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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자 Jun 23. 2024

애써주는 마음


시간이 갈수록 사람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나조차 완벽하지 않은 인간인데 타인에게 만족을 바란다는 것이 모순적이지 않나?

그래서 난 사람들에게 실망하게 되는 순간을 발판 삼아 나를 바꾸곤 했다.

이 마음에서 가장 큰 문제는 나라고 생각했으니까.  


이간질로 인해 혼자 남겨진 일을 겪은 이후에 숨죽이고 친구들이 하자는 일에 다 맞춰주기도 했고 

다 맞춰줘서 오히려 호구처럼 보였던 일 이후엔 생각을 정확하게 말하며 나를 지켜보기도 했다. 

그때, 내가 원했던 건 원만한 관계였다. 

사소한 걸로 틀어지지 않고 신뢰감 있게 오래오래 갈 수 있는 관계를 한 번은 가져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껏 가지지 못했다. 모든 관계의 끝은 혼자였다. 


혼자가 되는 상황은 

내가 관계를 참지 못하고 선택한 경우도 있었고 나도 모르게 튕겨져 나가게 되면서 덩그러니 놓이게 될 때도 있었다. 어떻게 혼자가 되든 간에 내가 그 속에 느낀 공통된 감정을 말하자면 숨 막히는 불편감이었다. 


내가 온전한 나로 보여줬다고 느낄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불편감을 느꼈으니 이 감정을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었다. 

그 불편감은 "타인이 '나'라는 사람을 당연하게 느끼고 있음"을 내가 체감할 때 커졌다.


20대 초반, 일찍 일을 시작한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회사에 있는 시간 동안엔 잠깐 연락이 되었고 퇴근 이후엔 전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시시콜콜한 이야기 속 연락두절은 참을 수 있었으나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매번 늦는 연락은 참을 수 없었다. 그때마다 친구는 회사 끝나면 쉬고 싶다며 학생인 네가 당연히 양해해줘야지 라며 말했었다. 

몇 번의 말싸움 끝에 나는 그저 참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었다. 그 관계를 무너트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 있던 의문 중 하나는 나를 만날 때, 어김없이 휴대폰을 항상 하고 있었단 사실이다. 


이후에도 이런 일들은 수없이 많았다. 

회사 다니는 친구들에겐 프리랜서인 내가 항상 자신들을 이해해줘야 한다는 마인드가 깔려있었다. 

자신의 고민상담이나 궁금증에 대한 연락은 칼같이 내게 보내고 칼같이 답변해주길 원하면서 

정작 내가 하는 고민상담이나 궁금증은 소리 소문 없이 하루이틀이 지나가곤 한다.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약속을 잡는 일에서 그들은 항상 굼떴다. 


난 매번 기다리는데 그들은 그저 나를 챗봇 심심이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러한 일들로 상대들과 여러 번 다툰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듣는 말은 그런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또 이 마음을 가진 내 잘못이 된다. 

언제나 나는 일하는 사람을 쪼으고 그들의 마음을 곡해한 사람이 되었다. 


관계가 길어질수록 나를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상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이미 나는 이런 마음을 느꼈고 그로 인해 혼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낱같은 줄을 잡고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또 나란 사람이라서 그냥 사과하고 말아 버린다. 곡해해서 미안하다고. 내 마음 한편엔 곡해 한 사람이 상대인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떠한 관계에서는 관계를 깨트리기 싫은 마음에 상대의 마음을 먼저 읽은 후 원하는 대답을 해줬다.

그러자 상대는 칼같이 그러자 라던지 네가 그렇다면 그렇게 하자 라는 말을 했다. 

난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상대 입에서 나오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헤어지고 싶은데 헤어지자고 말하지 않으면서 상대를 피 말리게 만들어 기어코 상대가 그 말을 하게 만드는 그런 족속의 사람들. 


마음을 이야기해도, 하지 않아도 '혼자'가 되어버리는 내 마음을 보며 

나는 상대에게 그리 오래 이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인가?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한다.

그러다 모든 관계의 끝에서 피 말려 버리는 것은 나였다. 


그 마음이 너무 오래되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기분 나쁘지만 나쁘지 않은 척, 괜찮지 않지만 괜찮지 않은 척하며 보낸 계절들이 매번 돌고 돌며 무한대를 그린다.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관계에 지쳐있었다.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오래도록 겉과 속이 같은, 솔직한 사람을 원했다. 의중을 파악하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람과 관계를 말이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말하는 그런 사람들. 


최근 일을 하는 두 친구가 연락 중간중간 "잠시 두 시간 공부하고 올게." "누가 부른다. 잠시 갔다 올게." 라며 상황을 말해주고 약속 당일에 상세한 도착 시간을 보내주는 일이 있었다. 

내가 항상 원했지만 받아 보지 못했던 것들. 

괜스레 바쁜데 괜히 하고 있는 걸까 봐 덜컥 겁이 나 물어봤었다. 바쁘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자 한 친구는 20대 때 했던 일들을 청산하는 과정이라며 전에 그러지 않았던 자신으로 인해 깨진 수많은 관계를 청산하고자 바꾸고 있는 중이란 말을 했고 

한 친구는 부장님이 부르셨을 때, 저 카톡 하나 정도 보내는 거 어려운 일 아니라며 오히려 말 안 하고 가서 상대를 기다리게 하는 게 더 별로인 일이라고 말했다. 


비로소 깨달은 것은 이제껏 관계에서 원했던 것은 '존중'이었다.

관계가 1달이 되었든 10년이 되었든 너는 나에게 당연한 존재가 아니라고. 

서로 노력하고 존중하며 끌고 나가야 하는 것이 관계라고.

나와의 관계는 1이지만 상대와의 관계는 2이지 않은가. 

즉, 상대와의 관계가 평안하고 안정이 되려면 나만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도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이제껏 난 나와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사람과 길게 무언가를 끌고 가려고 했었다. 

물론, 그러한 관계를 지금도 끌고 싶기도 하다. 나에겐 소중하니까. 하지만 상대에겐 내가 소중하지 않았던 것 같다. 


클레임을 걸었을 때, 영업사원이 얼마나 귀 기울여 들어주고 해결해 주려 노력하는지를 본다는 글을 보았다.

역설적이게도, 실제로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아도 "애써주는 모습"자체를 높게 평가한다는 뜻인데 

나 또한 관계에 애써주는 사람을 인연으로 가져가고 싶었다. 

그렇기에 모든 관계에 나는 애써왔다고 생각한다. 

애쓰는 나는 여전히 존재하고 지금도 그러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언제나 애쓰지 않을 것이다. 

나도 상대를 당신을 언제든 떠나갈 수 있음을 꼭 알았으면 좋겠다. 난 당연하지 않으니까. 




오랫동안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해 오던 것들 중 하나가 '사람과의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나를 둘러싼 관계 속에서 내 잘못은 없다는 생각에 가닿았습니다. 

상대가 나를 버린 동안 나는 많이 마음 쓰고 애썼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솔직하지 않음에도 솔직한 척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가려 하다 보니 

저 또한 솔직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부턴 솔직한 사람들에게 저 또한 솔직함을 애써서  평온한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한 인연들과 오래오래 이어가 보고 싶단 것이 요즘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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