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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자 May 19. 2024

보여줄게 아주 조금

달라진 나



원체 내향적이고 낯가림이 심해 말수가 적었던 나는 서울상경과 동시에 말을 잃었다. 

일주일 내내 말하지 않은 날도 많았고 

서울살이에 상처가 하나씩 쌓이고 

몇 되지 않았던 친구들도 멀어지고 사라지면서 사람도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되었다.

근 몇 년간 어두웠던 나는 다크 해졌다. 

나도 맑은 날씨처럼 맑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점점 다크 해지고 거기서 벗어나질 못하는 나를 내가 바라보며  

'내가 이래서... 곁에 두고 싶지 않은 인간이라 다들 날 버렸나..?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어떡해. 이게 난데.'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렇게 평생 살 것 같았던 난 요즘 조금 바뀌었다. 용기 내서 하나하나 도전 중이다.

그중 하나의 도전을 적어볼까 한다. 


바로, 클라이밍 크루에 가입했다. 

사실 낯선 사람들과 모임을 가진다는 게... 그런 모임에 I 99퍼센트인 내가 자발적으로 들어간다는 게 

내 딴에 선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게 된 계기가 있다. 


올 초부터 클라이밍을 쫌쫌따리 시작하면서 같이 하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클라이밍은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운동이지만

매번 혼자 하다 보니 사람 많은 암장에서 외로워지는 순간이 더러 찾아오기도 했고  

같이 문제를 풀면서 할 사람 한 명 정도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맘 때에 암장의 모르는 한 분께서 나에게 수업을 한 번 받아보시는 걸 추천하셨다.

이유는 키가 작아서 낮은 레벨에서도 기술이 어느 정도 필요하실 것 같은데 

너무 정석으로 올라가고 있으니 저 문제가 안 풀리는 거라며 

수업받으면 엄청 빨리 실력이 늘 거라고 조언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 암장들을 검색하던 중 한 암장에 수업등록을 했다.

기술도 배우고 수업 같이 듣는 분들과 친구도 돼서 가끔 암장에서 같이 하면 재미있겠다가 나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와 수업 듣는 이들은.... 수업에 잘 나오지 않았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수업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수업 듣는 암장에서도 나는 항상 혼자였다. 


수업 끝나는 시간대가 사람이 몰리는 시간대인데 

그 시간대에는 항상 삼삼오오 모여서 하는 팀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 팀들 사이에서 내가 벽에 붙으면 간혹 응원 못 받는 순간들이 생기고 

문제에 실패했을 때의 그... 적막이 내향인인 나에겐 좀 힘들었다. 

그 와중에 내가 실패한 문제만 따라 풀면서 '쉬운데?' 라며 말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고 

그럴 때마다 자존심이 상해서 외로움이 가중되었다. 

그래서 같이 클라이밍 할 친구가 절실해졌고 그렇게 크루에 가입하게 된 것이다. 


첫 번개에 참석하러 가던 날이 생각난다. 

사실 전날, 클라이밍 하다가 손바닥의 스킨이 심하게 나가서 붕대를 감게 되었다. 

처음인데 잘 못하는 모습을 보여줄까 두려웠고

모르는 사람과의 대면이 두려워서 가기 직전까지 '그냥 가지 말까?'를 수백 번 고민한 것 같다. 

이 모든 생각들은 

모든 관계와 상황에서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오래도록 내가 느껴왔기에 

이런 모임에서 조차 '증명'에 포커스가 맞춰진 것이다. 

그렇게 두려움을 안고.. 암장에 들어갔을 땐.. 진짜 너무 즐거웠다. 

그곳엔 못하는 나를 반겨주고 내가 못하는 문제도 뒤에서 열심히 알려주는 크루원들이 존재했다. 

크루원들 덕분에 나의 레벨 보다 더 높은 레벨의 문제도 풀 수 있었다. 

계속해서 "너는 이런 걸 잘하고, 저런 걸 잘하고, 요건 좀 부족하지만 이렇게 하면 충분히 할 수 있어." 

라는 말을 듣고 있으니 순간적으로 울컥했다. 

그냥 인생의 전반에서 내가 (가족을 제외하고) 칭찬이란 걸 들어본 적이 있나? 

이렇게 온 맘 다해서 해주는 칭찬을 얼마 만에 들어본 거지? 


그렇게 첫 번개가 마무리되고 크루원들과 간단하게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곳에도 또 한 번 충격을 먹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직업이 있구나. 


예대를 나오고 하는 일도 예술이다 보니 내 곁엔 전부 그런 사람들 밖에 없었다.  

예술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혐오에 빠져있는지.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에 욕을 하고 비참해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알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란 생각을 한다. 

그 자기혐오는 수많은 타인을 통해 '증명'이란 허울 좋은 단어로 포장된 부정적 단어와 실패의 축적 산물이기 때문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을 이해하고 잘 알면서도 가끔은 나조차 버거울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곳엔 나와 다른 영역에서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순간, 내가 정말 작은 세상에서 살고 있구나를 몸소 알게도 되었지.  


나는 나와 다른 바운더리의 사람들을 통해 

다크 한 검고 작은 동그라미에서 벗어나 하얗기도 노랗기도 한 다양한 세상과 사람들을 본다. 

그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 

오랜만에 그날 이 생각났다. 


서울살이 첫 해, 너무 힘들어서 산책길을 걷다 걷다 캔맥주를 마시고 벤치에 누웠던 그날. 

그날 보였던 달을 누군가와 같이 보고 싶은데 그럴 사람이 없다는 것에 쳐져있던 마음.

괜스레 날씨는 또 좋아서 짜증 때문에 눈물을 훔쳤던 그날. 


비슷한 날씨인데 마음이 조금 다르구나.

나도 바뀔 수 있구나.

맑은 사람으로. 

내 서울살이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이왕 사는 거 맑간 사람으로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다고 느꼈다. 




이제까지 번개는 두 번 참석했습니다. 

아직도 저는 그들 사이에서 쭈뼛대고 말수가 굉장히 적습니다. 


밥 먹던 도중 한 명은 저에게 

"말 안 하고 듣기만 해도 즐거워하는구나?"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날 나도 모르게 계속 웃고 있었나 봅니다. 


내향형 인간의 눈으로 보기엔 이곳은 

E가 90퍼센트인 인간들만 모여있는 집단 같습니다. 

그래서 내향형 중의 탑 내향형인 저는 기가 항상 빨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참 재미있고 신기합니다.

그들도 저를 그렇게 느끼겠지요? 


이번 관계는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이 즐거우면 되는 거란 생각도 듭니다. 


아, 다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라 

저 또한 그들과 맞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글... 써야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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