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너에게 From. 내가
흐리던 날이었다.
책상에 앉아 멍한 표정으로 창밖만 보던 날이었다.
작업이 잘 되지 않는 나날.
가보고 싶었지만 오래도록 순위에 밀려 가지 못한 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편지가게.
모르는 이와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있는 곳.
울적한 마음을 애써 감추려는 듯한 문장을 연필로 꾹꾹 눌러쓰곤 집으로 곧장 돌아왔다.
자기 전 까지 내가 쓴 편지가 생각 났다.
가져온 다른 이의 편지도 마음에 들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의 편지가 왜 그리 사무치던지.
익명을 벗삼아 못다한 말을 눌러쓰게 되는 이 정성스런 매개체가 퍽이나 마음에 들었나보다.
이후, 편지를 자주 쓰게 되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장이 없고
일신상의 문제가 크게 생기며 나는 다시 생기를 잃어갈 때 쯤, 편지가게에선 새해 편지쓰기 이벤트가 열렸다.
다들 타인에게 보내던 때에 나는 나에게 보냈다.
그 편지는 경칩이 지나면 받는 이에게 보내진다고 했었다.
그렇게 경칩이 지나고 생각지도 못하고 있을 때, 덜컥 편지가 도착했다.
너의 봄은 어떨지
머릿속 고민은 해결 되었는지
미팅과 잘 되었는지
나는 나를 많이 궁금해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쓰고 있어야 해.
드라마를 쓰고 있어야 해.
적고 있지 않다면 넌 죽음이야.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어야 하고
살도 빼고 있어야 해.
모든 것들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어야 해.
그렇지 않다면 너 자신을 꼭 돌아봐.
무엇보다 명심해야할 것들을 읊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하고 있어야 해.
사실 이 편지를 적을 때, 나는 이 모든 것들을 봄에 전혀 하고 있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하고 있지 않을 나에게 상기시키려 적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이 모든 걸 하고 있다.
느릿하지만 정성스럽게
아주 작지만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예전의 나라면 못했을 것 같은데...
이 작고 충만한 원동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편지를 읽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내 행복을 빌어서 인가봐.
무엇보다 행복하고 있어야 해서
행복 찾아 가다보니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가봐.
편지를 읽고 안도감이 들었다.
분명 적을 땐, 자신을 뒤돌아보며 풀 죽고 다시 시작하는 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봄 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몇 년 간의 묵은 때를 버리고 새롭게!
농부가 씨앗 뿌리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