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 못지 않게, 심심찮게 멸종당했다고 얘기당하는 것이 로맨스다. 로맨스 소설이 멸종했고, 멜로 영화가 멸종했다. 로맨스가 멸종했다는 내용의 로맨스 소설이 나와 절판되었다.
그런데 세상에 로맨스가 멸종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정말 멸종한 것이 틀림 없다. 아무래도 나이가 조금 들었기 때문이리라. 결혼 적령기라는 나이는 계속해서 한 해 두 해 나를 기다리며 늦춰지고 있지만 나는 그조차 따라가지 않고 로맨스 투성이 이십대에 머물러 있다.
어느 날 누가 내게 물었는데, 이상형이 어떻게 되냐는 말에 나는 그런 건 없다고 대답했다. 아니 당연히 나도 취향이야 있다마는,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라고. 나는 단발머리보다 긴 머리를 좋아한다. 머리숱이 꽉 들어찬 사람을 귀여워한다. 똑부러진 사람을 좋아한다. 나는 내가 용가리 통뼈라 (이것도 이젠 옛날 사람들이나 쓰는 말이다) 뼈대가 가는 사람이 좋다. 내가 코가 크고 높은 편이라, 작고 몽실한 코를 가진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나와 다른 점이 있는 사람이 좋다. 나와 생각이 닮은 사람이 좋다.
그런데 다 중요하진 않다. 나는 멸종위기의 호모 로맨티쿠스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이상형이 된다. 호모 로맨티쿠스의 생태가 그렇다. 호모 로맨티쿠스라는 종은 이상형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볼 때 망설임 없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대는 종족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단발머리를 하면 단발머리를 긴 머리보다 좋아하는 것이고, 그 사람이 대머리면 대머리가 좋은 것이고, 그 사람이 맹-하면 맹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고, 뼈대가 굵든, 들창코든 왕코든, 나와 다른 생각을 하든, 뭐가 됐든, 그 사람이 나의 이상형인 것이다.
그러니까 호모 로맨티쿠스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변종이다. 사랑에 눈이 멀어 발생한 종족으로 별로 지혜롭지는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미권에서 쓰는 시쳇말로 'Head over heels in love'라고 하는데, 사랑에 대가리부터 꽂혔다는 뜻이다. 멧돼지를 함정에 빠트려도 보통은 다리부터 떨어지니까, 사랑에 대가리부터 꽂히는 이 불쌍한 종족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그러니까 멸종위기인 것이다. 아무래도 똘똘하고 영악하고 강한 개체들이 살아남기 마련이니까.
이십대까지 넘쳐나는 듯싶던 호모 로맨티쿠스들은 한 해씩 나이를 먹을 수록 빠르게 멸종된다. 어느 시점부터 호모 로맨티쿠스는 연애를 시작할 수가 없게 된다. 예전엔 사랑으로 됐던 것들이 이제는 미리 스크리닝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의 형태가 변했다.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봐야 할 면접들이 너무 많아졌다. 호모 로맨티쿠스는 이 과정을 거치며 비참해지고, 참담해지고, 마침내는 죽어버리고 만다. 조건에 맞는 사람을 잘 찾아서 적당히 좋아하고 어느 시점이 되면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호모 로맨티쿠스에게는 사랑이 아닌 것이다. 이 바보는 그냥 사랑이 하고 싶다.
그렇다고 이 바보들이 다 대단한 사랑을, 불을 가르고 파도를 뚫고 뭐 그런 것을, 원하는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개체의 차이는 있어 그런 하늘도 울고 땅도 우는 사랑을 원하는 이들도 있지만(이 개체들이 먼저 멸종한다), 나는 다른 것을 원한다. 어쩌면 훨씬 어려운 것이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을 때 네가 밥은 잘 먹는지 궁금하여 문자 하나를 보내는 것. 우연히 겹친 퇴근시간에 별다른 계획 없이 너를 만나 가볍게 저녁을 먹고 헤어지는 것. 네가 좋아하는 디저트가 있는 카페를 보곤 너와 같이 오겠다고 다짐하는 것. 네가 좋아하는 꽃을 보면 두어 송이 사서 선물하는 것. 너무 보고 싶을 때는 보고싶다고 말하는 것. 더운 여름, 에어컨을 틀고 이불 속에서 너를 안고 잠드는 것. 공항으로 너를 마중나가는 것. 네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먹는 것. 너에게 요리를 해주고 네가 앉고 누울 곳을 청소하는 것.
그리고 나에게도 그런 마음을 가져 줄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내 이상형은, 정말 내가 바라는 내 이상형은, 나와 동족인 것이다. 멸종을 앞둔 호모 로맨티쿠스 둘이 혼자 버티기에는 너무 냉랭한 이 세상을 함께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사랑에 서서히 빠지는 것을 바라는 이 로맨티코의 삼십대는 그래서 힘겹다. 어쩌면 만나기만 하면 서로 냄새를 맡는 강아지들마냥 킁킁대며 서로 탐색을 그 자리에서 끝내려고 하며, 왜 천천히 알아갈 기회는 점점 줄어드는지. 나는 내가 잘 모르는 것을 사랑할 수는 없는 사람인데 말이다.
이 글은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멍하니 구경하다가 썼다. 아침은 잘 보내고 있는지, 잘 잤는지. 많이 바쁜지. 왜 내 우선순위는 인스타보다 뒤로 밀렸는지 궁금해하다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