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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Sep 13. 2022

#3.인생은 실전이다 ③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


빚이 없다는 건 정말 신선한 기분이었다.

빚이 있음에도 끝까지 친분을 유지하고 반찬과 술, 담배를 종종 사주던 형이 한걸음에 달려와주었다.


" 야. 정말 축하한다. 진짜 대단해. 이제 다 끝난거야? "

" 어. 고마워. "

" 좋은 시절 빚으로 다 보내고...그래도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게 어디냐. "


그 날 모처럼 걱정없이 마음껏 술을 마셨다.

완납 내역서를 보고 또 보고, 행여 분실하면 또 갚으라고 할까봐 정말 고이 고이 지갑에 넣어두었다.





빚만 다 갚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줄 알았던.


빚을 다 갚은 건 좋았지만 거울 속의 나는 더 이상 젊었던 그 아이가 아니였다.

그냥 누가봐도 40대 아저씨가 서 있었다. 사실 빚만 다 갚으면 다시 원래대로, 행복했던 그때로 돌아갈 줄

알았다.


다시 0원이 된 통장.

빚이 사라진 건 그냥 무언가 허상이 사라진 듯 내 일상은 달라진 게 없었다.

지난 수년간 엄청 바쁘고 열심히 살았는데도 말이다.


빚을 다 갚았으니 이성도 만날 줄 알았는데 나는 남에게 그저 "돈 없는 아저씨"일 뿐 이었다.

사실 지금도 내 나이로 안 볼 정도로 동안이지만 20~30대에는 더했었다. 머리를 자르고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가면 대부분 알바들이 "저기~ 민증 좀 보여주세요."라고 했으니 말이다.


더불어 나는 집도 있고 차도 있다. 그것도 빚없이.

그래서 누구라도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빚을 갚은 사연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기승전 "그래서 지금 돈이 없으신거잖아요."였으니 말이다.

( 빚이 이렇게나 무서운 겁니다. 쉽게 생각하면 안돼요. ^^ )

집과 차가 있으니 다 된 줄 알았는데 이제는 또 돈이 없는게 문제였다. 인생 참 어렵네..ㅋㅋ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고 하는데 한번 어긋난 사회의 기준, 세상의 시각에 다시 맞춰 돌아간다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나는 그 빚을 부인했을 것 같다.

돈도 돈이지만 내 소중한 인생도 날아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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