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만들지 않은 쿠키.
나는 뭔가를 만들어 선물하는 걸 참 좋아한다. 대개는 목공이라던지, 요리라던지, 뭘 해도 곧잘 하는 편인데 가끔은 어이 없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티백을 만드는 데 취미를 붙였던 때가 있었다. 맛이 좋다는 차들을 골라서 티백을 만들고 꼼꼼히 실링에 바느질까지 해서 티백을 만드는 것이다. 선물하기에도 참 좋았다. 몇 번 만들다 보니 자신도 생겼다. 진한 맛과 향을 좋아하니 아낌없이 찻잎을 넣은 티백을 만들어 여기저기 나눴다.
그러다, 내게 참 잘 해주시는 어른께 티백을 선물하고 싶어졌다. 어른이시니만큼, 손님 대접에도 쓸 수 있도록 좀 더 좋은 것을 드리고 싶어서, 꽤나 급이 높다는 용정차를 알음알음으로 구했다. 이번에도 정성을 들여 티백을 만들고 포장해서 어른께 선물로 드리고 나니, 만드는 데에만 너무 열중해서 막상 그 좋다는 차를 나는 한 모금도 못 마셔본 게 생각났다.
티팟에 찻잎을 조금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잠시 우러나는 동안 한눈을 팔고 있었는데, 정말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기겁을 했다. 나는 철저히 비-녹차 주의자여서, 녹차의 찻잎이라는 게 그렇게 무시무시한 기세로 불어나는 것인 줄 몰랐다. 불린 미역같은 녹차가 스스로 티팟의 뚜껑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모습은 무슨 외계 생명체를 보는 듯 생경한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녹차가 우러난 물은 녹색이라기보다는 검어 보일 지경이었고, 맛과 향은 진하다 못해 녹차나무를 빨아먹는 듯한 느낌이었다. 녹차의 습격을 받아 죽어가는 티팟을 살리다가 아차, 선물한 티백에 꽉꽉 채운 녹차가 떠올랐다. 서둘러 그 댁 따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어 다급하게 외쳤다.
"녹차에 물 붓지 마!"
이미 늦었다고 했다. 온 가족이 모여 티백이 만삭 임산부처럼 부풀어오르다가 결국에는 폭발하는 신비한 광경을 지켜보았다고 했다. 어지러웠다. 어른께서 뭐라고 했느냐 물어보니, 어이쿠, 라고 하셨댔다.
얼마 후에 그 어른을 찾아 뵈었는데 그 차는 잘 마시고 있다고 하시며 나도 한 잔 내어 주셨다. 티백 하나로 대충 열 번 정도 마실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민망해 그저 웃었다.
어느 날인가 내가 선물을 받은 적도 있다. 직접 만든 쿠키라며 작은 봉투에 예쁘게 소분하여 포장한 쿠키를 받았다. 크리스마스였던가, 내 생일이었던가.
나는 쿠키를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당연히 고맙다고 말하고 봉투를 열었다. 온갖 취미가 다 있지만 베이킹에는 문외한인 나는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 얘, 이런 재주가 있었나? 레몬 청이니 수제 빼빼로니 만드는 걸 본 적은 있지만 이건 정말 잘 만들었는걸. 동그랗고, 네모낳고, 물결 무늬가 있고. 시쳇말로 파는 것마냥 고운 모양이었다. 한 입 먹어보니 또 어찌나 부드럽고 고소하고 바삭하던지.
그리고 몇 년 후에 전혀 다른 사람에게서 틴캔에 든 쿠키 한 통을 선물받았는데, 글쎄 그 맛이며 모양이 여간 똑같은 게 아니었다. 먹으면 먹을 수록 웃음이 나왔다. 쿠키 레시피가, 쿠키 틀이, 그게 그거지 할 정도의 유사성이 아니었다. 이건 정확히 그 쿠키였다. 미각을 잃었대도 맞출 수 있을 만큼 확실히 그 것이었다.
당연히 속은 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쿠키는 줘야겠고, 아마 직접 만든 게 영 잘 안 된 모양이니. 그 어른이 생각났다. 그 어른도 아마 제법 재밌는 에피소드로 그 녹차 폭탄을 기억하겠지. 그리고 마음이 예뻤다, 기억해 주실 것이다. 어느덧 멀어져 그 어른이고 그 친구고 더는 만나지 않는 사이가 되었지만 나는 지금도 쿠키와 녹차를 보면 내가 준 녹차폭탄을 은근히 재밌어하시던 어른과, 공장에서 만든 수제쿠키를 선물한 친구를 떠올리며 혼자 조금 웃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