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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Sep 04. 2023

취리히 시내엔 코인 세탁소가 없다

여행은 준비한다고 해서 완벽해지지 않는다


35도 아니 36도를 향해가는 한낮의 취리히는 뜨거워도 너무 뜨거웠다.

7월초 취리히 날씨가 그렇다.


서유럽은 고온건조하다고들 한다.

그래서 다습한 동남아와 비교하면 걸어다니기 편할 것으로들 예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뜨거움은 아무리 피하려 해도 뜨거웠다.

공기 자체가 뜨거우니 아무리 선풍기를 쐬어도 시원해지지 않았고

실내 에어컨은 우리나라에 비하면 턱없이 시원찮았다.


한식을 꼬오오옥 먹고싶다던 엄마 덕분에

잡히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다 그냥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한식당으로 향했다.

몇분만 걸어도 비지땀이 흐르는 날씨였다.

그렇게 찾아낸 한식당 실내는 에어컨이 없어 너무 후덥지근 했고

그나마 파라솔이 쳐진 노천석이 나았다.

자리에 앉았고 우리가 택할 수 있는 한식 메뉴는 돌솥비빔밥이었다.


우와.....삼복더위 노천에서 돌솥비빔밥을 먹다니.

것도 스위스 취리히에서ㅋㅋㅋ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밥이라며 좋아하는 엄마를 보며 그래.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겨우겨우 그 뜨거운 비빔밥을 떠서 욱여넣으며 내 옷과 몸은 온통 땀으로 절여졌다.


그날의 돌솥비빔밥. 그나마 얼음컵에 콜라를 먹을 수 있으메 감사했다. ㅠㅠ


파리에 도착하고 3박 4일.

니스에서 2박 3일.

제네바에서 1박 2일 그리고 체르마트에서 3박 4일.

그리고 또 인터라켄에서 2박 3일.


여행간이 열흘이 훌쩍 넘었고, 그리고 날씨는 너무나 더뤘다.

그래서 우리가 가져간 그 큰 트렁크의 옷들도 모두 땀에 절어 있었다.

밥을 겨우 다 먹고는

잡히지 않는 우버를 끊임없이 호출하며 우리는 뜨거운 거리를 또 그냥 걸었다.

그렇게 호텔로 향하는 길에는 옷가게가 참 많았다.

아니, 그냥 그런 옷가게가 아니라 정말 예쁘고 사고싶은 디자인의 옷들이 가득했다.


그래도 너무 땀에 절어서 어딜 들어가 쇼핑을 할 상태가 아닌지라 일단 호텔로 왔고 우린 로비에 도착하자마자 호텔 내나 근처에 코인세탁실이 있는지 물었다.


"아니요. 없어요."


아니 코인세탁실이 없으면 대체 어디에서 이사람들은 세탁을 한단 말인가.


"있긴 하지만 여기선 좀 멀어요. 그리고, 가서 세탁 기다리고 또 들고 돌아오는 거 생각하면

호텔에서 그냥 런드리 서비스 맡기는 게 나을 거예요."


호텔 세탁 서비스......?


사실 우리가 여행을 그렇게 많이 했어도 호텔 지하 코인세탁은 해봤지만

그 비싼....속옷 한장도 비싸게 받는(것으로 알고 있었던) 호텔 클리닝 서비스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취리히에 2박 3일만 묵을 계획이었고

도착한 바로 그날 세탁을 해야 취리히를 떠나기 전 옷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세탁을 맡기지 않는다면 파리에 가서 입을 옷이 정말 없었다.

우리는 고민 끝에 비싸도 옷을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장 지금 입은 옷도 땀에 절어있기에.


"그건 그거고, 옷이나 사자"


우리가 묵은 호텔 바로 앞에 있던 옷가게. 저렴하진 않지만 백화점이나 아웃렛 옷보다는 훨씬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우린 상점에 들어가 쇼윈도에 걸린 시원해보이는 옷을 골랐다.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었다. 스위스 체르마트나 다른 곳에서도 세탁을 못했어서.

코인세탁소가 없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극 J라고 자부했던 나도 장기간 여행에 당연히 나오는 빨래 생각을 못했다는 게 당황스러웠다.

어딘가 호텔 한 곳이라도 세탁실이 있을 거라고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그러려니 했던 것이다.

그러나 7월 초 스위스는 너무너무너무너무 더웠다.

그렇게 우리는 계획에 없던 의류쇼핑을 했다.


사실 옷 쇼핑은 니스에서도 했다.

그런데 니스가 덥다 보니 하루에 두번씩 옷을 갈아입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옷이 모자랐다.


짐이 더 많았다면 여행에 문제가 었을까.

준비를 철저히 한다고 엄청 짐을 싸짊어지고 오느라고 각자 트렁크 무게만 24킬로에 육박했다.

어떻게 하더라도 여행에는 돌발변수가 있고 계획대로는 절대로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럼 그냥 좀 가볍게 왔다면 다니기 수월하지 않았을까.


차라리 우리엄마처럼 유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여행에 더 맞는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인생도 아무리 고민하고 대비하고 준비한다고 해도 절대 내 짐작과 내 계획대로만 되지 않겠지.

J가 작은 돌발상황엔 조금 덜 힘들진 몰라도

큰틀에서 결국 여행도 인생도 P의 연속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날의 교훈은.

취리히 시내엔 코인세탁소가 없다.

건조해도 고온은 더운거다.

급할 땐 호텔 런드리서비스도 이용할 만 하다

(단, 24시간 여유는 필요하다)


그래도 이열치열은 내 취향 아닌걸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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