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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모래 Jul 14. 2023

요리가 늘었다

네가 머무는 시간만큼.

나는 원래 요리를 곧잘 하는 편이다. 사람이 요리를 잘 하게 되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요리에 타고난 재능이나 취미가 있을 수도 있다. 내 경우에는 생존을 위해서였다.


우리 아버지는 본인이 생각하기에 '요리를 잘하는' 멋진 가장이었다. 그런 생각과 모습은 정말이지 나쁘지 않은데, 문제는 이 사람의 입맛이 심각하게 맛탱이가 가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아마 극도로 제한적인 맛만 감지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식단은 푹 익은 열무김치나 무김치 국물에 밥을 자작하게 말아서, 그 시큼한 것을 입에 넣고 먹다가 두부나 계란 따위로 그것을 중화시키고, 다시 그 시큼한 것을 입에 넣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신 맛을 못 느끼는 병이 걸렸는지. 그건 새콤하다, 입맛이 돈다의 레벨을 아득하게 넘어선 것이었다.


그런 입맛을 가졌으니, 아버지가 만든 음식은 대개 그런 스타일이었다. 우선 김치찌개를 자주 끓이곤 했는데, 그 김치찌개의 레시피는 커다란 냄비에, 김치를 왕창 넣고, 물을 붓고, 물만큼 김치국물을 넣고, 참치 한 캔 두부 한 모를 넣고 뜨끈하게 끓인 것이었다. 뭐가 불만이냐고? 그 덜 끓은 김치찌개는 늘 그냥 따끈한 김치를 빨아먹는 맛이었다. 아침나절에 그 김치찌개를 먹고 나면 하루 종일 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그렇게 아침에 김치찌개를 먹고 나면 점심에는 된장찌개가 나왔다. 나는 필리핀에서 자랐는데, 대체 필리핀에서 어디서 무청을 그렇게 구해 오는지 어이가 없었다. 된장찌개의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커다란 냄비에 무청을 있는대로 넣고, 된장을 넣고, 두부 한 모를 넣고 뜨끈하게 끓이기. 언제나 화력에 비해 냄비가 큰 것도 문제였고, 무청이나 김치가 꽉 차 있는 것도 문제였다.


아, 한 가지 빠트렸는데 아버지는 기묘할 정도로 멸치육수를 좋아했다. 어릴 때 야식으로 왜 그렇게 멸치국수를 먹자고 했는지. 근데 그 멸치육수에 대한 사랑도 지나쳐서, 멸치가 온갖 쓴맛을 낼 때까지 그걸 끓였다. 더구나 필리핀에서 먹던 그 멸치는 극단적인 크기를 가지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은 왼손을 펴서 손을 보시라. 그 손 약지 정도 사이즈의 강력한 멸치이다. 우리 집에서 밥을 먹던 외국인 친구 하나가 국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멸치를 보고 "...what?"이라고 중얼거리던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게 앤쵸비라는 내 말에 그 친구는 앤쵸비는 새끼손톱보다 작은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집 식구들은 그 거대한 멸치(무청과 마찬가지로, 대체 어디서 구해오는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애초에 멸치가 맞긴 한지도 모른다.)를 드래곤이라고 불렀다.


저녁 메뉴는 자연스럽게 '김치된장찌개'나 '된장김치찌개'가 되었다. 아침에 남은 그것과 점심에 남은 그것이 한 냄비 속에서 교접하고 있는 음식이다. 더구나 우리 집은 음식을 남기면 안 되는 규칙이 있었다. 혹시나 밥을 남길 경우 쌀 한톨 당 팔굽혀펴기 다섯 개를 해야 했다. 쌀 몇톨은 그렇게 몸으로 때우게 해 줬는데, 그 섞어찌개 같은 메인 반찬을 통으로 남기면 결국 그 잔반을 다 먹을 때까지 영원히 내 식기 반납은 반려되곤 했다. 농담삼아 하는 말이지만, 나는 그걸 학대라고 부른다.




