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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모래 May 19. 2023

당신의 마음이 내 허영을 씻는다

향수 선물을 받았다

나는 허영 덩어리이다. 통장에 있는 전 재산보다 비싼 지갑을 좋아하고, 음향이다 카메라다 하는 비싼 취미들에 향수와 시계, 신발까지 모으는 물욕의 화신이다. 더구나 나는 냄새에 엄청나게 예민한 편이어서 특히 향수에는 확고한 취향이 있다. 나는 바이레도의 직설적인 향을 좋아하는데, 발다프리크와 블랑쉬를 쓴다. 로즈 오브 노 맨즈 랜드나 모하비고스트를 뿌린 사람에게 엄청난 호감을 느낀다.


얼마 전 생일을 맞았다.


아침 일찍 출근을 했다가, 야간대학원 수업까지 듣고 들어오는 날이라 사실 생일은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 점심시간에는 사무실 의자에 기대어 잠들고, 저녁에는 수업 들어가기 전 짧은 시간에 허겁지겁 대충 밥을 먹은 날. 내 생일이라 기쁘다는 생각보다는 어서 집에 가서 쉬어야 내일 출근에 지장이 없겠다 싶던 날.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후배가 날 불렀다. 늦게라도 잠깐 보자고.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 후배는 가장 좋아한다. 만나자는 말에 피로가 씻겼다. 연애의 발명이란 노래 가사에 나오듯이,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면 다소 강아지처럼 변하는 것 같다. 시들시들하게 누워 있다가도 금방 귀가 쫑긋 서고 꼬리를 살랑대게 되는 것이다.


수업까지 끝나고 후배를 만났을 때는 이미 밤이 깊었다. 어디 들어가 있을 만한 곳도 없어서 커피를 사서 한강 공원으로 갔다. 후배는 손에 꾸러미 두 개를 들고 있었는데 하나는 내 선물이었겠고, 다른 하나는 레터링 케익이었다. 나는 가끔 놀랍도록 둔해서 그게 케익이란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강바람을 옷으로 막아가며 불을 붙이고, 초를 불고, 선물을 받았다. 선물은 후배가 공방에 가서 만든 향수였다. 향을 맡아보고 나는 잠깐, 정말로 말을 잃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게 내가 좋아하는 향이었다. 적당히 우디하고, 적당히 달콤한. 뭣보다 내게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향이었다.


그 애가 생각하는 내게 어울리는 향과, 내가 가끔 좋다고 말했던 냄새에 대한 기억과, 그 애가 좋아하는 향을 섞어 만든, 그런 향수였다. 그 향수에는 하루종일 케익에 향수공방을 다닌다고 돌아다녔던 그 수고의 향도 있었다. 나는 향과, 그 향이 담은 마음에 한도 끝도 없이, 격렬하게, 반해버렸다.


그 이후로 단 한번도 다른 향수를 뿌리지 않았다.


어떤 향수를 뿌리든지, 그것들은 모두 나에게는 갑옷과 같았다. 바깥 세상으로 나가면서 내가 입는 전투복의 마지막 피스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 이름 없는 향수는,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다. 갑옷의 버클을 채우는 느낌이 아니라 작은 행복의 입자를 손목에 뿌리는 기분이다. 어디에 있든지, 내가 움직이며 이 향이 느껴질때는 비가 내린 후의 포근한 날씨와, 가로등 아래 그 애의 얼굴과, 그 애의 손의 온도와, 그 행복이 떠오른다.


내 허영은 내 마음의 공허함이다.

마음에 아무것도 없으니 비싼 향수와 비싼 취향으로 그것을 메우려던 것이다.


향수 두 펌프가, 그 향수에 담긴 마음이 내 허영을 씻는다. 내가 갑옷처럼 온 몸에 둘렀던 허영은 손목에서부터 녹아내린다. 단단하던 내 맘에도 느슨하고 부드러운 공간이 생긴다. 마침내 나는 그 향과 함께 녹아내리고, 다시 조금 더 좋은 사람으로 굳어진다. 나만 아는 행복이다. 나만 몰래 아는 사랑이다. 나만 아는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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