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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Aug 12. 2023

주인장, 남은 술 있수?

한여름 스위스의 더위나기

호텔방에서 보는 호수 앞 모습. 33도의 찌는 더위에도 사람들은 배를 타겠다고 줄을 서 있다. 당신들 멋지다.


7월 8일.

우리는 체르마트를 떠나 인터라켄으로 옮겼다.

체르마트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아 덥다...이런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여름 옷을 입고 걸어다녀도 땀이 나지 않을 정도의 온도였기에

적어도 더위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은 없었다.


인터라켄에 오고 나서 상황이 달라졌다.

태양이 뜨거웠고, 뜨거운 만큼 더웠다.

우리나라만큼 습기가 많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났다.


우리는 인터라켄동역 바로 옆에 붙어있는 호텔 뒤 락이라는 곳을 예약했다.

역이 훤히 내다보이고, 옆으로는 호수가 보이는 코너방이었다.

무거운 추같은 게 달린 오래된 열쇠키에, 굉장히 오래되어보이는 인테리어였지만 기대이상으로 깔끔했다.

방으로 들어오자, 넓은 방이 펼쳐졌고 그리고.........


에어컨이 없었다.



냉장고가 없는 것은 덤.




핸드폰 액정에 표시된 온도는 33도~34도.

아무리 실내라도 너무 너무 더웠다.

햇빛이 뜨거운 한낮에 돌아다닐 엄두는 도무지 낼 수 없었다.


"미안한데 나 오늘은 도저히 밖에 못 나갈거 같아."

"나도. 엄마, 여기 인터라켄 맞아? 어떻게 이렇게 더울 수가 있지?"

"내 말이."


우리는 체크인 하자마자 땀범벅이었던 지라 샤워부터 했고

제일 얇은 옷을 입었다.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창문 앞에 앉아 바람이 나와도 전혀 시원하지 않은 선풍기를 틀어놓고는

역앞 마트인 Coop에서 사온 작은 와인 한병을 땄다.

그마저도 냉장고에 있던 것이 아닌지라 미지근했다.

그때, 체크인 때 컨시어지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그 층에(3층) 아이스머신이 있어요."


엄마를 두고 나는 잠옷차림으로 복도로 나갔다.

호텔 복도를 따라 걸어가자 가운데 즈음에 아이스머신방이 있었다.

가져간 물끓이는 포트에 얼음을 퍼서 가득 채워 방으로 갔다.

복도를 왔다갔다 하며 그짓(?)을 열번이상 한것 같다.

그리고는 계속 얼음에 화이트와인 샤슬라(Fendant)를 마셔대기 시작했다.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스위스도 와인산지인지라 스위스산 와인을 판다.

하지만 스위스 밖에서는 스위스산 와인을 마시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 이유는 스위스가 전세계 와인 소비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와인소비가 많아

내수용으로 모두 판매되어 수입이 되지 않기 떄문이다.

그래서 스위스에 갈 때마다 1일 3와인을 해야 한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할 정도로

스위스 와인을 많이 마셨다.

개인적으로 와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스위스 화이트 와인은 맛이 깔끔하고

뒤끝이 적어 선호한다.


우리는 호숫가에 더위를 피해 나와 잔디밭에서 깔개를 깔고 누워있거나 책을 보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아무리 얼음을 타 마셔도 작은 와인병 하나쯤은 한시간? 한시간반만에 동이 나버렸고

우린 마트가 닫기 직전 마트에 얼른 나가 줄을 서서 남은 와인 두병을 사왔다.

하지만 그마저도 한시간 반만에 바닥을 드러냈다.

저녁 9시쯤이었지만 너무너무 더웠고 바깥은 어두워지지도 않았다.


"엄마, 혹시 호텔1층에 레스토랑에 팔다남은 와인이 더 있지 않을까?"

"에이. 설마."

"왜 없겠어? 조식만 팔 수도 있지만 저녁을 팔수도 있잖아?"

"그런가?"


할 일도 없고, 먹을 것도 없었던 우리는 더위에 미쳐있었나보다.


"아니, 물어보는 것도 안돼?"

"그럼 너 혼자 갔다 와."

"의리없이. 내가 물어볼테니까, 옆에 있어 그냥."


나는 혼자 가기는 쪽팔려서 엄말 열심히 꼬셔서 데리고 로비로 내려갔다.

다행히 로비에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한껏 미소를 띤 얼굴로 물었다.


"Do you have wine?"

"What?"


남자는 얼굴이 발갛게 익은 동양인 두 여자가 뭔 소릴 하는건가 하는 표정으로 우릴 바라보았다.


"Wine. White wine. Is there any Wine we can buy?"

"No. We don't sell wines. You should go liquor store if you want to buy wine."


이봐요. 쿱이 다 닫았으니까 묻잖아요.

얼음이 어디있는지 알려줬던 그 남자는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 먹고싶으면 레스토랑에 가면 된단다.

뒤를 돌아보니 엄마는 다른 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하지만 스위스의 주말 저녁 9시에 연 레스토랑은 너무 멀었다.


어쩔수 없이 우린 빈손으로 방으로 올라왔다.

올라오고 나자 웃음이 터졌다.


"이건 뭐. 여관장한테 가서 남은 소주 있수? 묻는 취객이랑 같잖아."

"그래서 내가 너 안 쳐다봤어."

"왜?"

"쪽팔리니까."


스위스에서 더위에 와인 타령을 하게 될 줄이야.

32도가 넘는 여름밤. 우린 하릴없이 얼음물만 들이키며 비지땀만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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