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 한창이던 그때는 사실 책을 집지도 않았다. 활자를 들여다보는 것이 피곤했고 흥미도 생기지 않았다. 대신에 침대에 누워서 혹은 앉아서 종종 TV를 보곤 했다.
어느 날, tvN이라는 채널에서 예고편을 보는데 어? 저건 뭐지? 싶은 퓨전 사극 드라마가 나타났다.
분명 여성의 외양을 하고 있는데 하는 짓은 영락없는 남자인 그녀.
씩씩하고 당돌한 태도에 조선시대 왕비의 복색을 하고는 다리를 벌려 앉아있는 여자.
뭘까? 싶었다.
그녀의 이름은 장봉환. 김소용. 장소봉.
왜 세개냐면 현대에서 조선시대로 타임슬립해 온 남자의 영혼(장봉환), 영혼이 가출해버린 조선시대 여자의 몸(김소용), 그 둘이 결합된 인간(장소봉)이기 때문이다. 남자? 여자? 뭐라고 정의내리기 어렵다. 굳이 한다면 , 인간이다. 조선시대 여자의 몸 속에 갖혀버린 자유분방한 현대의 남자가 조선시대 그것도 궁궐에 있는 여자의 몸 안으로 떨어졌으니. 만약에 내가 그랬다면 나는 그대로 멘붕상태에 빠져있다가 생을 끝내버렸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아니 그녀(?) 는 달랐다.
일단 그는 자신이 있던 현대의 몸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시도를 온 사력을 다해서 한다. 자신의 두뇌, 지위, 주변인물, 모든것을 총동원한다. 나름대로 줄타기도 하고 가진 권력도 활용하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한다. 분명 답도 안 나올 전무후무한 위기상황인데도 한탄하고 자리에 주저앉지 않았다. 좌절은 비명 한번으로 끝낸다. 순간마다 떨어지는 위기상황들 속에서 멈추지 않고 어떻게 헤쳐나갈지를 궁리하고 돌파구를 찾아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일단 그점이 매력적이었다.
장봉환은 현대에 청와대 최연소 쉐프였던 사람이다. 그리고 미래에서 왔기때문에 조선시대 그 어느 뛰어난 사람보다도 인사이트가 탁월하다. 그러니 관습에도 얽매이지 않고 그 누구보다 확신에 찬 선택을 한다. 자타공인 독보적 아이덴티티를 가진다. 자신이 가진 것을 잘 알고 그것을 잘 이용한다. 미래의 기술을 활용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거나 조력자를 돕는다. 수영장 물에 빠지면서 타임슬립했던 것을 근거로 다시 타임슬립할만한 "대량의 호수 물"을 얻기 위해 실세인 대왕대비에게 밤새서 만든 파인 다이닝을 선보여 그녀의 마음도 얻고 원하는 호수의 물도 채운다. (물론 현대로 돌아가는데는 실패했지만) 그리고 철종이 반대세력의 훼방으로 연회에서 음식을 내올 수 없는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직접 부엌에 뛰어들어 청와대 쉐프의 짬바이브가 뭔지 멋지게 보여준다. (개떡같은 말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철종과의 환상의 호흡도 무시할수 없는 관전포인트였다)
그는 이해능력이 뛰어나다. 나는 아직도 여자라서 그런지 남자의 마음을 잘 모른다. 장봉환도 처음 김소용의 몸에 갖혔을 땐 기묘해하기만 할 뿐 그녀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몸으로 살아가면서, 현대의 자신(남성) 처럼 살아갈 수 없는 단단한 유리천장을 만나 직접 체감하며 자동으로 소용이의 처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는 타임슬립한 다음날 바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철종과 혼인해야 했고, 철종(남성) 과 달리 겹겹이 옷을 걸쳐입고 목이 빠질만큼 무거운 가채를 머리에 이고 2일을 꼬박 혼인의식에만 써야했으며, 궁중예절 특훈이라는 이름으로 뛰는 것조차도 안되며 온통 안되는 것 투성이인 예법을 몸에 익혀야 했다. 그리고 결혼하자마자 왕이라는 이유로 세컨드를 빨리 들여야겠다던 남편(철종)의 요구도 너무도 당연하게 들어줘야만 했다. 그게 그 시절 왕후의 역할이었으므로.
