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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비지 Dec 20. 2021

이 구역 NO1.

강진 무위사 극락전


무위사는 신라시대 개창된 절이다. 국립공원 월출산의 정남향 가장 좋은 자리에 들어선 초기 사찰이다. 뒤로는 월출산 경관을, 앞으로는 자원 풍부한 강진만을 끼고 섰다. 절 입구의 이름도 근사한 마을 월하리는 수백 년 넘게 무위사와 연계 맺으며 유지된 사하촌이었을 수 있다. 오래 된 산지 사찰 인근에는 절이 보유한 땅으로 농사짓는 사람들의 마을이 있었다.


무위사 극락(보)전은 조선 초기에 지은 건물로 국보(13호)로 지정됐다. 이 절 다른 건물들이 조선 중기 것인데 비해 100여 년 이르다.


한국 목조건축에서 오래된 건물로는 고려말이 가장 이른데, 아쉽게도 몇 채 안남아 있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 등이 해당 한다. 조선 초기 건물도 드물기는 마찬가지다. 조선초기 건축 기법을 자세히 전하는 사찰의 주불전으로서 무위사 극락전은 귀중한 사례다.  


무위사 극락전에는 조선 초기에 그린 벽화가 있다. 지금은 벽체 그대로 뜯어내 보존 전시하고 있다. 미술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건물 꼽은 것 이상으로 그 벽화를 좋아할지 모른다.


무위사 극락보전 (2021. 6. 강진)


오래됐다고 다 중요한가. 무위사 극락전은 단아하면서 위엄있다. 무위사 극락전에는 여말선초 건물의 우아함이 살아있다. 이전 시기인 수덕사 대웅전이나 부석사 무량수전에 비해 화려함은 좀 덜어냈지만, 대신 간결하고 담백한 멋이 일품이다. 나는 이 건물을 보고 있으면 절 경내와 골짜기 전체가 이 한 채로 꽉 차게 느껴진다.


여말선초 건물들은 후대 건물에 비해 내외부 치장이 덜한 게 사실이다. 이 시기에는 그런 유행이 없었다. 대신 집의 비율과 균형에 집중하고, 목재를 깎고 짜 맞추는 과정 자체를 섬세하게 조율해서 지었다. 언뜻 보면 조선 중후기 건물에 비해 소박한 듯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여말선초 건물들은 극강의 공을 들여 부재를 만들고 다듬은 후 무심히 노출시켜 놓고 더 이상의 치장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시기 건물은 후대에 비해 오히려 기품이 있다. 안 꾸민 것 같지만 정제된 화려함이 있다.  


조형적 완성도면에서 후대보다 이른시기 건물에 더 공력이 들어간 배경을 두고 여러 설명이 있다. 그중 하나는 이 시기 일반적인 예불의식 방법과 연관해서 보는 것이다. 이른 시기 예불은 실내가 아닌 불전 앞마당에서 '야단법석'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또 불전 실내 마룻바닥에 앉아서 예불하는 유행은 조선 중기 이후에 안착된 것이다. 마루가 전체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 와서였다. 실제로 조선 초기 건물인 무위사 극락전의 실내 바닥은 마루가 아닌 전돌(보도블록처럼 생긴 구운 벽돌)을 깐 바닥이다.


즉, 당시의 예불은 서서하는 방식이었고, 실내 예불이 주된 것도 아니었다. 무위사 극락전 앞에도 두기의 궤불지주가 서 있다. 돌로된 깃발 꽂이에 천으로 된 대형 불화(궤불탱화)를 걸고 마당에서 법회를 했던 것이다.


실내 예불이 일반화된 조선 중후기 건물들은 공통적으로 불상 근처가 화려하게 장식됐다. 반면, 실외에서 건물을 바라보며 하는 법회가 일반적이던 시기에는 밖에서 보이는 건물의 조형적 완성도가 중요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이른 시기 불전들은 후대의 건물에 비해 부재 자체의 치목(나무를 가공하는 일)에 훨씬 공들인 흔적이 나타난다.

무위사 극락전도 마찬가지다. 측면 벽체를 보면 지붕 가구부재(지붕틀을 받치는 보, 도리, 대공 등의 구조부재)가 섬세하게 가공된 것이 보인다.


이 시기 건물의 빼어난 아름다움은 이렇게 구조부재들의 가공과 치장에 잔뜩 공을 들인 다음, 그대로 노출시켜 장식미를 확보한 데서 비롯한다. 그 결과 무위사 극락전은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절제된 구조미가 일품이다. 이 건물은 600년 가까운 세월 이전의 목조건축 정보를 전달하는 타임캡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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