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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Jul 19. 2023

파리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우버도 싫고 프랑스도 싫어졌다



 우린 택시를 타고 주말에 열리는 방브 벼룩시장을 가기위해 파리 시내 BLVD Peripherique 라는 고속도로 남측방향을 달리다 교통사고를 당했고 차량은 거의 사방으로 찌그러졌으며 (반파까지는 아닌 것 같지만) 트럭에 좌측 뒷자리쪽을 받혀 한바퀴를 회전하고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멈춰섰다.


 운전자 두 사람은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차량을 마주보게 세운 상태 그대로 내려 싸우기 시작했고

차에 그대로 타고 있던 승객인 나와 엄마는 두려움에 떨다 겨우 차에서 탈출해 갓길에 40분을 그냥 서 있었다.

쌩쌩 달리는 차량들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우릴 보고도 두대의 앰뷸런스와 두대의 경찰차는 그냥 지나쳤고 40분쯤 되어서야 경찰이 와 현장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서있을 정도로 멀쩡하긴 했지만 손목과 정강이에 부상을 입은 엄마를 두고도 방치한 채 저희들끼리만 얘기하던 경찰과 운전자 두 사람에 화가 난 나는 영사 콜센터로 전화를 걸었고 프랑스 대사관 담당자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그제서야 경찰은 우리 두 사람에게 견인 차량을 타고 고속도로를 빠져나가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갈 수 있게 조치해주었다. 당연히 모든 비용은 택시기사가 부담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안내받은 병원은 네께르 종합병원이란 곳이었고 우린 차를 타고 10~15여분을 더 가서 병원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 사진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 병원은 어린이 병원이었다.

병원 같지 않게 사람 하나 쥐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고, 우린 간신히 응급실을 찾아 들어가려했지만 입구에서부터 제지당했다.


영어를 못하는 담당자와 손짓발짓 끝에 "여긴 어린이 전문병원이라 성인인 우리는 치료받을 수 없다"는 말 한마디로 "입구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쫓겨" 났다.


이쯤 되니 이것들이 외국인이라고 사람을 정말 이렇게 띄엄띄엄 보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가 났다.


경찰이 찾아서 보낸 병원이었다. 대사관 직원이랑 연결해서 통화까지 시켜서 병원엘 보내달라 해서 온건데 대사관이고 뭐고 말 안 통하는 동양 어디서 온 듣보잡 이방인일 뿐이었나보다. 병원 담당자 측의 태도도 어이가 없었다. 어린이 병원이면 아픈 사람이 응급실에도 못 들어가는 건가?

내장파열이라도 된 사람이면, 그냥 어린이 병원 앞에서 죽어가도 다른 병원 알아봐야 되는 건가? 조금만 더 다쳤다면 길에서 그렇게 비명횡사 했겠다는 무서운 예감에 무력감이 몰려왔다. 전화해서 싸울 의지도 희미해졌다.


"얘, 병원은 됐고 나 누워서 쉬고싶다."

"엄마 그래도 병원은 가야지. 잠깐만 기다려봐."

"어이구. 됐어. 그냥 집에 가."


엄마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털끝 하나 안다친 나와 달리 엄마는 어쨌든 충격이 가해졌기 때문에 병원에 안 간다는 것은 나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팔도 그렇고 뼈나 인대의 문제는 없는 것 같다고 말하며 쫓겨난 어린이병원 앞에서 그냥 제발 눕고 싶다는 엄마를 병원을 찾아 모시기도 그랬다.


 일단은, 일단은 눕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또 망할놈의 우버를(물론 고급 컴포트로 잡았다) 타고 호텔로 모시고 갔다. 망할 놈의 우버.


 엄마는 오자마자 누웠고 나는 가져간 붙이는 핫팩을 침대위에 붙여드렸다.

따뜻하니 편안하다며 바로 잠이 드셨다.

그제서야 나도 충돌 때의 기억이 제대로 떠오르며 오싹해졌다.

불과 한두시간 전에 우린 파리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한인 여성 2가 될 뻔했던 것이다.

조금만, 조금만 운이 더 나빴으면 말이다.


불행 중 다행히도 별 이상은 없으신 듯 했다.

간호사였던 어머니는 찰과상 없이 약간의 멍만 입었다며 아마도 충격으로 몇일은 몸살이 있겠지만 큰 부상은

없다고 하셨다.

놀라서 울렁거리긴 하지만 토하거나 미슥거리고 머리가 아프고 하는 증상은 없었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 날, 저녁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우리의 여정은 이렇게 어이없이 끝이 났다.


"엄마, 그래도 뭘 드셔야 되잖아. 그 저번에 드신 비프 타르타르 먹고싶댔지?"

"어. 그런데 좀만 더 쉬자."


아무래도 나가시는 건 무리인 듯 했다. 룸서비스를 시킬까 알아봤지만 그 메뉴는 룸서비스에 없었다.

그래서 알아본게 또 "망할놈의" 우버 이츠.

다행히도 근처에 비프 타르타르 배달을 해주는 식당이 있었고 배달을 시켰다.

40분만 기다리면 방에서 편하게 비프 타르타르를 먹을 수 있겠다.

그래. 먹는 거라도 든든하게 먹어야지. 했다.


그런데....






배달원이 배달통을 열자 음식물은 찌브러진 채 있었다. 영어를 전혀 못해 말도 통하지 않았다.

번역앱 당연히 써봤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다 지나가던 호텔 직원이 나를 봤고 중간에 통역을 해줬다.

배달원을 보내고 우버측에 환불받기 위해 직원과 나는 열심히 앱을 이리저리 열어가며 씨름을 했다.

엉망이 된 음식을 촬영했고 직원이 대신 음식물을 버려주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30분만에 환불절차를 직원의 도움으로 마쳤다.

그렇게 또 한시간 넘게 허비했다.




"엄마, 오늘은 안 되는 날인가봐."

"그냥. 우리 대충 먹자."

"안돼. 마지막 식사인데 대충은 안 되지. 우리 길 건너 식당에 비프 타르타르 있던데 먹으러 가자."

"그래. 그러자."



우린 길 하나만 건너면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갔고 그때가 2시 반이었다.

식사 때도 한참 지난 시간이었다.

심드렁한 웨이터가 주문을 받았고 하지만 푸짐한 비프타르타르가 나왔다.

우린 어쨌든 웃으며 마지막 식사를 마쳤다.




식사를 하는 도중에 돌풍과 함께 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집에 가라고 이러는가 보다 하며 우린 호텔로 돌아와 짐을 쌌고 공항으로 향했다.

말이 통하는 한국인들로 둘러싸인 공항 대기 라운지에서 우린 비로소 안도했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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