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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비지 Nov 16. 2021

사랑채의 변신

보성 봉강리 정 씨 고택 2



사랑채


안채가 여성들의 생활공간이라면, 사랑채는 남성 권역이다. 방문객을 응대하고 농사일을 비롯한 외부 업무도 일꾼들의 행랑에 가까운 사랑채에서 처리한다. 정 씨 고택 사랑채는 두 방향으로 진입하도록 되어 있다. 남성 방문객은 대문을 지나 행랑채 마당에서 안채를 거치지 않고 쪽문으로 곧장 사랑채에 진입했다. 이와 달리 집주인은 사랑채와 안채가 직접 통하는 간결한 동선을 이용했을 것이다.

       

정 씨 고택 사랑채와 안마당에서 진입하는 출입문. (2011. 10. 보성)

정 씨 고택의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작지 않은 규모다. 지금은 가운데 두 칸도 온돌방이지만, 이것은 후대에 변형됐을 가능성이 높다. 가운데 칸은 너른 대청마루였을 것이다. 외부인 방문이 잦고 집안 대소사가 많은 대농 양반가에서 사랑채 대청마루는 필수 공간이다. 특히 여름이 무더운 남부지방은.


지금의 사랑채는 정 씨 집안이 처음 들어와 살던 400년 전에는 없었을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정 씨 집안의 입향조는 임진왜란 이후 마 씨 집안으로 장가들어 지금의 안채 자리에 초가집을 지었다. 당시는 결혼제도가 조선 후기와는 달랐다. 부인이 남편 집에 '시집가는' 방식(친영제)이 굳어진 것은 나중 일이고, 정 씨가 이 집에 들어와 살 때만 해도 남편이 부인 집에 '장가드는' 방식(서류부가 혼)이 대세였다.


사랑채의 규모와 위세로 집안내 남성의 지위를 강조하는 풍조는 조선 중기 이후의 유행으로 본다. 제사와 상속에서 여성이 체계적으로 배제되기 이전인 조선 전기 사랑채는 소박했다. 독립적 사랑채보다는 안채의 일부를 사용하는 사랑방이 일반적이었다. 조선 전기에 지은 경주 양동마을 서백당도 그런 사례를 보이는 대표적인 집이다.

정 씨 고택 사랑채 (2021.10. 보성)


조선 후기 농사기법이 발달하고 생산력이 증대하면서 지방 곳곳에 대농가옥이 출현한다. 정 씨 고택도 그 시기를 거치며 현재의 전형적인 대지주 양반가 배치 구조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들녘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위치에 터를 넓게 잡고 높은 담장을 두른 사랑채는 풍족한 경제상황과 가세를 상징한다.   

   




정원과 조경 - 자연과의 조화


정 씨 고택 사랑채 앞마당에는 전통정원이 있다.

소나무를 비롯한 사군자, 기암괴석, 신선사상이 반영된 연못 등에서 조선시대 선비들의 취향이 드러난다. 나는 그 시절의 유행과 별개로 자연의 혜택을 주택에 끌어들이고 향유하는 조경술만큼은 근래의 '생태주의 건축' 트렌드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행랑채 마당에서 보이는 사랑채 정원과 쪽문. (2021. 10. 보성)

 

전통건축의 조경 원리는 자연을 누리는 데 있다. 자연 속에 정자를 짓는 등의 건축행위 시 흔히 사용된 방법이 경치를 빌려서 누린다는 의미의 '차경' 기법이다. 가까운 경치를 끌어들이는 '인차', 밑에서 올려다보는 '앙차',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차', 시선의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경치를 누리는 '응시 이차' 등의 다양한 수법이 사용됐다. 창덕궁 후원에 가면 공예품 수준의 아름다운 정자들이 즐비한데, 이 같은 조경술이 자유자재로 구사된 광경을 감상할 수 있다.

정 씨 고택 사랑채 정원도 자연을 끌어들여 교감하고 그 혜택을 누린다는 자세를 보여준다.  

특히 나는 집 뒤 계곡물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연못을 만들고 일부는 생활용수로 사용한 조경술에 감탄했다.  


계곡 물을 집안에 끌어들여 생활용수로 사용한 행랑채 옆 수로 (2021. 10. 보성)


산자락을 끼고 자리 잡은 집들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바로 사용하는 이점이 있다. 우물을 파는 것보다 편하고, 산이 크고 골짜기가 깊으면 가뭄에도 유리하다. 정 씨 고택은 집 주위 계곡물을 마당으로 끌어들여 생활용수로 사용했다. 그리고 다시 두 갈래로 나눠 한쪽을 사랑채로 내려보내 연못을 가꿨고, 다른 한 줄기는 담장 밑을 통과해 행랑채 측면 담장을 따라 흘러서 다시 집 밖으로 나가게 했다. 덕분에 안채, 사랑채, 행랑채 세 권역 모두 항상 물이 흐르게 됐다. 행랑채가 있는 바깥마당에서는 농기구 정돈이나 소나 말을 돌보는데 필요한 생활용수로 편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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