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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비지 Nov 17. 2021

돌담 에피소드

장흥촌집 돌담



글 짓기와 집 짓기는 같은 '짓다'를 쓴다.

사전에는 "재료를 들여 밥, 옷, 집 따위를 만들다"와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약을 만들다"는 설명이 나온다.

또, "시, 소설, 편지, 노래 가사 따위와 같은 글을 쓰다"는 뜻도 있다.

그러니 '짓다'가 보통 글자는 아닌 거다.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에 더해 약에 쓰이고, 소통 수단인 글에도 썼으니까.

왠지 '짓다'를 잘하면 인간다워질 거 같고, 막 지으면 안 될 것도 같다.


집 짓기와 글 짓기가 닮았다는 생각은 나만 하는 게 아닐 것이다. 구상, 설계, 재료 선택 후 하나하나 이뤄가는 과정은 둘 모두 다를 것이 없는 막노동이다. 건축이 손발을 많이 쓰는 반면 글은 엉덩이를 오래 쓴다는 차이가 있을까.

어제 친구가 물었다. 집수리와 글 쓰기 중 어느 게 더 재밌냐고. 둘 다 재밌고 둘 다 힘들다. 친구에게 정서적 만족도는 글이 더 높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혼자만의 '온라인' 말고, 여러 사람의 '오프라인' 만족도는 건축이 나은 것 같다.


장흥 촌집의 돌담 (2021. 5. 장흥)


귀촌 3년 4개월 된 신입 거주자를 마을 할머니들이 잘 몰라보는 건 당연하다.   

농한기가 되자 동네 어르신들이 마을 회관에 모여 점심을 함께 드신다.

며칠 전 가까이 지내는 언론사 퇴직자 선생님 콜 받고 간 자리였다. 스무 명 남짓 어르신들 중 한눈에 나를 알아보는 분은 절반 미만. 이 상황이면 나는 설명이 복잡했었다. 본 적도 없는 무슨무슨 택호를 들어가며 할머니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내 집 위치를 알려 드렸다. 그런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어느 분인가가 "돌담장 이쁘게 쌓은 집 안 있는가" 하면 바로 알아들으신다.


돌담 쌓기는 단어를 골라 끼워 맞추고, 잇고, 물고 물려 서로 지지해가며 문장을 이루는 일과 비슷하다. 부실한 돌 몇 개가 빠지면 균형을 잃고 흐트러지다가 결국 담장이 무너질 수 있다. 공들여 쓴 글이 부적절한 어휘 한두 개로 퇴색하는 것과 같다. 그래선가. 한옥 목수일을 배운 급한 나 보다 꼼꼼한 품성의 문창과 출신 친구가 담장을 훨씬 잘 쌓는다.     

 

남해안 완도 바닷가 마을의 돌담(2021. 8. 완도)


지난달 놀러 온 지인은 내 집 담장을 보더니 제주도에 와 있는 기분이라고 좋아했다.

현무암으로 높게 쌓은 제주도 돌담 말고도 남해안 일대에는 오래전부터 돌담이 많았다. 거센 바닷바람과 폭풍우에는 흙을 섞은 토석 담장보다 돌만으로 쌓은 구조법이 유리해서다.

완도 어느 바닷가 마을 앞에는 2미터는 넘어 보이는 높은 돌담이 있다. 태풍으로 파도가 도로를 넘어 올라올 때를 대비한 모습이다.

보통 남해안과 제주지역 돌담은 지붕 처마선에 육박할 만큼 높게 쌓아 여름철 비바람 피해를 막았다.

제주도 현무암 돌담이 구멍이 숭숭 뚫려 보이게 듬성듬성 쌓은 것은 강풍에 의한 도괴 위험을 줄이려는 의도다.


 

산자락을 낀 장흥군 안양면 비동 마을의 돌담 (2021. 8. 장흥)


같은 남해안이라도 산을 끼고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 돌담은 그리 높지 않다.

내가 사는 전남 장흥 관산읍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안양면 비동 마을에 가면 그런 담장을 볼 수 있다. 집집마다 담장이 이어져 마을 전체가 돌담장을 했다. 이 동네 거주하는 분 말씀으로는 담장을 문화재로 지정하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전통마을 담장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쌓았다. 비동마을은 멀리서 봐도 돌이 흘러내리는 게 보일 만큼 많은 돌산 자락 아래에 위치했다.   


겹벚과 돌담. 담장을 쌓던 지난봄 모습. (2021. 4. 장흥 촌집)


내가 사는 동네도 다르지 않다. 바위와 돌이 많은 천관산 자락에 낀 마을이라 집집마다 돌담이 있다.

어제 동네 인근을 지나다가 문화재청이 주최한 천관산 명승 지정 기념행사를 우연히 봤다. 학술적 가치를 조사 한 담당 교수님은 천관산의 암반이 7천만 년 전 지반 운동으로 융기했고, 이 일대에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200여 기가 산재해 있다고 한다.

돌담은 특별한 도구 없이 단지 돌만으로 쌓아서 만든 구조물이다. 어쩌면 인류가 해온 가장 오래된 건축행위 중 하나가 돌 쌓기 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돌담을 보면 막연히 좋다. 마치 석양 노을빛이나 만년설 덮인 극지방 풍경을 볼 때처럼. 돌담도 원시 미의 강한 포스가 있는 것 같다.  

 


리모델링 완성된 게스트하우스 '나달청' (2021.11. 장흥 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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