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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Sep 26. 2022

8.부장님의 부부궁합은 궁금하지 않습니다

사이가 안좋으면 상담소를 가세요 아니면 법원이라도


"사실 나 마누라랑 사이가 좋지 않아."



 아니요, 싫어요 라는 단어가 사전에 없는 사원-대리 시절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게 있었다. 왜 수많은 40대-50대 중년 남성 상사들은 그렇게도 부부관계가 좋지 않다는 말을 하는 걸까. 정말 리액션이라면 뭐든 준비돼 있던 시절이었기에 무안을 주는 구박에도 웃으면서 그러게요~~(나이스샷이라고 안한 게 어디니) 라고 했던 밥통같은 나였지만 꼭 저녁 회식이라면서 밥먹자고 불러내서 저런 말을 하고 있는 상사에게 뭐라 리액션을 해야할 지 통 몰라서 머리가 백지가 되곤 했었다.


 내가 그 부장님의 연배 즈음이 되자 그 "사실" (정말 마누라랑 사이가 나쁠수 있다는) 은 뭐. 충분히 있을 법한 얘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니 사이가 나빠서 갈라선 사람 뿐 아니라 재혼한 놈, 삼혼한 놈, 바람핀 놈,

뭐 각방은 예삿 일이고 비슷한 연배에 친한 사이끼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고백을 하기도 한다. (뭐 내 친구들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보니...) 하지만 여전히 이런 고백에 뭐라 해야 할지는 좀 난감하긴 하다. 아주 친한 사이라면 그랬구나 할 수도 있겠지만 애매한 사이인 직장동료에게 이런 말을 들을 때는 옛날처럼 여전히 부담스럽다. "나 너랑 그런 얘기 나눌만큼 친하지 않은 거 같은데?"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도 하다.


  나한테는 그런 적이 없지만 그렇게도 자취 중인 여자 동기에게 주말에 전화해서는 만나자는 상사도 있었다.

지금 그런 사람이 있다면 딱 짤리기 좋은 사이즈의 만행이다. 애기같은 신입에게 지 부부궁합 얘길 입으로 싸는 (똥같은 얘기니 싼다고 해야지) 놈들이 요즘도 있을까? 그게 곧 100% 흑심은 호옥시 아닐 수도 있겠지만 오해받기 쉬운 얘기고 그런 말을 애들한테 뱉는다는 거 자체가 주책바가지란 얘기다. 친구없는 부장님이라고 아무리 쉴드를 치려해도. 미쳤냐? 아 타자치면서도 급발진하게 된다.


 그때의 나는 정말 있는 힘껏 못 들은 척을 하는 걸로 듣기싫음을 표현했다. 그게 소심하고 넵무새인 나의 최선이었다. 지금의 내가 그시절의 나로 돌아가 같은 일을 겪는다면? "부장님, 사모님하고 일은 사모님하고 해결하시죠. 법원에 가시던가요 그럼." 이라고 되바라지게 쏘아붙일 것 같다. 정말 강적이라면 "이혼하고 오면 만나줄래?" 라고 응수할 인간 몇명 있다에 내 손모가지를 건다. 평화로운 토요일, 일을 해야 한다며 아무도 없는 외부 사무실로 불러 내게 타자를 치게 한 다음 고급 식당을 데려갔던 그 응큼한 50대 부장님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좋아서 간 거 아니다. 나를 평가하는 사람이 주말에 잠깐 일 좀 도와달라는데 안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거 같나? 그때 나의 나이는 스물여섯이었다)


 어떤 사건(넵무새에 순두부같이 살던 내가 흑화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을 겪고 나서는 회사에서 의도적으로 웃지 않으려 애를 썼다. 나는 막내로서 조직의 선배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예절이라고 생각해서 기분이 좋던 안좋던 밝게 대하려 노력했던 건데 어떤 사람은 그것을 헤프다, 혹은 남자들에게 꼬리친다는 생각을 했었나보다. 그리고 그 이후 몇년동안 이런 모욕적인 대접은 여직원들의 전유물인 줄 알았다.


지금은 아니지만 내가 신입일 때는 반 강제적인 술회식 문화, 2차 노래방 문화 (남자사원의 경우 2~3차에 여성 종업원이 나오는 주점이나 나이트 등으로 가는 일이 흔했다)가 존재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남자 동기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그들도 나만큼이나 여성 상사에게 불편한 일을 겪어왔었음을 알게 되었다.  레파토리는 더 노골적이다. 너 몸좋다 (만지는 것 포함)며 성추행에 해당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술자리에서 벌어졌다. 그런 것들을 견디는 것도 막내의 설움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신입들이 이런 일을 겪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것인데 왜 우리 때는 그러질 못했을까.  나 역시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는 나이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내게 지저분한 처세를 하지 않았던 상사들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그런 분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말이 많지 않다는 거다. 쓸데없이 친목질하며 아는 척하지 않았고 때론 궁금한 지점이 있더라도 묻지 않으셨다. 자신의 이야기는 단 둘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들었을때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공유되었다. 그렇다. 좋은 상사는 "사생활을 공유"하지 않고 공유하더라도 최소화한다. 그리고 "사생활"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 또한, "외모"에 대한 코멘트를 일절 하지 않는다. 좋은 의도를 가졌다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불편할 수도 있기에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쓰다 보니 내가 의도치 않게 내 행동으로 불편했을 후배들이 있었을 것도 같다. 자신이 없으면 사적 대화를 섞지 말자는 다짐을 다시 하게 된다. 그들은 내 친구가 아니라 직장 동료이다. 일하기 위해 만난 사람들이기에

당신의 사생활에 관심이 없다. 특히 당신보다 어린 직원들은 더더욱. (아 그때 그 부장님들은 그래도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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