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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굴러라 호박 Sep 18. 2019

4. 네? 성모 승천 대축일이라고요?

허버허버 5박 7일 이탈리아 여행기

이번 이탈리아 여행처럼 구글맵에 별이 몇 개 없었던 적이 있었을까.

특히나 밀라노의 경우 반나절만 돌아보고 이동할 예정이었으니 별표가 더 없을 수밖에 없었다.

아침 7시에 오픈한다는 딱 하나 찍어 놓은 카페는 이미 오픈하고도 영업을 하고 있을 시간에 아직 준비 중이었는데 쉬는 날이라서 준비가 늦다는 것이다. 몇 시에 오픈할지 기약도 없다.

당시엔 당장 배가 고픈 것은 아니라 근처의 스카라극장(Teatro alla Scala) 보고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기로 했지만 스카라 극장도 문을 닫았다. 그리고 구글에는 이상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이 안 나지만 대략 XXX으로 인해서 영업시간이 변경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즈음에서 슬슬 이상한 기운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오전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상업의 도시라는 밀라노가 이렇게 사람이 없을 수가 있을까?

꽤 거리를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둘러봐도 눈에 띄는 사람은 가시거리 안으로 한 두 사람뿐이었다.

밀라노에 오면 볼 수 있다는 멋진 스카프와 함께 근사한 팬츠를 입은 할아버지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코디한 할머니도 볼 수 없었다.

도대체 xxx는 무엇인가. 적막함이 감도는 유령도시가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할 정도로 텅 빈 밀라노.

바로 해시태그와 함께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렸더니 이탈리아에 유학 갔다 온 친구가 답글을 달아 주었다.


우리가 밀라노 시내를 구경한 8월 15일은 성모승천 대축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인 크리스마스에 버금가는 큰 휴일이며 특히나 여름휴가와 겹쳐 모든 가게들이 쉰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추석 당일날 서울 시내를 나온 관광객이 되었다.


*성모승천대축일은 성모 마리아가 지상의 생을 다 마친 후 하느님에 부름을 받아 하늘로 승천한 날로 천주교에서 성모 마리아를 기념하는 날 중에 가장 중요한 날이라고 한다.

Cioccolatitaliani의 초콜릿이 들어간 커피와 뺑 오 쇼콜라


아침 7시쯤 나온 상태로 두 시간여를 쉬지 않고 걸었으니 이미 다리도 한계에 달아 있었고 빈 속에 당분까지 떨어진 상태였으니 길을 가다 일단 문을 연 가게에서 급하게 빵과 커피를 마시며 당분을 보충했다. 초콜릿으로 유명한 카페인데  몸안까지 초코가 스며들어 절망감과 함께 빠져나가고 있던 기력을 잠시나마 보충해 주고 진창으로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을 달콤한 초코가 끌어올려줬다.


텅 빈 밀라노 시내를 생각하면 피렌체로 건너가는 기차를 타기까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해졌지만 박물관들이라면 문을 열었을 것이란 확신 아닌 확신을 하며 돌아보기로 했다. 원래 가고자 했던 카페도 다음 목적지인 스포르제스코 성으로 가는 동선과 겹쳤으니 못 먹어도 고를 외치며 찾아갔다.

거리 사진 촬영시, 인물이 들어가는 것이 사진의 분위기를 끌어 올려 준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초상권이냐 저작권이냐 내적갈등을 하며 셔터를 누르는데 8월 15일의 밀라노는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동서남북 어디를 바라 보아도 텅 빈 도시. 유령도시가 여기에 존재하고 있으니 살면서 이렇게 공허한 도시는 처음 만나 보았다.


2015년부터 매 년 이 시기에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지만 파리와 런던, 베를린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하느님의 나라 이탈리아에 온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Princi Bakery 밀라노에 몇 개의 지점이 있으니 동선에 맞는 곳으로 찾아가자.

결론적으로는 짭짤한 빵으로 아침식사는 무사히 할 수 있었으나 문 닫은 가게 앞에 망연자실 서 있는 경험은 5박 7일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하게 된다. 남들 다 간다는 내장 버거도 못 먹었고 유명한 피자 가게도, 레스토랑도 전부 문 닫았다. 앞으로 이 여행기는 처절한 문 닫음의 역사를 다시 확인하는 길이다.

잊지 않겠다 성모승천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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