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두 시간 넘게 썼는데... 로그인 안 한 죄로 다 날아가서
분노 탑재 후 기억을 더듬어 다시 타이핑하는 점...
글 속에 분노가 있을 수 있다는 점 참고 하십시오...
보통 주제를 들으면 바로 떠오르는 생각이 있는데
"절대 참을 수 없는 것"이란 주제는 번득 드는 생각이 없었다.
오랜 시간 앓고 난 후, 다시 책상에 앉아 생각해 보니
"참을 수 없는 것"은 매우 많으나 그것을 매번 참고 살고 있기에 번득 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참고 있는 것들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나는 "빈 말"을 싫어한다.
어렸을 때부터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적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매번 약속을 정하려는 연락을 하곤 했고
그럴 때마다 떨떠름한 사람들의 태도를 마주하곤 했다.
그들은 말은 그렇게 내뱉었지만 정작 나와 밥을 먹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이가 들고 그 말이 흔히 하는 인사치레라는 것을 깨달은 후엔
빈말하는 사람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곤 있지만
나 자신은 절대 누군가에게 빈말로 "밥 한 번 먹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와 똑같이 빈말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배우가 "금쪽상담소"에 나온 적이 있다.
오은영 박사는 그녀에게 "사는 게 참 힘들겠다며 정직함이 너무 지나치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왜 빈말을 남발하고 명확하게 말하지 않은 사람을 잘못이라 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을 융통성 없고, 눈치 없는, 바보로 치부하는 걸까?
"배려"도 마찬가지다.
상경한 친구와 "배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배려"란 상대방을 불편하지 않게 도와주고 마음 쓰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불편하게 해 놓고 그것을 "배려"라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예를 들어, 길을 같이 걷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방이 나에게 "더 걸을 거야?"라고 물어본다.
나는 더 걷고 싶어서 "응 더 걸으려고" 라며 말한다.
그러자 상대방은 떨떠름하게 "그래. 네가 더 걷고 싶다고 하니까 걸을게."라고 말한다.
친구와 나는 "그래 걷자."라고 하는 것이 아닌 "너 때문에"라는 뉘앙스를 주는 것 자체가 배려가 아니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너를 위해한 배려니까 자신을 좋게 생각할 거라 생각한다고.
"빈 말"과 눈치 보이는 "배려"는 마음속에선 참을 수 없는 지점이지만
참지 않고 불편하다고 내뱉는 순간, 나는 나쁜 사람인 바보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침묵을 택했다.
그 상황에서 불편한 사람은 나 하나로 끝내고 싶기 때문이다.
해당배우가 나온 "금쪽상담소"편을 자주 보곤 합니다.
그녀가 저와 같아 보여서입니다.
오은영박사는 해당배우에게 "경험이 부족해서"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해당 배우는 진단을 듣고 안심된다며 경험하면 해결되는 것이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경험"만 하면 다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험"까지는 나의 힘으로 하는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경험을 통해 받는 생각과 상처에 대해 객관적으로 해석해 줄 만한 사람이 옆에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죠.
그래서 요즘 제가 관심 가지고 있는 문장은 <혼자 지내고 싶고 혼자 있기는 싫고>입니다.
이런 고민에 백이면 백, 사람이 옆에 있다고 해서 외로움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연자 씨는 지금도 괜찮아요. 연자 씨는 혼자 잘 지내잖아요. 혼자서도 잘하실 거예요."라는 말들도 따라오죠. 그러나 그 말을 하는 사람 백이면 백, 옆에 동반자가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치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하는 조언같이 느껴져 듣기 거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조언하는 자에게 대꾸하는 것 또한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기에 저는 침묵을 택합니다.
혼자 잘 지낸다는 것, 혼자서도 잘하실 거라는 것은 당신이 본 나의 모습이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기에 고민인 것인데...
사람들은 상대의 고민을 자신의 시각에 대입해서 고민하곤 합니다.
이것 또한 참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최근 다양성에 관한 영화 한 편을 보았습니다.
오랜 기간 개봉만을 기다렸던 영화인데요.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극 중 한 주인공인 한 대사가 있습니다.
"저는 늘 지구에 유학 온 기분이에요."
저 또한 그렇습니다.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기는커녕
계속해서 갓 유학 와서 긴장해 있는 사람 처럼 느껴집니다.
영화의 결말은 "연대" 였는데요.
내가 "연대"라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하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참을 수 없는 것들은 많으나
참고 있었던 이유는 "연대"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이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들 때, 비로소 진심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기에
꾹 참고 있는 이유는 이해를 받아본 경험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참을 수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하며 참고 사는 인생을 돌아봤습니다.
저는 매사에 진심이라 늘 상처받습니다.
그러면 매사 진심을 빼면 덜 상처받을 텐데 아이러니하게 진심이 아닌 순간은 싫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매사에 진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러기엔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조언들이 "혼자서도 잘하기"를 중점으로 이야기하는데
정말 혼자서 세상을 살 수 있는지가 의문입니다.
"연대"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