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찾아온 둘째, 코로나까지. 생각의 전환.
첫째가 돌 즈음되었을 때, 일을 할 때가 됐다고 느껴 일을 알아봄과 동시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생각보다 아이는 빠르게 적응을 했고 마음이 놓인 나는 일을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간대가 너무 괜찮았던 카페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고 지원했고 대학원 면접 보러 가는 날, 같이 일하자는 통보를 받았다. 일주일 동안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듯해 보였다. 하지만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 생각지도 못한 둘째가 찾아왔다.
몸이 예전 같지 않게 무겁다는 느낌, 첫째 반찬 해주려고 본 고기 핏물에서 메슥거림, 그저 오랜만에 일을 시작해서 힘든 줄로만 알았던 피곤함, 아랫배의 뻐근함, 울렁거림 이 모든 게 임신 초기의 증세였다.
첫째 아이를 모유 수유하고 있던 터라 방심(?)했던 모양이다. 몸의 이상함을 느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편에게 대충 둘러대고 늦은 저녁, 혼자 편의점으로 가서 임테기를 사 왔다.
그리고 그날, 빨간 두줄을 선명하게 보았다.
둘째 계획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3~4년 터울을 생각하고 있었던 나에겐 당혹 그 자체였다. 남편에게 둘째가 찾아왔음을 알렸을 땐 나도 모르게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이제 막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며 혼자만의 시간을 겨우 가지는 것과, 일을 시작해 돈을 모아보겠다는 의지, 그리고 대학원을 준비하던 나에게 다시 잠깐 모든 것을 내려놔야 하는 것이 아까워서 그런 거였을까.
다녔었던 회사가 경영악화로 월급이 한두 달씩 밀려 첫째를 가진 지 6개월쯤 퇴사를 했었다. 퇴사하고 태교를 명목으로 맘 편하게 하고 싶은 것들, 배우고 싶은 것들을 하며 남은 임신기간을 보냈었다. 꽃꽂이, 수중발레, 제과제빵, 색채심리 수업 등 하고 싶은 것들 하며 살다가 첫째를 낳고 키워보니 돈이 이만저만 드는 게 아니었기에 둘째는 재정을 조금 더 확보하고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카페일은 크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 냄새와 빵 굽는 냄새가 그때만큼은 세상에서 너무 싫었다. 입덧 때문이었다. 갓 시작한 일이라 티를 낼 수도 없었고 섣불리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참을 만큼 참았다가 말씀드리고 그만둘 계획이었다. 첫째까지 케어하고 있었던 터라 둘째 임신은 첫째 때보다 두배로 힘듦을 느꼈다. 집에 오면 만사가 귀찮고 짜증 나서 누워있는 시간도 많아졌다. 이렇게 10개월은 오기나 오는 걸까 생각하며 버텨냈다.
시간이 지나 더는 임신 사실을 미룰 수 없어 사장님께 알렸고, 감사하게도 생각지도 못한 축하를 많이 받았다. 대략 일을 그만두는 시기를 사장님과 상의하여 그때까지 일을 하면 소소하게 가계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가 갑자기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코로나가 한순간에 급격히 퍼지게 되면서 카페 매출도 한순간에 떨어지고 어느 날 카페 사장님이 나를 불렀다. 코로나가 진정될 때까지는 일을 잠깐 쉬자고 하셨다. 나는 아르바이트생이라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고, 카페 직원들까지 무급휴가를 돌릴 수밖에 없다면서 사태를 지켜보자고 하셨다. 마침 첫째 어린이집이 휴원 결정이 내려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기쁘게 받아들였다. 코로나가 곧 종식되겠지 라는 헛된 희망과 함께.
생각보다 코로나는 더 빨리 퍼졌고 지역감염도 심심찮게 나오는 상황에서 일을 다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대학원 수업도 학교 측에서 미루다 미루다 더는 미룰 수 없어서 화상수업으로 전면 돌리게 되었다. 내 탓도 아니건만 집에만 있었던 그 시간은 무력하게만 느껴졌다.
부정적인 생각이 늘 수록 불평도 같이 늘어가길래 안 되겠다 싶어 그 시간 속에서 소소한 감사를 찾아보았다.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게 된 청년들에게 주는 지원금에 얼마 일하지 않은 나도 해당되어 두 달씩이나 받게 되었다. 또, 타지로 대학원 수업을 가야 하는 날에는 남편이 첫째를 하원 해야 해서 어린이집에서 한두 시간 더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첫째가 너무 어려 걱정했지만 코로나로 아이가 있는 집에서 편하게 대학원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또 임신 중이라 운전을 안 하게 되어 감사가 늘어났다. 나에게 둘째가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곳에서 계속 일을 했을까?라는 질문에는 자신 있게 '예스'라고 대답할 수 없어서 또 감사하기로 했다. 한 달 내내 붙어 있어서 더 친해진 첫째와, 내가 좋아하던 책을 실컷 읽으며 쉬었던 그 시간을 오히려 잊지 못할 것 같다.
어차피 둘째를 가지기로 결심했다면 조금 더 일찍 찾아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임신하면 일을 못할 테니 잘됐다고 생각하면서.
이번 일을 통해 계획이 내가 세운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스스로에게 화내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그 모든 것에는 내가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