죽어도 궁에서 죽으세요! 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던 소용의 처지를 모두 알게 된 장봉환은 직접 경험하고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부당함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표현한다. 일단, 왕과의 혼인식에서 조선최초의 노브라를 시전하며 소심한 반항을 한다. 가장 큰 것은 말투. 왕 앞에서 그는 현대에 썼던 그 말투를 그대로 유지하며 궁중어법을 완전히 뒤엎는다. (결국 철종은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사전까지 만들게 된다) 나중엔 그의 후궁을 들이는 일도 자신의 니즈에 맞게 딜(?)을 성공시키며 윈윈하게 된다. 또한 소용이가 결국은 죽음을 선택하고 숨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된 모든 사람들(철종과 아버지 문근 포함)에게 그녀를 대신해서 고통을 배로 돌려준다. 나중에 돌아온 소용이가 대왕대비에게 그 굴욕의 대사 "죽어도 궁에서 죽으세요!" 를 돌려줄 때의 카타르시스란.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정치적 이유로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남편(철종)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장면이었다. 죽이려고 한 이유가 있음을 암시하며 항변하자 그녀는, 그런 이유는 다 필요없고 니가 나를 죽이려던 이유는 딱 하나, 쉽게 죽일수 있으니까! 내가 너보다 약하니까! 라고 사자후를 내뿜는다. 유서를 수놓고 자살까지 하려던 소용이를 이해하기 위해 애썼으며, 그 애씀의 결과는 그녀의 입장이 되면서, 그러면서도 제3자로서 그녀를 대변한 시원시원한 외침이었다. 봉환의 뒤에 꼭꼭 숨어있던 소용의 영혼이 그를 봤더라면 크게 위로받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 그의 노력이 단순히 사람을 이해해보겠다는 것보다는 자신이 돌아가기 위함이긴 했다. 어쨌든 결론적으론 그녀를 대변했으니까.)
장봉환은 애초에는 지독한 개인주의자였다.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고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거만한 완벽주의자. 누군가 CCTV를 고장낸 것을 짐작하고도 묵인한다. 그러나 골때리는 구석이 있지만 미워할수 없다고 누군가 장봉환을 빗대 말하는데 딱 그런 사람이다. 그렇게 처음부터 인간애가 넘치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그런 그를 변화하게 만든 건 순수한 애정과 걱정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대해 준 사람들이었다. 소용을 죽이려고 했던 철종은 그녀를 한 인간으로서 진심으로 이해해보겠다고 하고 마음을 다해 대한다. 그리고 김소용을 어릴 때부터 돌봐 온 홍연이와 늘 든든하게 보좌해온 최상궁, 그리고 딸바보 아빠인 문근, 그녀만을 연모해 온 사촌 병인도 있다. 물론 가장 영향을 준 건 철종이다. 철종은 역사책에서 나왔던 혹평과 달리 백성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나름의 생각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 드라마는 픽션이다) 그의 진심에 장봉환의 마음도 김소용처럼 움직인다. (김소용은 철종을 연모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관습에 얽매여 운신의 폭이 좁았던 "그들"과 너무도 다른 선택과 행동을 보여주는 "그"가 매순간 신선하고 궁금했다. 화를 낼 상황에 또박또박 제 할 말을 다 하며 성질을 내는 그모습이 얼마나 시원시원하던지. 나도 모르게 대리만족하고 있었다. 너무도 인간적이고, 또 너무도 유쾌하고, 너무도 자유분방한 영혼의 소유자.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이 매력적이었다. 그런 그의 자유로운 모습이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자유인으로서의 나 자신을 깨우는 듯 했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아니라 대한조선인 장봉환이랄까. 장봉환 아니 더 나아가 장소봉으로 변모해 역사의 한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고 현대로 돌아온 그의 선택은 예전과 달라졌을까? 달라졌다. 그럼, 그를 둘러싼 세상은 어떨까?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그게 현실이니까. 하지만 그의 선택이 달라짐으로 인한 약간의 변화는 있었다. "그의 세상"이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깨달은 중요한 한가지. 우리 삶에 펼쳐진 의도치 않은 변화 앞에서 좌절해 있기만 하면 저절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울부짖기도 하고 마음껏 화를 낼 수도 있지만 그것뿐이라면 내 인생은 정말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게 된다. 변화에 적응해야하는 약자의 입장에서 방향키를 자신의 페이스로 가지고 와 성큼성큼 변화를 주도하며 걷는 주인공이 된 그의 모습에서 나는 살아갈 용기를 다시 얻었다. 그래. 난 엘리베이터도 무섭고 비행기도 무섭고 그런 삶에 지쳐 쓰러져 있지만 그렇게만 살기엔 내 삶은 아직 너무 젊고 아깝다. 두달동안 매주 두 회씩 보면서도 예측이 안되는 그녀의 거침없는 행보와 벌어질 전개를 기다리며 나는 그 에너지에 전염되어갔다. 이게 드라마의 힘이구나. 나는 다시 힘을 내볼 용기가 생겼다. 끝도 없이 두려웠던 모든 것들을 한번 다시 엎어보고 싶어졌다. 혹자에겐 저 드라마가 어떤 의미였는지 모르지만 내게는 은인같은 드라마다. 어린 코끼리한테 채워져있던 발목수갑을 채워놓았다 나중에는 풀어주어도 그 반경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실험처럼 어딘가 매인것처럼 살아 온 내게 실은 움직일 수 있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보여준 그런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