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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성 Dec 18. 2023

엄마가 되면 느끼는 감정들


10억을 줘도 낳고 싶지 않아.


아이를 낳으면 1억을 준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난 이렇게 말했다. 1억이 아니라 10억을 줘도 낳고 싶지 않다고. 3년 전, 회사동료들과 점심을 먹다가 나온 얘기다. 아이를 낳는 게 문제가 아니라 키우는 게 두려워서다. 키우면서 짊어져야 할 책임감이 내겐 너무 버겁게만 느껴졌다. 아이 둘만으로도 나에겐 충분했다. 


엄마가 되면 다양한 감정들과 마주하게 된다. 아이가 태어나 자라는 성장 과정 하나하나가 감동적이고 감격스럽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감정 외에도 조급, 후회, 안타까움, 실망, 자책, 창피함, 미안함 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는 다른 감정들도 많다. 그중 세 가지만 얘기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미안함'이다.


한창 탐색을 즐기던 15개월쯤이었다. 집 안 구석구석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밌을 시기다. 책장에 있는 모든 책을 하나씩 꺼내서 냅다 던지고, 서랍을 열어서 모든 걸 하나씩 꺼내서 들춰봤다. 거실에서 놀던 장난감은 이제 지겨운지 싱크대 아래쪽 선반을 뒤지고 싶어 했다. 다행히 문을 열 수 없도록 잠금장치를 해 놓은 덕에 난장판은 면했다.


그 옆의 오븐으로 장소를 옮기더니 문을 열어젖혔다. 버튼을 마구 누르더니 노란 조명이 켜졌다. 5분쯤 흘렀을까?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아서 문을 닫고서는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밥을 먹이려고 의자에 앉혔는데, 아이의 손등이 이상했다. 5cm 정도 지름의 타원형 동그란 자국이 있었다. 이게 뭐지? 상황 파악이 안 됐다. 사진을 찍어서 남편에게 보냈다. '화상'인 것 같은데 뜨거운 거에 손을 댄 적이 있냐고 물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노란 조명이 켜진 것은 밝게 해주는 용도이기도 하지만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당황했다. 이내 미안함이 몰려왔다. 나의 무지로 아이에게 아픔을 안겼다는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아팠을 텐데 왜 울지 않았는지 좀 한탄스럽기도 했다. 바로 찬 물에 댔으면 훨씬 빨리 아물었을 텐데 두어 시간을 그냥 방치했던 것이다.


여자 아이의 손등에 커다란 흉터가 남는 건 아닌지 염려가 컸다. 즉시 병원에 가서 후치료를 하고 매일같이 소독하러 병원에 다녔다. 붕대를 감았다가 풀긴 했지만, 흉터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수개월간 아이의 손등을 볼 때마다 미안한 감정이 솟구쳤다.




두 번째 감정은 '우울'이다. 


근심스럽거나 답답하여 활기가 없음을 뜻하는 단어, 우울.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우울하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산후우울증도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여겼다.


하지만 육아퇴근 없는 24시간을 아이와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울한 감정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지?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것인지?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는 것인지? 다른 엄마들은 잘만 하던데 왜 내겐 이렇게 힘이 드는지? 건설적인 질문은 없고 그냥 이대로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감정은 '황당함'이다.


가끔은 부모의 바람대로 해주기를 바라지만 자주 거절당한다. 만 5세쯤 됐을까? 아이가 핑크색 샤스커트(일명 샤랄라 치마) 입기를 즐겨했다. 그래서 레깅스와 치마가 붙어 있는 옷을 여러 벌 샀다. 연년생 자매라서 첫째가 입고 바로 둘째가 입으면 되었기에 여러 개 사는데 부담은 없었다.


몇 번은 입었을까? 갑자기 아이가 돌변했다. 아예 치마를 안 입는 아이로. 청바지만 입겠다고 하고 모든 치마를 거절했다. 발레 배우는 것도 발레복 입기 싫어서 가기 싫다고 할 정도로 치마를 경멸했다. 잘 달래서 입혀보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기분 좋게 입으라고 여러 벌 샀건만 두어 번 입고 장롱 속에 모셔두게 되었다. 


본인만의 패션에 눈을 뜨게 되면서 황당한 일이 종종 벌어졌다. 상의와 하의의 색깔과 스타일이 전혀 다른데 같이 입겠다고 우기기도 하고, 여름에 털부츠를 신겠다며 소란스럽게 억지를 부렸다.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우면서 때로는 미안하고, 때로는 우울하고, 때로는 황당한 감정들을 마주한다. 어디 이 세 가지 감정뿐이랴. 여러 감정들과 더불어 그 감정의 깊이도 깊어지며 조금은 성숙한 어른이 되어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도 든다. 엄마가 되어 조금은 다른 사람의 사정이나 형편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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