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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램프 Aug 17. 2023

집밥에도 강약이 있다!

(매 끼니를 직접 해 먹는 사람입니다!)

내가 1년간 쉬면서 정말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은 나를 온전히 잘 먹이는 것이었다. 즉 나의 '집밥력'을 끌어올려 온전히 나를 잘 먹이는 것, 그것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요리를 그다지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어쩌면 요즘같이 배달이 일반화되어 있는 세상에서 밥을 직접 차려 먹지 않아도 큰 어려움 없는데 왜 굳이 해 먹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사 먹는 음식보다는 내가 내 손으로 직접 차린 소소한 집밥이 그리웠다고 말하고 싶다.


엄마도 일을 하시는 분이라 집에서 밥을 해주기보다는 밖에서 사 먹는 것을 더 선호하시는 분이시다. 굶는 것보다는 MSG가 많아도 밖의 음식이 더 낫지 않겠냐고 하셨지만 이상하게도 밖의 음식을 먹으면 나는 속이 더부룩했고, 가격도 부담이 되었지만, 항상 내가 먹는 것보다 많은 양이 나오는 밖의 음식은 버리는 쪽이 더 많아 마음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맛집이라 소문이 나 정말 기대하고 간 집에서 생각보다 그리 대단한 음식이 나오지 않았을 때, 타고 온 차비와 큰맘 먹고 지불하는 식비, 그리고 나의 소중한 시간까지 낭비한 것 같아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싶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그동안 일을 할 때는 잠잘 시간도 부족한 나였기에 (난 항상 졸려서 매일 커피를 달고 살았다.) 집밥을 해 먹는다는 생각은 주말이나 가능한 일이었고, 그마저도 원고기한이나 학생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집밥보다는 시간을 절약한다는 명목하에 밖의 음식을 정말 많이 사 먹었었다.




이랬던 내가 이제는 '시간부자'가 되었으니 그렇게도 소원했던 '집밥력'을 만렙으로 끌어올릴 절호의 찬스가 생긴 것이었다. 그 첫 번째 신호탄으로 나의 브런치는 항상 정해놓고 (계절마다 제철 과일만 바뀔 뿐) 아침을 차리니 큰 부담감 없이 언제나 자동적으로 차릴 수 있는 지경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늘 먹을 과일과 양배추는 식초물에 담가놓고, 오빠가 만들어 놓은 깜빠뉴는 냉동실에 얼려 놓았기 때문에 미리 꺼내서 해동을 시켜 놓는다. 그리고 잠시 차를 한잔 마시고, 아니면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후, 오빠가 일어났으면 각자의 접시에 견과류와 컵을 준비하고, 과일은 먹기 좋게 잘라서 담아놓는다. 내가 양배추와 양파를 잘게 썰어서 프라이팬에 볶기 시작하면 오빠는 옆에 쓰윽 나타나서 커피 원두를 갈아놓는다. 물론 나는 양배추를 다 볶은 후 치즈를 얹어 오븐에 돌린 다음 오빠가 빵과 햄과 계란프라이를 할 수 있도록 부엌한쪽으로 나와준다. 작은 종지에 담긴 '씨베리'는 에스토니아에서 생산이 된 베리류인데, 저번에 킨텍스에 갔다가 에스토니아 분들이 선물로 주신 것을 꿀을 뿌려서 쨈 대신에 빵에 발라먹는다.


이렇게 말하면 엄청 뭘 하는 것 같지만 제철과일과 오빠가 만든 빵, 그리고 음료수로 정말 간단하지만 알차게 차려먹는다. 이게 뭐 어렵다고 일하러 다닐 때는 왜 굶고 다녔을까 싶다. 아침특강 수업이 있는 날이면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나가다 보니 밥을 차려먹기보다는 간단하게 우유 한잔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대부분이었다. 그때보다 지금의 풍성한 나의 아침상의 사진을 바라보니 그래도 내가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해진다.


우리의 브런치는 거의 항상 메뉴가 동일하다!




오후에는 각자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이른 저녁을 챙겨 먹는다. 요리에 자신이 없는 날에는 된장째개를 끓이고, 간단하게 제육볶음을 해서 부추겉절이와 같이 먹는다. 늦은 시간에 마트에 가서 저렴하게 나온 '우럭'이 운 좋게 있는 날에는 기름에 튀겨 조림을 해서 먹는다. (고난도 요리 같지만 이런 고급 요리는 오빠가 정말 잘한다!) 복날이 왔을 때는 밖에 나가기보다는 장에서 본 새우와 고기를 오븐에 돌려버린다. (날이 너무너무 더워 불 앞에서 요리하기가 힘들 때는 오븐에 넣고 유일하게 에어컨이 있는 안방으로 잠시 피신해 있는다.) 비 오는 날은 막걸리라도 한잔하고 싶지만, 둘 다 술은 잘 못하니 팽이버섯과 부추를 넣어 바삭바삭한 전을 해 먹고, 때로는 닭 한 마리를 사 와 이 여름보다 더 매콤한 닭볶음탕을 해서 더위를 물리치기도 했었다. 너무 더울 땐 간단하게 김치볶음밥과 오이냉국을 만들어 후루룩 먹고 기뻐하기도 했었다.



올여름 내가 해먹은 집밥들... 나의 '집밥력'은 무한 상승하고 있는 중이다!


이랬던 내가 여름이 끝나가는 막판에 집밥에 대한 애정이 살짝 식어가고 있어 다시 한번 집밥의 대한 사랑을 떠올려보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외식은 거의 일주일에 딱 한번 하는 정도인데, 밥 하는 게 귀찮다고 여겨지면 라면으로 음식을 대충 먹게 된다. 아! 집밥에도 강약이 있구나... 싶었다. 맘은 그렇지 않은데 때로는 몸이 잘 따라주지 않아서 속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다시 한번 내 맘을 다잡고, 밥을 안치고, 된장찌개에 불을 켤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은 잘 넘겼지만 혹시나 집밥의 대한 나의 애정이 시들해지는 순간이 온다면, 내가 직접 차렸던 음식들의 사진을 다시 꺼내보며, 계락프라이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내가 이 정도로 나를 먹여 살리고 있으면 잘하고 있다고 쓰담쓰담 칭찬을 해주고 싶다.




구독과 라이킷은 글을 쓰는 고양이램프에게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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