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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펭부인 Sep 01. 2023

너의 이름은

주 6일, 동네내과로 출근합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오늘도 출근해서 가장 많이 외친 말 중 하나이다. 병원에 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접수인데, 이 접수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환자확인으로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



  

수년간 한 달에 한번 고혈압, 당뇨 등으로 이 병원에 정기적으로 방문하시는 분들은 당연히 본인의 이름을 알겠거니 말해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멀뚱멀뚱 나의 이름을 어련히 알아서 접수까지 해주기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은 이제 이 동네내과에서 2개월 차 다 돼가는 새삥 간호사에겐 너무 어려운 미션이 아닐 수 없었다.




 이름을 행여 말씀해 주신다 해도 한 번에 알아듣기 어려운 법. 성함을 한번 더 여쭙는 것도 참 죄송한 부분이다. '한 번에 못 알아들어서 무척 죄송합니다'라는 표정을 얼굴에 띄운 채 오늘도 한번 더 여쭈어본다. 어느가 식당처럼 키오스크로 병원 접수도 했으면 싶은데 나이 많은 원장님께서 이런 신문물을 도입해 주실리 만무하다는 점이 참 아쉬울 뿐이다.




 어떤 분들은 본인의 이름을 알 때까지 말 안 하고 그냥 서있기도 한다. 어지간하면 서로 민망해서 말해줄 법도 한데 앞에서 스무고개 하듯 기다리면 에어컨 아래서도 식은땀이 절로 난다. '진짜 그런 분이 있나' 싶겠지만 실화이다.




 동네내과에서 일한 지 3개월 가까이 되어가면서 나도 내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기에, 이런 몇 분에 한해서는 특별히 간략한 인상착의와 이름을 포스트잇에 적어두고 접수할 때 참고하기도 한다. 전에는 새로 들어온 간호사인 나를 두고 적잖이 거리를 두시는 어르신들도 이제 성함을 외워두고 알아주니 친근하게 대해주신다.




 동네내과의원에서 일하는 건 처음이기에 60-80대 어르신들을 전에는 많이 접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상대하는 법을 잘 몰랐다. 지금도 물론 배워가는 과정이지만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해 주고 알아주는 것만으로 어른들은 친밀감을 느끼고 고마워한다. 이런 상황에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가 절로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는 구절이 오늘따라 더 마음에 와닿는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에서는 누군가를 잊지 않고 인연을 지켜나가는 힘이 바로 이름이었다. 이름 석자가 주는 그 상당한 상징. 오늘도 나는 우리 동네내과를 찾아주는 분들과 좋은 인연을 맺기 위해 성함 외우는데 고군분투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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