석 작가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나는 개인주의자였다.




엄마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남들의 기대치가 꽤 높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머니란 잣대를 들이댄다. 하지만 엄마들에게는 더더욱 개인주의가 필요한 것 같다.


엄마들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응원한다. 싫으면 싫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른 엄마들과 비교하며 나의 서투름과 미숙함을 탓하지 않기를 바란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기보다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솔직해지기를 바란다. 평범하고 무난한 삶을 위해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기보다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는 좀 이기적으로 굴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초등학교 1학년, 육아휴직이 필요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