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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Oct 19. 2023

한시간 반 트래킹이 어려운 일이야?

딸은 배려라고 읽고, 엄마는 폭력이라 읽는다

"엄마, 10분만 더 가면 돼. 조금만 더 걷자."


"망할 것, 뻥치지마."


피르스트 정상을 향해 걸어가는 나와 엄마의 대화는 30분동안 이 두 문장으로 반복됐다. 

그렇다. 피르스트로 가는 곤돌라에서 나는 모르고 한 정거장 앞서 내렸던 것이다.

분명 구글맵은 35분 거리랬는데. 왜 45분을 가도 아직도 20분이 남은 걸까.



이상하긴 헀다. 정상인 거 같아 내렸는데, 6년전 왔을 때는 내리면 나무로 깎은 곰돌이 조형물이 나왔다.

그리고 사진을 찍고, 클리프 워크로 가는 길이 두갈래길로 이어져야 하는데, 왜 소들이 나오는 거야.

딸랑이를 단 소들이 길을 막고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었다. 

아.엄마 맹장수술한 부위 아플텐데 빨리 걸어가서 앉아야지 하는 마음에 소들도 용감하게 재끼고

엄마를 끌고 열심히 걸었다.

그런데 걸어도 걸어도, 아무리 걸어도 이상하게만치 야트막하게 정상까지 이어지는 길만 

계속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다보니.....

분명 종점에서 내렸는데, 이상하게 곤돌라가 저 위로 이어져 계속 가고 있었다. 

구글 맵을 다시 봤다. 

얼레? 분명 피르스트 정상에서 클리프워크까지 5분 거리랬는데. 왜 35분이 나오지?

아주아주 자세~~~~~~히 들여다 봤다. 구글 맵을.


아.....



난 Schreckfeld라는 역에 내린 것이다. 아뿔싸.

어쩐지 웬 소농장이 나오드라니.

이미 20분 이상 올라온 우리는 중간에서 내려가기도, 올라가기도 애매해서 잠시 서 있었다.

원망과 찌를듯한 날카로운 눈초리를 한 엄마가 나를 뾰족하게 쏘아보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맹장수술한 지 1주일 된 60대 여성을 끌고 산으로 올라가고 있던 것이었다. 


"어, 엄마. 이상하네? 이게...한 정거장 먼저 내렸어."

"야!!!!!"

"미안. 미안한데 20분만 가면 되니까 조금만 걷자. 응? 

 또 언제 우리가 응? 스위스에서 산행을 해 보겠어. 그리고, 가파르진 않잖아 길이?"

"나 배 땡겨 죽겠단 말이야."

"그럼 천천~~~히 가자. 주변도 좀 둘러보고. 공기도 좋고 좋잖아?"


엄마가 눈으로 욕을 하는 게 느껴졌지만, 내 말은 진짜였다.

비록 의도치 않은 상황이었지만 정말 주변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길가에는 야생화가 피어있고,

하늘은 정말 본 적 없이 가깝게 푸르렀다. 구름은 말할 것도 없이 하얗고 예뻤다.

사람이 사방에 없이 그렇게 아름다운 스위스 산맥 한 가운데서 잘 닦인 등산로를 걸을 일이

평생에 몇 번이나 더 주어질까?

특히나 엄마는 이번이 아니면 어려울 것도 같았으니까. 진심이었다. 


"엄마. 기왕 이렇게 된 거 즐겨."

"덥고 힘드니까 말걸지 마!"


솔직히 엄마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7월의 햇살은 정말로 뜨거웠다. 아무리 습기없는 기후라도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났다. 그늘 하나 없는 산에서 맹장을 뗀 노년의 여인이 30분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나는 최대한 엄마가 주위를 둘러보며 즐기기를 바랐다. 


"나 어지러워. 못 걷겠어."

"아 그래? 그럼 잠깐 앉아서 쉬자."


우리는 돌바닥에 앉아서 땀을 닦으며 쉬었다.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천천히 올라갈 생각이었다.


"나 죽을 거 같아."

"엄마. 죽으면 안돼. 물 마셔."


아.....난 T인가 보다. 지금 생각해도 똥멍청이 같은 대답이었지만 그땐 그게 최선이었다. 

나라고 안 힘들었겠는가. 덥긴 덥지. 엄마도 끌고 올라가야 하지....


"몇 분 남았어?"


나는 다시 맵을 켰다. 아.....분명 15분 더 올라왔는데 왜 아직도 20분이 남아있을까."


"얼마 안 남았어. 15분. 15분만 가면 돼."


다시 엄마를 일으켜서 천천히 걸었다. 엄마는 찢어지는 것 같은 배를 쥐고 아주 천천히 걸었다.

하지만 몇 걸음 못 가 다시 주저앉았다.


"이 망할 년. 너 일부러 그랬지?"

"아, 아냐! 내가 왜 일부러 그래."

"어휴. 나 내일부터 너랑 안 다녀. 너 혼자 다녀!"


엄마가 너무 힘들었는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어디 반사할 반사판도 방패도 없는 나는 엄마가 뱉는

그대로 독설을 맞으며 너덜너덜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랴. 내 잘못인 것을.


"에이 엄마. 그래도 엄마 평생 언제 이렇게 스위스 산행을 해봐? 나중에 생각해보면 다 추억이야.

