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허버 5박 7일 이탈리아 여행기
무더위가 기승을 떨었던 2018년의 서울을 벗어나 더 더운 이탈리아로 왔다 생각했지만 호텔을 나서며 맞이 하는 아침의 공기는 포카리스웨트처럼 청량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휘양 찬란하고 흥청망청 하던 지난밤과 대조되는 밀라노 대성당 앞은 이른 아침을 여는 여행자 몇 명만이 나와 있었다. 코 끝을 스치는 상쾌한 바람과 함께, 관광객이 바글바글 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세계적인 명소에 나와 있으려니 묘한 뿌듯함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관광을 더 오래 할 수 있다고 하루를 길게 쓰는 법은 무조건 이른 아침부터 길거리로 나서는 것이라며 친구에게 이렇게 일찍 나오니 여유가 있고 얼마나 좋냐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불과 몇 시간 후에는 밀라노 도시 전체가 휴가로 인해 사람 구경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파란 하늘과 대조되어 더 하얗게 빛이 났던 밀라노 성당으로 들어가기 위해 티켓을 샀지만 나시와 반바지를 입고 있어서 입장을 할 수 없었다. 책 한번 들쳐보지 않고 왔으니 복장 제한이 있는지 어찌 알았을까. 심지어 친구와 친구 딸, 나까지 모두 반바지 차림에 두 명은 나시를 입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성당은 반드시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길이의 복장을 엄수해야 하고 나시 차림도 안된다.
다리와 어깨를 감추는 스카프를 판매하긴 했는데 도대체 몇 장이나 사야 하는 것인지, 시작부터 꼬이는 기분이 들었지만 우리의 정보 부족을 어쩌랴. 피렌체에서도 두오모를 갈 것인데란 안일한 생각과 함께 앞으로 성당은 뻔질나게 볼 것이라며 밀라노 두오모의 내부는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바로 이틀 뒤, 피렌체에서도 두오모 내부를 못 보게 될 것이라곤 꿈에도 예상하지 못한 한 치 앞도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이 바로 나란 사람이다. 역시 여행은 일기일회인 것. 지금 와 생각하면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는데 스카프 값 몇 유로가 아까워서 왜 안 들어갔나 모르겠다. 힘들게 시간을 내서 산 넘거 강 건너 바다를 지나 여기까지 왔는데 기회가 된다면 몇 유로쯤 아까워하지 말고 무조건 경험으로 치환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짧은 여행은 내일이 없다. 오늘 안되면 내일 오면 되지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찾아오는 일은 빠르면 일 년 뒤, 늦으면 기약이 없어지기 때문에 모닥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나의 시간과 돈, 그리고 몸을 불태워 오늘을 여행하는 것이다.
이때의 교훈 삼아 그리고 성당을 못 들어간 것에 대한 쌓인 한은 올해(2019) 남프랑스 여행 때 눈에 보이는 마을 성당마다 전부 들어가는 것으로 대신하게 된다.
밀라노 성당 내부를 보지 못했으니 외관이나 실컷 감상하자.
전날 밤에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부조의 화려함을 찬란한 햇살 아래서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
전날, 어둠 속에 밝게 빛나는 트리라고 느껴졌던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는 밝은 햇살 아래에서는 그 자체로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고개를 꺾으며 올려다본 아케이드 천장과 색 조화가 아름다운 타일 바닥은 그대로 들어다 한국으로 가지고 가고 싶더라.
밀라노 광장을 한 바퀴 돌고 아직 오픈도 하지 않은 아케이드 구경까지 모두 끝낸 우리는 아침 식사를 위해 구글에 별표를 해놨던 카페를 찾아가지만 휴일이라 문을 닫았다. 다른 지점으로 어슬렁 거리며 찾아가긴 했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우리의 (가게) 문 닫음의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