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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자 Mar 09. 2024

새해의 약속

To. 너에게 From. 내가 


흐리던 날이었다. 

책상에 앉아 멍한 표정으로 창밖만 보던 날이었다. 

작업이 잘 되지 않는 나날.

가보고 싶었지만 오래도록 순위에 밀려 가지 못한 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편지가게. 

모르는 이와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있는 곳. 


울적한 마음을 애써 감추려는 듯한 문장을 연필로 꾹꾹 눌러쓰곤 집으로 곧장 돌아왔다. 

자기 전 까지 내가 쓴 편지가 생각 났다. 

가져온 다른 이의 편지도 마음에 들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의 편지가 왜 그리 사무치던지. 


익명을 벗삼아 못다한 말을 눌러쓰게 되는 이 정성스런 매개체가 퍽이나 마음에 들었나보다. 

이후, 편지를 자주 쓰게 되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장이 없고 

일신상의 문제가 크게 생기며 나는 다시 생기를 잃어갈 때 쯤, 편지가게에선 새해 편지쓰기 이벤트가 열렸다. 


다들 타인에게 보내던 때에 나는 나에게 보냈다. 

그 편지는 경칩이 지나면 받는 이에게 보내진다고 했었다.

그렇게 경칩이 지나고 생각지도 못하고 있을 때, 덜컥 편지가 도착했다. 


너의 봄은 어떨지

머릿속 고민은 해결 되었는지 

미팅과 잘 되었는지 


나는 나를 많이 궁금해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쓰고 있어야 해. 

드라마를 쓰고 있어야 해. 

적고 있지 않다면 넌 죽음이야.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어야 하고 

살도 빼고 있어야 해. 

모든 것들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어야 해. 

그렇지 않다면 너 자신을 꼭 돌아봐. 


무엇보다 명심해야할 것들을 읊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하고 있어야 해. 


사실 이 편지를 적을 때, 나는 이 모든 것들을 봄에 전혀 하고 있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하고 있지 않을 나에게 상기시키려 적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이 모든 걸 하고 있다. 

느릿하지만 정성스럽게 

아주 작지만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예전의 나라면 못했을 것 같은데...

이 작고 충만한 원동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편지를 읽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내 행복을 빌어서 인가봐.

무엇보다 행복하고 있어야 해서 

행복 찾아 가다보니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가봐. 


편지를 읽고 안도감이 들었다.  

분명 적을 땐, 자신을 뒤돌아보며 풀 죽고 다시 시작하는 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봄 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몇 년 간의 묵은 때를 버리고 새롭게! 

농부가 씨앗 뿌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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