 나중에 생각난단 말이나 하지 마. 올라가면 정말 끝내주는 전망대가 있는데. 거기서 맥주를 마시자.

 진짜 꿀맛일거 같지 않아?"


"닥쳐!!!!!!!"


그렇다. 나는 말을 드럽게 못하는 똥멍충이다. 


"조금만 더 가자. 조금만 더. 와. 10분 남았어?!"

"진짜?"


어지러워 못 가겠다고 한참 앉아있던 엄마는 눈이 번쩍 뜨였는지 겨우 일어났다. 

그리고는 젖먹던 힘을 다 해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망대도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앞에서 내려오는 한국인 신혼부부를 마주쳤다. 엄마는 대번에 물었다.


"얼마나 남았어요?"


자, 신혼부부여. 원래 금방이예요 가 국룰인 거 알지?


"네. 거의 다왔어요. 한 10분?"


그래. 신부여. 센스 만점이네.


"아닐걸요? 아무리 못해도 15분은 올라가셔야 될 텐데."


눈치없는 신랑 1인 납셨다. 신부가 신랑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엄마는 신랑의 말을 듣고 표정이 구겨졌다. 


"아, 아니예요 그정도는 아닐건데. 조금만 힘내세요!"


신부가 신랑을 끌고 서둘러 내려갔다. 나는 신랑의 뒤통수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망할. 


"이 뻥쟁이야. 15분 남았다잖아!!!"

"그래. 13분 남았네! 구글 봐. 자. 맞지?"


맞다. 아까 그 자리에서는 15분이 맞다.

그래도 10분이라고 해야 좀 따라올 거 같아 하얀 거짓말 좀 헀더니.

엄마의 구시렁대는 욕을 먹으며 1시간 넘게 걸어 드디어! 피르스트 정거장 정상에 올랐다. 

와. 그때 본 곰돌이 상. 나는 엄마를 세워두고 사진을 찍어줬다.

엄마도 다 올라오니 화가 조금 누그러지셨는지 사진을 찍었다.


"자 엄마, 우리 전망대에 가서 맥주를 마시자. 거기 가면 맛있는 거 많아. 

그러려면 클리프 워크를 건너가야해. 아주 쉬워. 10분도 안 걸려."


"망할. 아직도 남았단 말야?"


다행히 클리프워크까진 정말 3분 거리였다. 엄마는 클리프 워크를 보자마자 기겁했다.


"야. 난 여기 죽어도 못 건너."

"죽긴 왜 죽어. 저기 어린 애들도 건너잖아? 금방이야. 엄마. 멀리 봐. 그럼 하나도 안 무서워."

"너나 가! 나 안가!"

"시끄럽고 그냥 와! 애도 둘이나 낳은 여자가 뭐가 겁나서 못 와? 빨리 와!"


그렇게 안 하면 엄마를 데리고 전망대까지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전망대에 올라가면 얼마나 멋진 광경이 펼쳐지는지, 거기서 마시는 커피 한잔의 시간이

얼마나 인생에서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인지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건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당장에 아픈 몸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하지만 딸이 우겨대자 결국 엄마도 클리프 워크에 발을 디뎠다.

후들후들 거리며 엄마는 사람들에 밀려 겨우겨우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에서 난 맥주부터 시켰고 푸짐한 파스타까지 담아 오자 엄마는 폭풍 흡입을 시작했다.

흡입하는 음식과 맥주의 양과 비례해서 엄마의 화가 누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미안하다 딸아. 좋은 줄은 알았지만 너무 힘들어서 아까 엄마가 너무 짜증냈어."

"아냐. 배도 아픈데 딸때문에 고생했어. 그래도 좋지?"

"그래. 좋네. 딸 말듣길 잘했네."

"힘들었지? 많이 드셔."


엄마는 못내 미안했는지 좋다고 연신 칭찬을 연발했다. 딸덕분에 좋은 구경 한다며.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나도 내심 걱정했던 마음의 근심이 누그러졌다.


한참 후에 엄마에게 이때의 일을 여쭤보니 올라가길 잘 했다는 생각은 들지만

다시 올라가고 싶진 않으시다고 했다.

공황장애까지 와서 힘드셨다고.

그 얘기를 듣는데 어찌나 미안하던지.


나는 욕심이 있었다. 다시 못올지도 모르는 엄마에게 스위스에서 멋진 산을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

그리고 산행도 조금은 해보게 하고 싶은 욕심. 왜냐면 나한텐 그 기억이 훗날 힘든 일들이 있을때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으니까. 엄마에게도 어느 힘들고 우울한 날 꺼내보면 힘이 될 그런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엄마에게 그 기억이 어쩌면 다신 하고싶지 않은 별로 좋지 않은 경험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된다.

나는 그게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최선의 배려라고 한 것인데,

엄마에게는 그게 폭력적으로 느껴졌지 않았을까. 

그날 이후 엄마는 여전히 나를 의지하시며 여행을 잘 다니셨지만 

이 여행에서 가장 힘든 순간을 꼽으라면 이 때라고 하셨다.

그럼에도 이날 먹은 맥주가, 제일 맛있었다고 하신다.


난, 잘한 걸까?

어찌됐던 내게는 그날 엄마와 투닥대며 소를 재끼고 산을 오르던 시간이,

엄마가 스파게티를 우걱 우걱 드시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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