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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Oct 23. 2023

9. 막내 생활 10년에 느는 것은

노예 근성 뿐

내가 입사하던 시기는 바야흐로 2000년대 후반,


닷컴버블이 꺼지고 부실채권과 채무불이행, 미국의 은행도산 도미노로 인해 금융침체기에 들어선

바로 딱! 그 시기였다.

전 세계적으로 불황이 휩쓸고 하우스푸어라는 용어가 등장했던 바로 그 시기.

내집값이 떨어지는 소리에 곡소리가 엄청나게 나던 그 시기 말이다.


취업시장에도 얼음바람이 불었다.

지금도 취업이 얼마나 힘든지 알지만 그때도 힘들었다.

그렇게 뚫고 들어온 직장이 소중했고 감사했다.

그렇다.

회사는 이후로 신입을 뽑지 않았고 1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공공기관은 호봉제가 거의 디폴트다.

그러니 내가 승진을 안 해도 1년이 지나면 월급은 조금씩 오른다. (코딱지만큼이라는 함정)

그래도 그게 어딘가.


승진을 바라기엔 내 앞에 수두룩 빽빽한 선배들이 있었고 내 뒤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1년, 2년, 3년......6년, 7년이 흘렀다.


회사에서 막내라고 잡무만 할 거라고 생각하면 경기도 오산이다.

회사는 기본적으로 인건비를 쓰면서 쓴만큼 뽑으려 하는 조직이다.

코딱지만큼 오르는 월급값만큼은 최소한 나에게 일의 무게를 더해준다.


점심예약도 저녁예약도 팀비관리도 온갖 전표처리도 업무분장이 따로 없는 일들도 막내 차지였다.

그리고 별도의 담당업무도 해야했다.

승진은 남의 일이었다.

왜 일은 승진한 선배들만큼 하라고 하면서 나는 승진을 시켜주지 않지?

억울하다 생각했다.

근무평가는 또 거의 하위권이었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마음은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후배가 들어왔다.

아 드디어.

하지만 고작 두세명 뿐이었다. 그래도 그게 어디랴.

그 다음 해에도 몇명을 더 뽑았지만 그 친구들은 내가 있는 부서에는 없었다.

결국 난.....10년동안 점심 예약과, 회의 자료 취합을 하면서 일을 해야했다.

다들 약속을 가고 팀장님 혼자 남았을 때 나는 점심 약속을 취소하고 그분이 좋아하는 밥을 먹어야했고

한 팀원은 부대찌개를 싫어하고 한 팀원은 생선을 싫어하고 한 팀원은 돼지고기를 안 먹는 대환장파티에도

매일같이 다른 메뉴를 선택해야 했다.

아, 다 취합해서 편집하고 넘겼을 때 양식 VER.2 / VER.3 에 다시 작업하는 것도 오롯이 내 몫이었다.


그 다음번 신입이 들어왔을 때에야 나에게도 후배가 생겼지만....

그들은 내가 했던 점심예약과, 회의자료 취합을 왜 그들이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업무분장에 없는 일들을 막내가 하는 불문율도 거부했다.

그래서 그 일들은.......또 우리의 차지가 되었다.

막내생활을 오래 한 우리들이 부리기 편했기 때문이고, 우리는 투덜대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호구"의 길에 들어섰다.


내가 1직급을 승진하는데 걸린 시간은 평균 만 5년이었다.

하지만 내 뒤에 들어온 후배들은 2직급 승진하는데 햇수로 5년도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비교를 하지 않으려 해도 박탈감이 드는 건 어쩔수 없었고

그들에겐 잡무대신 가치높은 업무를 맡겨온 윗사람들의 "프레임"에 나의 기수는

"만만"하고, 막 부려도 편안하며, 막내같은 그런 존재들이었다.


우리의 책임도 있다.

군소리 없이 시키는 대로 찍소리 않고 일했으니까.