그러니 나의 꿈은, 평범한 찌개를 먹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모범적 찌개는 우리 둘째고모가 끓인 것이었는데, 큰 냄비에 참기름을 둘러 김치를 볶고, 돼지고기를 넣고, 파와 양파도 넣고, 간장과 다진마늘과 고춧가루로 간을 맞추고 뭉근하게 오래 끓인 것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 찌개를 먹어본 게 아마 일곱 살 때일 텐데, 그게 얼마나 간절했던지 그 맛을 혀끝에 계속해서 떠올리며 머릿속으로 요리를 해보곤 했다. 뭔가에 대해 오래 생각하면 그것이 체득되기도 하는데, 찌개 끓이는 법은 배우지 못했어도 그것이 그런 과정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맛을 떠올리면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니 혼자 한국으로 들어와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고시원 쪽주방에서 김치찌개를 끓인 것이었다. 그 김치찌개로 첫 끼를 먹으며 나는 감격에 몸을 떨었다. 이것이 올바른 음식이며, 이것을 먹는 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이것저것 요리를 하게 됐다. 한식은 무엇이든 대충 꽤나 먹을만 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고, 파스타도 맛집 레벨은 아니어도 웬만한 음식점이랑은 비빌 만 하다고 생각한다. 일식도 제법 하고(여긴 아직 서툴다. 일식은 생각보다 부지런해야 한다).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일주일에 집에서 한 끼도 안 먹는 날이 늘어나니 자연스레 어느샌가 요리도 멈췄는데, 요즘은 또 요리를 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요리를 해서 혼자 먹는 것도 꽤나 재밌는 일인데, 요리를 해 줄 대상이 있다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다. 요리를 하는 건 장을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장을 보며 그 사람이 못 먹는 건 무엇인지,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부터 생각을 해 본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식재료를 고르면 그걸로 무엇을 만들지 생각해본다.


최근에는 연어 덮밥을 만들었다. 손도 별로 가지 않고 편한 음식인데, 연어를 좋아하는 걸 알아서 고른 메뉴였다. 칼을 날카롭게 갈고, 나는 손이 뜨거운 편이라, 손에서 연어가 익어버릴까봐 얼음으로 손을 식혀가면서 연어 살을 손질하고, 적당한 온도의 밥 위에 예쁘게 쌓아올리고, 생와사비를 얹고, 가쓰오부시와 간장을 끓여 만들어둔 소스를 얹어 내었다. 국이 없으면 약간 서운하다는 말에 미소장국과 계란국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계란국을 조금 끓였다. 국이 메인은 아니니 치킨스톡으로 간을 했다. 치킨스톡은 즐거운 반칙이다.


식당에서 나온 것처럼 생긴 그녀의 밥과 못생긴 연어조각들을 때려넣고 대충 만들 내 밥을 보면서 나도 몰래 좀 웃었다. 맛이야 똑같으니 상관 없지만, 못생겨도 너무 못 생겼다. 그녀는 음식 사진을 찍고, 연신 맛있다고 말하며 한 그릇을 비웠다. 그녀는 늘 그렇게 밥을 먹는다. 내가 해준 소박한 음식을 사진을 찍고, 맛있다느니 뚝딱뚝딱 금방 요리를 하는 게 신기하다느니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짬짬히 레시피를 찾아보고 쉬는 날에도 혼자 불을 쓰며 요리를 연습한다. 그리고 천 번쯤 해본 요리인 척 아무렇지 않게 잠깐 새 레시피를 선보인다.


그녀가 내 집에 머무르는 시간만큼, 날짜와 횟수만큼, 요리가 늘어간다. 가짓수가 늘고, 맛이 깊어진다. 다시 방앗간에 가서 참기름을 짜 오고, 집에서 양념을 만들고, 밑반찬 통을 채워넣는다. 그만하면 못 하는 거 없지, 했던 요리가 다시 늘어간다. 이러다간 음악이니 직장이니 다 때려치우고 정말 작은 가게라도 하나 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어쨌든 지금 내 요리는 오롯이 그녀만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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