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잃을 것도 없잖아, 어떻게든 일어서.
그때 내 나이 33세의 일이다.
도저히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여건이 아니였다.
당장 담배 한 갑도 마음대로 살 수 없는 상황에서 내게 던져진 빚은 엄청난 그것이었다.
이때 가장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해준 것도 없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자식한테 이럴 수 있는지 궁금하고 인간 같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돈에 미쳤다고 한들, 친자식에게...이게 할 짓인가.
하루에도 몇 번씩 곱씹어도 분노가 안 풀렸지만 일단 내가 살아야 했다.
다리 위에 올라가 뛰어내릴 게 아니라면 말이다.
외국으로 일을 하러 가기로 했다. 어차피 국내에서는 취직을 할 정신도 아니지만 할 수도 없었다.
툭하면 회사와 집으로 찾아가 불러내 "돈 갚아."라고 하니 말이다.
출국 전 헤어진 여자친구가 너무 보고 싶어 며칠동안 그녀의 집 앞으로 찾아가 서성거리다 오곤 했다. 그리고 출국 전날 그녀의 프로필에는 이렇게 문구가 적혀있었다.
-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잖아. 이제. 그러니까 어떻게든 일어서..
닥치는대로, 무엇이든, 열심히
외국에서 진짜 20대처럼 열정적으로 일했다.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누구보다 늦게 잠들었다.
그렇게 일을 하다 회사 보스가 한국에 있는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게 더 빠르겠다며 파트너 회사로 나를 추천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1년여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회사에 들러 인사를 하고 간단히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을 하고 돌아왔다.
나는 "40세에 이 빚을 청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연봉은 얼마라도 상관없었다. 일단 안정적으로 먹고, 자고, 돈을 벌 수 있으면 됐다.
주말에는 파트타임을 뛰었다. 트럭도 몰고 물건도 배달하고, 편의점도 가고....
때때로 힘들면 혼자 술을 마시며 외로움과 힘겨움을 달랬다. 사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괴롭고 힘든 시기가 이때였을 것이다.
제안했던 게임이 제법 성공했다. 급여는 뛰었고 보너스도 두둑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비트코인에 대해 알게되면서 블록체인에도 눈을 떴다.
이 기술이 나를 바꿔줄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당장 구입할 돈은 없었다.
돈이 없어 비트코인을 그때 안 사둔 게 너무 한이었다. 나는 얼마 후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암호화폐와 플랫폼을 구상하고 대표를 설득, 둘이서 개발하기 시작했다. 개발하면서 투자를 받아 인력을 충원했고 그렇게 내 생애 첫 암호화폐를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암호화폐로는 돈을 못 벌었다.
대신 많은 회사의 러브콜을 받게 됐다. 내 나이 41세가 되던 해 8월. 나는 은행에 남은 빚 1억을 완납할 수 있었다. 정확하게 수억의 빚을 변제하는데 8년 정도 시간이 걸렸다. 총 금액은 비밀이지만 6억이 좀 안된다.
월급을 받으면 거의 대부분 무조건 저금, 보너스+인센티브 모두 저금했고 파트타임을 뛰어 번 돈으로 살았다. 그러다 보니 남들은 "대체 월급받아 뭐해요?"라고 물어볼 정도로 나에게 쓴 적이 없다.
정말 내가 한 일 중 IT를 선택한 것은 최고의 한수였다. 만약 내가 다른 직종에 있었고 프로젝트 개발에 실패만 했다면 나는 저 빚을 지금도 갚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