어느날인가 동기가 등기를 찾으러 총무부서로 왔다.

동기가 그 친구에게 물었다. "막내가 몇 명인데 니가 와서 등기를 찾아?"

"이런거 못 시켜" 친구가 말했다.

업무분장에 등기 찾기 같은 게 있을리 만무했으니. 그냥 만만한 10년 막내였던 우리가 그 일을 하는 것이다.

꼰대라고 해도 상관없다.

누구 탓을 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가 이 지경에 빠진 것은. 사원대리과장을 거쳐서 중견사원이 됐어도 어떤 보상도 없이

막 대하는 것이 "디폴트" 였던, 조직의 잘못이었다.

이 지경이 되고도 투덜거림 없이 묵묵히 조직에서 나사 볼트 역할을 하는 우리의 잘못이었다.


조직생활을 오래 한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없이 제 역할 충실히 하다 보면 알아주는 날 있을 것이다." 라고.

어딘가엔 그런 조직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몸담은 조직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평가에서 꼴찌를 달릴 때는 "너의 선배들이 많아서 어쩔 수 없다"고 했으면서

우리의 후배들이 동급이 되었을 때는 "요즘 누가 연공서열을 따지냐"고 했다.


나의 상사들은 지금의 내 나이에 관리자가 되었다.

그러니 막내들에게, 그리고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어떤 고충이 있는지

이 나이에 막내들이 안 하는 업무를 도맡아 또 해야하는 심정이 어떤 심정인지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승진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모난 짓이라 생각한다.

"너네는 달라" 이것이 그들이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태도였다.

그런 사람들을 상사로 모신다는 게 매우 불쾌했다.

그리고 그런 마인드를 보이는 말을 그들이 내뱉을 때마다 모멸감을 느꼈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울며 밥달라고 보채고 구르는 사람에게 떡하나 더 주어지는 게 현실이다.

물론, 그보다도 끌어주는 줄이 있다면 더 좋고.


공공기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사기업보다 더 공평하고, 정당하고

사적이익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조직이 움직이는 일이 적은 시스템이라고 막연히 생각할지도 모른다.

내가 겪은 이 집단은 절대 그렇지 않으며, 아마도 다른 공공기관도 비슷한 실정일 것이다.

세상은 그리 공평하지 않으며 공기업도 거기서 그리 벗어나 있지는 않다.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고 그렇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는 취업불황기도 겪었고 정리해고기도 겪었다.

그래서 결국 내 동기들은 제각각 살 길을 다른 방향으로 모색하게 된다.

상사에게 아부하기.....일것 같지만 아니다.

실력을 키우는 쪽으로 갔다.

전문자격증을 따거나, 학업을 지속했다. (물론 가정생활과 육아와 병행해서)

유학을 떠나며 휴직한 동기도 생겼다.

기회를 얻은 동기들은 더 좋은 신의 직장으로 떠났고

다른 동기들도 제2의 경력기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지낸다.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나온지 몇년.

최근엔 공무원에 대한 인기가 식고 있다.

나는 이게 다른 부류의 흐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조직이 역량이 좋은 직원을 뽑아놓고도 구태연한 방식의 인력관리를 지속했기 때문에

인생을 갈아넣기를 거부한 젊은 직원들이 제 자신을 지키기 시작한 것이고

공무원으로 들어가보니 경제적 보상도 부족한데다 상사가 제 역량보다 한참 달리고,

거기다 아직도 쌍팔년도식 조직문화에 업무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한 것을 빨리 알아채고

퇴사러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 살기 위한 합리적 선택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사회경험이 부족하다고 그들이 다 모를거라 생각하는 기성세대가 바보다.


10년차가 넘어가던 그 시절 나는

업무에서도 대우에서도 불합리를 경험하며 점점 열정을 잃어갔고

업무를 할 때는 나를 찾으면서 보상을 할 때는 나몰라라 하는 조직에 대한 멍청한 충성도를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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